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일요일, 흐림
시우와 시아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을길을 달려 내려간다. 성당 가는 길이 즐거워서라기보다 아이들이 가는 길은 직선이 없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갈지자로도 목표에는 도달한다. 매일 하교시간에 집에 늦는 아이가 도대체 귀갓길에 무슨 해찰을 하나 아이의 뒤를 밟은 엄마가 있었다. 학교 교문에서부터 아이의 뒤를 따라가는데 은행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 나오기에 그 점이 무척 궁금했단다. 호기심을 꾹 참고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뒤를 밟았는데 똑같은 코스에 똑 같은 시간이 걸리더란다. 학교 정문에서 집에까지가 그리도 멀고 그리도 구불구불한지 처음 알았단다.
참다못해 그 다음 날엔 은행에 들어갔다 나오는 아이를 현행범으로 잡아 다그쳤단다. “매일 은행에 들어가 무는 짓을 했느냐?”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너무 더워 에어컨 바람에 몸 식히고 서비스 물통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오는 중!”이라는 대답.
아이들은 걷는 일이 없고 늘 달린다. 그래도 달리는 길이 걷는 길보다 더 늦다! 오늘처럼 아이들에게 보조를 맞추다 보니 미사에 5분정도 늦었다. 그런데 미사 시간에도 앞에 앉은 두 놈이 얼마나 서로 몸을 비비고 분심이 들게 하는지 아범이 ‘일어서라!’ ‘성호 그어라!’ ‘똑바로 서라!’ 사사건건 일러야 했다.
그런데 나중에 시우가 하는 말. “아빠! 미사 중에 웬 잔소리가 그리 많으셔요?” 아범의 엄마고 시우의 할미인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럼 너라면 그럴 때 네 아들에게 뭐라 하겠니? 더구나 네 손주한테는?” 라고 되물으니 “‘시우야, 미사참례 잘해라!’ 딱 한마디 하고 말거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알고, 부모로서의 효과적인 교육 자세에 대해서도 뻔히 잘 알고 있다는 맹랑한 대답이다.
오늘 복음서 말씀이 마리아와 마르타 일화. 언니야 ‘예수님이 떼로 몰고 온’ 손님 대접 준비로 방방 뛰는 참인데 눈치코치 없이 예수님 발치에서 턱 고이고 앉아 예수님 얼굴만 말똥말똥 쳐다보며 그 말씀에 귀 기울이는 척하고 있었을 마리아! 그야말로 ‘여성 공공의 적’ 마리아 얘기만 나오면 성당에서 온갖 봉사활동에 분주한 모든 여교우가 마르타가 되어 열을 받는다.
거기에 기름을 붓는 예수님 말씀이라니! “놔둬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그리고 얘 성미로 그 몫을 빼앗기지도 않을 것이다!” 심수봉의 노랫가락(‘여자는 항구 남자는 배’?)에서 나오는 한탄처럼 “남자는 다 그래!”라며 입이 열자나 나왔을 마르타!
내일 우리 가족 전부가 제주엘 간다. 빵기네 4식구와 우리 부부, 그리고 빵고신부까지 일곱! 예전 같으면 김치랑 장조림 멸치볶음 등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이번에는 내가 아무 준비도 안하고 있다. 빵고신부더러 ‘이번에는 그냥 간다’니까 ‘엄마,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보세요. 주면 드시고 안 주면 다음끼니를 기다리시고!’라는 대꾸. 마르타처럼 수선피우지 말고 마리아처럼 얌전할 수 있으면 해보시라는 말투다. 좀 힘이 들겠지만 이번엔 그러도록 노력해 볼 심산이다.
낮에는 빵기네 가족, 빵기 친구 희석이네 식구들에 나도 끼어 롯데 시네마에 갔다. 새로 나온 영화 “라이언 킹”을 보러간 길. 어린왕자 삼바가 라이언 킹이 되는 단순한 줄거리인데 나오는 동물들의 컴퓨터그래픽이 실물보다 더 실감나게 만들어져 오히려 다큐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여서 나처럼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시우가 할미에게 제 엄마 흉을 본다. “엄마가 반쯤 보더니 ‘나는 이제부터 자도 되겠다’고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는 자버렸어요.” 정말 우리 며느리다운 모습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보스코는 어제 저녁 함양에 내려갔다가 오늘 다섯 시쯤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그 행동 하나로 ‘아내의 일이라면 애면글면 애를 쓰는 성 선생님을 보니 순란이 너, 시집 하난 잘 갔다!’는 한목사의 평을 듣기에 이르렀다.
저녁에는 애들이 좋아한다는 수제비를 해서 한 그릇씩 먹었는데 ‘할머니가 하는 모든 음식이 맛있다’고 아첨하는 손주들이 예뻐서 이 삼복더위에도 더운 줄 모르고 열과 성을 낸다. 집안에 가득한 애들 소리가 (걔들이 가고나면) 오랫동안 집안에 메아리한다는 까닭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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