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
내 친구 실비아가 살고 있는 동네가 바로 원주였고 그곳에서 그 친구의 남편이 자동차운전학원과 골프연습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땅에 ‘혁신도시’가 들어와서 정부가 친구네 땅을 몽땅 수용하여 한동안 힘들어 했고 비록 보상금을 받았지만 운전학원은 접고 다른 곳에 골프연습장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혁신도시에 뭐가 들어오나 궁금했는데 그중 국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들어왔고 그곳에 상임감사로 문섐이 올봄에 임명받아 부임했다. 심평원 감사는 무얼 하나 궁금하던 차에 오늘 드디어 문섐과 남편 김원장님이 우리 부부를 이곳에 초대하셨다.
우리가 주일이면 성당 9시 어린이미사를 드린다는 걸 아는 김원장님은 미사 후에 곧장 원주로 오라 하셨다. 본당신부님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얘기를 들려주시며 “여러분도 예수님이 부르시면 몽땅 버리고 따라갈 테지요?” 물으니 한 아이가 “안 따라갈래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왜?”라고 묻는 신부님에게 그 아이는 “내 마음!”이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한 꼬마는 “몽땅 버리고 예수님 따라가겠다면 울 엄마가 ‘너, 당장 집 나가!’ 하시면서 문을 잠가버리실 거에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주님을 따르라!’는 말이 무슨 뜻으로 꼬마들에게 전달되는지 알 만하다.
정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들을 놓고 그 아이들의 영혼과 구원의 문제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유럽 아이들이 이미 30여 년 전에 보여주던 태도였다. 걔들에게 ‘견진성사는 성당 다니기 졸업하는 날’이었는데 요새는 ‘너 첫영성체 하고서도 아직 성당 다니니?’라고 묻는단다.
12시가 좀 넘어 원주 심평원에 도착했다. 문섐과 김원장님은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다가 우리를 맞아주시고 24층에 있는 상임감사 사무실을 보여주셨다. 그분의 명패를 쓰다듬으며 그동안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그분이 받았던 박대와 수모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닥친 부당함을 잘 견디어냈고, 저렇게 좋은 분을 꼭 알맞는 자리에 발령한 현 정부는 잘 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오늘과 내일 방문할 장소를 미리 답사한 김원장님은 꼼꼼하게 프로그램을 짜서 보여주셨다. 오늘 계획은 심평원 방문 → 문재인 대통령이 갔다던 두부집 ‘꿈의 두부’에서 점심 → 커피샵 PANINI에서 환담 → 박경리 선생의 ‘문학마을’ 방문 → 전통시장 방문 → 송악골 ‘막국수집’ 저녁식사 순이었다.
‘박경리 문학마을’에는 한국전쟁과 여자의 모진 운명을 문학으로 찬란하게 피워 올린 한 여인의 일생이 그림으로 펼쳐지는 순간을 “유리창 밖은 새까만 어둠. 차가운 마룻바닥의 길 잃은 아이처럼 마냥 겁이 난다”라고 묘사했다. 몇 년 전 처음 왔던 날처럼 가슴에는 선생이 묻혀 있는 고향 통영의 앞바다 파도가 일렁인다.
‘미로중앙시장’을 돌고, ‘서곡 막국수’로 오늘을 마감하고 문섐의 20층 아파트에 들어서며 서둘러 TV를 켰다. 오늘 우리들의 소풍이 풍선 든 아이처럼 마냥 설레었던 건 늘 미친짓으로 사람의 혼을 빼던 트럼프가 그 뒤에 있었다.
판문점에서의 북미회담, 남북미의 악수! 얼마나 많은 겨레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얼마나 많은 인류가 염원해오던 장면 아닌가! 보스코가 수차례 바티칸을 오가며 그곳 현자에게 기도와 개입을 요청하던 꿈이 아니던가!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도 오늘 “지난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한국에서 만남 문화의 좋은 사례를 보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즉각 발표하였다.
제발 이번엔 하노이에서처럼 끝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영광일랑 북미에 돌리고 우리에겐 평화가 오게 해달라’는 훌륭한 문재인 대통령을 바로 이 시점에 하늘이 주셨다는 게 너무 고맙다. 함량 미달의 ‘자유한국당’과 저 패거리에게 지지를 보내는 반통일의 무리가 제발 부끄러운 줄 좀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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