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 화요일, 맑음
보스코의 오죽(烏竹) 사랑은 대단하다. 휴천재를 짓자마자 토마스가 산죽(山竹) 몇 그루를 뒤꼍에 심었는데, 그때는 많은 걱정이 앞섰다. 서울집에도 생각 없이 정선생 댁에서 시누대 한 웅큼을 얻어다 집 앞 축대 밑에 심었다. 고 작은 식물이 뿌리를 뻗고 또 뻗어 온 집안 빈터를 헤집고 다니며 뽑아내도 뽑아내도 어디선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공격은 끔찍하여 보는 족족 뽑아내는데도 서울집 정원식물의 반은 걔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스가 오죽 두 개를 얻어다 시누대 곁에 심었다. 우선 이름부터 품위도 있고 시누대처럼 염치없이 뻗지도 않아 보스코가 귀하게 여기고 죽순이 올라올 적마다 시누대면 잘라버리고 오죽이면 정성들여 키워서 6년 만에 휴천재 뒤꼍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오늘도 시누대를 잘라내느라 보스코가 오전 내내 땀을 흘렸다. 헌데 대나무 밭에는 원래 모기가 극성을 피우는 법. 시누대 정리하느라 모기에 쏘인 얼굴과 팔다리가 온통 벌집을 건든 개구장이 모습이다. 모기에 한방만 쏘여도 손바닥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의 알러지 체질은 큰아들에게로 내려가 빵기가 그렇더니만 큰손주 시아까지 똑같다. 나는 모기 물려도 벌에 쏘여도 긁지 않으면 가라앉고 빵고 신부도 나와 같은 체질이다. 그래서 빵기가 워낙 벌레를 싫어하여 한국에 와도 손주들의 모기 알러지 땜에 지리산에는 내려오는 일을 한참 꺼린다.
달포 동안 종이쓰레기를 모아 놓으니 태우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예전 같으면 모아두었다가 서울까지 차로 실어다 서광빌라에 사는 아저씨에게 건네주는데 ‘이젠 돈도 안 되는 거 힘들여 가져오지 말라’는 부탁이다. 폐지의 단가가 그만큼 내렸단다. 더위에 땀흘려가며 속절 없이 종이를 태우려니 속이 상한다. 빵기는 나더러, 탄소가스 배출로 오존층이 파괴되고 미세먼지의 원인이 된다고, 단돈 10원을 받더라도 갖다 주라는데 사회운동가다운 말이다. 귀찮고 힘들어도 아들의 말을 듣고 손주들의 미래를 위해 다시 모아 끌고 올라가야겠다.
요즘은 아이들이 더 지혜롭고 판단력 있어 우리 같은 꼰대들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유튜브에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듣고 퍼나르고 흥분하는 부모들에게 ‘그건 가짜뉴스에요!’라고 진실을 말해 줄 때 우리 어른들은 귀와 동시에 마음도 열어야 깨어난다.
전 국회의원 정두언씨가 자살했다. 우선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동정이 가고 그를 위해 기도를 올려준다. 내 주변에서 자살하여 잊히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여고시절 내 짝 경애. 우리 뒷집에서 재수하다 시험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죽은 두 처녀,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다고 가신, 내 친구의 모친. 우리 집 세 살던 아무개네 고모. 그밖에 가까이서 멀리서 많은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그중 동지를 잃은 것 같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 내 피붙이 같아 지금도 생각만 해도 가슴을 에어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문뜩문뜩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이다. ‘자살을 하면 천국을 못 간다’고 말하는 신도들을 간혹 만난다. 십자가 오른쪽 도둑처럼, 죽음의 순간 하느님의 자비를 얻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하느님의 대자대비하신 그 품안에 우리는 가여운 넋들을 바칠 뿐이고 그를 구원하시는 일은 하느님 당신의 몫이다.
마침내 ‘사제단’이 나섰다. 촛불혁명 후 문재인 ‘태평성대’가 오자 보스코에게 오는 강연초청도 눈에 띄게 줄었는데(큰아들 말로는 ‘박근혜의 어리석은 통치가 그간 우리 아빠 먹여살렸다’는데) 남북화해 무드로 옮겨지고서도 실질적인 북미대화가 성과를 못 내자 ‘한반도 평화정착’을 비는 미사를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올리기 시작했다. 80년대부터 한국의 정치사를 크게 움직여온 사제단은 하느님을 지렛대로 움직여 겨레의 마음과 정치판도를 올바로 잡아가는 주축이 되고 있다. 다음번에는 손주들 데리고 그 미사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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