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매우 악화된 상태다. 다시 표면으로 떠오른 일제 때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 전국 곳곳에 세워진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시비, 동해 독도 근해를 순시하는 우리 해군 함정에 두 차례나 근접 비행을 감행한 일본 자위대 초계기 관련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안들이 중첩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 박정희 정권의 굴욕외교,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때의 ‘식민 근성’에 의한 ‘충성외교’ 때도 다수 국민의 내면에서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 오늘의 ‘관계 악화’가 준비되고 있었다.
우리에게 일본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또 지배를 당한 뼈아픈 역사 경험을 갖고 있다. 임진왜란과 수많은 왜구들의 침탈, 36년 동안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일본은 언제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와는 적대적인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당시의 참상들과 36년 동안의 식민지배, 한반도 분단 상황의 단초, 한국 전쟁을 기화로 일치월장 하듯 경제 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데서 나타나게 된 일본의 고자세 등은 우리에게 운명적으로 일본에 대한 혐오감마저 갖게 한다.
미국의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양국 모두에 각용하고 있는 오늘에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진정한 우방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국제 관계 속에서 ‘우방’이라는 형식적 테두리가 성립될 뿐 일본은 우리에게 진정한 우방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제73차 유엔총회에 참석키 위해 뉴욕에 갔던 문제인 대통령이 일본 총리 아베 면전에서 “일본은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나베’, ‘자위녀’ 등으로도 불리는 자유한국당 현 원대대표 나경원을 비롯한 일부 식민근성에 젖어 있는 정치인들은 비판 발언을 쏟아냈지만, 양식 있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통쾌한 발언이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를 시기하는 일본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 악화’는 과거 역사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 더욱 심화된다. 일본은 한 번도 한국에 대해 과거 역사에 대한 사죄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 상황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이득을 취하려고만 한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일제가 한반도에서 물러나면서 만든 일종의 기획물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이미 최강대국 미국의 파트너였다. 미국은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작은 섬나라 일본에 대해 남다른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 최초로 원폭을 사용하여 엄청난 살상을 입힌 것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도 갖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미국은 일본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게 되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호감은 자연히 한국에 대한 차별로 나타난다. 한 가지 예로 한국인이 미국에 가려면 반드시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하지만 일본인에게는 자동 면제가 주어진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작용하여 일본은 한국에 대해 모종의 우월감도 갖고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유지시키려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야심을 갖고 있으며, 남북의 평화 통일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지금 해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공언할 정도다.
태안은 ‘동학정신’의 고장
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사회 일각의 각성은 기대할 만하다. 일본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사죄의식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는데, 2007년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열리는 ‘금요집회’를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의 진실을 알리는 집회다. 국가를 넘어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헌신하는 일본인들의 10여 년의 투쟁사를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일찍이 이 모임을 주선했고,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 노인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법정투쟁을 전개하다가 변호사직을 박탈당한 원로 법조인도 있다.
일본 지식인 사회 일각의 한국에 대한 사죄 의식의 일단이 최근 동학의 고장인 충남 태안에서도 표출되었다.
지난해 11월 24일 일본의 나라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니카츠카 아키라(90) 교수 외 23명이 태안 백화산 교장바위 아래 ‘갑오동학농민군추모탑’을 참배하고, 120여 년 전 조선의 동학농민혁명이 일본군에 의해 좌절된 것에 대해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조선에서 있었던 청일전쟁에 관해 연구하다가 동학농민 혁명의 실상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들 23명의 일본인 외로 중국 인민대학 웬테쥔 교수 등 3명과 한국 원광대 박맹수 교수가 함께 동행을 했다.
태안에서는 가세로 태안군수, 문영식 내포지역 동학유족회장, 최기중 태안군동학기념사업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태안군수는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군과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오늘의 태안군수는 태안이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북접(北接) 동학군의 최초 기포지였던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군수로 당선되고 나서 취임식은 생략하고 첫 출근을 하기 직전 백화산 ‘교장바위’ 아래 ‘갑오동학농민혁명군 추모탑’ 참배부터 했을 정도다.
앞으로 태안군은 가세로 군수의 가치 지향에 따라 지역사회에 민주와 평등 민족과 자주, 정의와 평화의 동의어인 ‘동학정신’이 널리 구현될 것으로 믿어진다. 태안의 서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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