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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지요하) 노년의 눈물겨운 ‘병고’를 고백합니다 2020-08-25
지요하 edit@catholicpress.kr


▲ 지난 7월 11일 태안에 온 아들, 손자와 함께. 4년 동안의 병고로 폭삭 늙었다. 지금 세상에 누가 나를 72세로 보겠는가... ⓒ 지요하


참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매일같이 괴이한 병고에 시달리며 살기에 글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그 병고는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이 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불편을 겪으며(자주 종이컵에 코가래를 뱉으며) 이 글을 씁니다.


나는 2017년 6월 4일 오후 A의료원 이비인후과에서 비염수술을 했습니다. 여러 번의 수술 경험이 있고 간단한 수술이라는 젊은 의사의 말에 별 생각 없이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 집에 왔을 때 이상한 느낌 때문에 코에서 약솜을 빼내니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아스피린 복용 상태로 비염수술을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서울에 갔다가 막 내려온 아내를 차에 태우고 목으로 넘어오는 피를 종이컵에 뱉으며 B의료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의사가 손을 써도 지혈이 되지 않았습니다. 비염수술을 한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다시 차에 올라 A의료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거기에서도 지혈은 되지 않았고, 일단 퇴근했다가 연락을 받은 주치의가 서울에서 급히 내려왔습니다.


수술실로 옮겨져서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의문인 것이, 주치의는 왜 수술 전에 환자의 아스피린 복용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왜 상급병원 이송을 주선하지 않았는지, 왜 지혈을 하는 쪽으로만 손을 쓰지 않고 재수술을 한다고 레이저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코의 점막에 화상을 입히고 콧구멍을 넓혀 놓았는지….


양쪽 코를 꼭꼭 틀어막은 채로 48시간을 지내는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그런 고생이 없었습니다. 이틀 후 양쪽 콧구멍에서 솜을 빼내니 이제 살았구나 싶었고, 그것으로 ‘사건’은 끝이 난 줄 알았습니다.


후비루(코가래)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열흘가량 지났을 때 내 코에서 후비루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다시 A의료원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내시경 관찰을 한 의사가 “콧속에 고름이 잡혀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지만, 난 곧 A의료원을 떠나게 돼서 첵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라고 태연스레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달포 가량이나 지나 새로 부임한 이비인후과 과장은 내시경 관찰을 하고는 내 콧구멍이 비정상적으로 너무 넓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약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약을 복용하면서 하루 세 번씩 식염수로 코 세척을 하고, 코 점막에 바르는 약도 열심히 사용하면서 후비루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장 기능을 잃어 2016년부터 복막투석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복막투석 환자로서의 불편보다도 코를 다친 데서 오는 불편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 고생스럽습니다. 치료비도 엄청 많이 듭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무시로, 또는 쉴 새 없이 발생하는 후비루를 고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백방으로 뛰었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서울의 5개 대형병원, 대전과 논산의 3개 개인병원, 서울과 태안의 3개 한의원을 전전하며 체력도 많이 소모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고, 코의 불편과 글을 쓰지 못하는 공황 사태, 과도한 비용 지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병고 속에서 4년이 지나는 동안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몸의 건강이 전체적으로 망가져 버렸고, 폭삭 늙어버렸습니다. 이태 전까지는 차 운전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걸음도 제법 걸었습니다만, 지난해부터는 차 운전도 하지 못하게 됐고, 올해 들어서는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잦은 코가래와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불편 때문에 병원 가는 일 외로는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소일합니다. 이런저런 여러 모임에도 불참하게 됐고, 성당 미사에도 참례치 못하며 적막하게 삽니다. 정말 적막강산이 따로 없습니다.


걷지 못하게 된 데에는 수면제 영향도 클 것 같습니다. 코가래 때문에 도저히 잠이 들지 않고 밤새 생고생을 하게 되니 매일 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졸피드’ 외로 보조수면제들도 복용하는데, 용케 코 질환을 고친다 해도 죽는 날까지 수면제를 복용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수면제 덕분에 네댓 시간 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입 안 곳곳에 묻어 있는 코가래를 물을 마셔 적신 다음 여러 번 뱉어내는 일이 하루 생활의 시작입니다.


