‘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사와 멜로디에 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노래’
애국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가는 법적으로 국가는 아니지만, 관습 헌법상 인정되어 남북 회담, 국경일 등 국가의 대소사부터, 회사나 학교 등의 행사까지 다양한 곳에서 노래되고 있다.
그러나 애국가에 대한 정통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것은 바로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의 친일 행보에 관한 논란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를 반민족 행위자가 작곡했다는 것은 충분히 정통성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애국가의 적합성에 대한 문제 또한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익태의 친일 행위를 근거 삼을 뿐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하고 있다.
친일파 안익태
안익태(1906~1965)는 한국계 스페인인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192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도쿄고등음악학원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신시내티 대학에서 첼로 수석으로 활동했는데,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가질 정도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1935년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마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그의 친일 행적에 관한 의혹 또한 바로 유럽 생활 시작을 기점으로 나열된다.
그는 독일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유럽 각국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했다. 그의 친일 행적은 베를린에서 지휘자를 맡던 시절,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회에서 자신이 일본 제국을 위해 작곡한 ‘만주환상곡’을 초연한 영상이 발견되며 세간에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그가 명치절에 기미가요를 연주한 사실이 드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더욱 확실해졌다. 해방 이후 그는 고국에서의 활동을 원해 한국 음악계를 전전했으나, 그에 대한 반발이 강해 결국 유럽으로 돌아가 음악 활동을 하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눈을 감는다.
이러한 행적을 바탕으로 안익태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천재성을 인정받으며, 대한민국 애국가를 작곡한 그가 친일파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민족적 측면에서 참으로 비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환상곡과 만주 환상곡
우리에게 ‘애국가’로 통용되는 이 노래는 사실 안익태가 1938년 아일랜드에서 초연한 ‘한국환상곡’의 후반 합창부를 발췌한 곡이다. 한국환상곡은 초연 당시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주로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과 민족적 슬픔을 주제로 다루었다. 당시 한국환상곡에는 현재 애국가의 모태인 합창 부분 대신 멜로디만이 있었지만, 개작의 과정을 거치며 합창 부분이 추가되었다. 합창이 포함된 악장의 주제는 '광복의 기쁨'이다.
이렇듯 곡 자체로만 놓고 보면 애국가에는 전혀 문제 될 부분이 없다. 모태 자체도 조국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노래하고 있고 애국가 자체의 주제 또한 애국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환상곡과 안익태가 일본에 헌정한 ‘만주환상곡’과의 관계다. 만주환상곡은 일제가 중국 북동부를 점령한 뒤 세운 만주국의 10주년을 찬양하여 만든 곡이다.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안익태가 일제를 찬양하는 곡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은 만주환상곡과 한국환상곡의 유사성이다. 우선 두 곡은 곡명이 유사하며 본래 3악장 관현악곡으로 작곡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한국환상곡은 원래 애국가가 포함된 악장을 제외하고 3악장으로 작곡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국전쟁 이후 개작을 거쳐 최종 완성된 한국환상곡에는 만주환상곡과 똑같은 멜로디가 두 번에 걸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안익태를 변호하는 측은 한국환상곡은 이미 안익태가 1935년에 작곡을 마친 곡이며, 만주환상곡보다 순서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러나 순서를 불문하고, 안익태가 한국전쟁 이후에도 만주환상곡과 겹치는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시연했다는 점은 충분히 문제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곡 자체의 유사성이나 음악인으로서 그의 행보를 종합해 볼 때, 현재의 애국가는 민족을 상징하는 곡으로 쓰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애국가, 이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담아야 할 때
단순히 애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를 넘어, 최근에는 애국가 자체를 두고도 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애국가의 4절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맹목적인 애국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파시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독재 정권이 강요하던 헌신적인 애국심과 상당히 겹친다는 의견이다.
국제사회의 흐름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독일은 자신들의 국가 1절 중 “세계에 군림하는 독일”이라는 가사가 나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국가의 1절을 제창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민중의 혁명 정신과 적국에 대한 저항의식을 중심으로 가사가 쓰인 국가를 제창한다. 이렇듯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애국을 내세우기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과 조국에 대한 수호정신을 주로 노래한다.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이러한 흐름에 다소 뒤처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애국가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을까? ‘현재의 곡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민중 정신을 담은 새로운 곡으로 지정해야 한다’, ‘아예 없애는 것이 좋다’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현재 애국가가 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그것이 친일이라는 가장 민감한 부분에 맞닿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금의 대한민국 애국가는 분명 문제가 있고,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애국가 자체를 없애는 방법도 있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의 가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국가는 올림픽, 국가 행사, 외교 행사 등 국가의 상징성이 요구되는 곳에서 장엄하게 그를 뒷받침하는 좋은 수단으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곡은 분명히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국민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곡이 있다는 점 또한 가치가 있음이 명확하다. 그러므로 국가 자체의 존재를 인정하되, 현대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새로운 국가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國歌)’, 말 그대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 그렇기에 그안에 담은 것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통용될 수 있어야 하고, 역사와 정통을 담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에 틀림없다. 따라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에 대한 논의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안중근청년기자단 - 손민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