내 코 질환은 불치병, 일종의 ‘장애’가 된 것 아닐까?


나는 내 코 질환이 끝내 고칠 수 없는(?) 병임을 이미 2018년 서울 C한의원의 진단과 2019년 서울 D병원 김 모 교수의 태도에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A의료원 이비인후과의 새로 온 의사가 이런저런 약물 치료에도 효과가 없자 하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셔서 외과적 수술을 받는 것 외로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시경 장비를 갖춘 서울 C한의원(마포점)의 젊은 여성 원장은 내시경 관찰 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코의 원래 구조에 변형이 생겨서 어떤 치료든 물리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열심히 치료를 해도 치료 효과는 50% 정도입니다. 그래도 치료를 하시겠습니까?”


그 50% 치료 효과가 너무 모호하기도 해서, 나는 두 달 치료비 126만원을 소비하고 C한의원 진료를 접었습니다.


D병원 이비인후과 김 교수는 처음에는 수술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약물 치료에도 효과가 없고, 내가 아무래도 축농이 있는 것 같다며 간곡하게 수술을 요구하자 마지못해 내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수술을 하면서 김 교수는 “수술하길 잘했네요. 고름이 있네요”라는 말을 했고, “숨어 있는 고름도 있네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살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술 효과는 한 달 가량 유지되었습니다. 다시 후비루가 발생하여 또다시 D병원을 찾았을 때 김 교수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다시 수술을 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면 나는 손대지 않을 겁니다.”


박절하게 느껴지는 그 말 속에는 어떤 ‘암시’가 분명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다시 수술을 해봤자 ‘도로아미타불’이 될 거라는 얘기였고, 내 코 질환은 고칠 수 없는 ‘장애’가 된 사실을 내비치는 말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이제 병원에 그만 오시라는 그의 말에 따라 D병원 진료를 접으면서 나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심정이었습니다.


그 후 E병원과 논산시 연산면의 한 개인병원, 또 대전의 한 개인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았지만, 끝내 희망을 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의료사고 손해배상’ 청구, 즉 ‘소송’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찍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필사적인 노력들에 치료 성과가 있었다면 자연 소멸될 일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온갖 치료 노력들이 헛일로 귀결되고, 내 고약한 코 질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죽는 날까지 가지고 갈 거라는 공포감에 억울한 마음도 들어 소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지난 4년 동안의 투병 생활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건을 만들었습니다. 그 문건을 내 피붙이들과 서산의 모 변호사, 그리고 우리 태안성당 주임신부님과 두 분의 외지 신부님께 메일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 메일을 읽으신 경기도 안성 ‘유무상통마을’의 설립자로서 은퇴 사제이신 방 구들장 신부님은 큰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늙고 병약해진 내가 소송에 매달리다 보면 중간에 지쳐서 절명하게 되리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결국 나는 소송의 뜻을 접었습니다. 그 대신 그 문건을 A의료원에 제출했는데, 얼마 후 A의료원의 원무과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원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위로금 조로 190만원이 책정되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 동안의 치료비와 경비만 해도 1천만 원이 넘었음을 실토했습니다. 최소한 1천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했고, 4년째 감내하고 있는 내 ‘고생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실상을 보여줄 수 없기 까닭이었습니다. 결국 나와 A의료원 원무과 직원의 협의는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A의료원 원무과 여직원과 서산 문 모 변호사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에게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대한 정보를 얻고, 또 중재신청 권유도 받았습니다.


나는 즉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서 양식 파일을 다운 받은 다음 정성스럽게 작성을 했습니다. 그 동안의 치료비 약 1천만 원, 교통비와 기타 경비 약 200만원, 앞으로 약 2년 동안 투입할 한방치료비 1,560만원과 경비 약 100만 원 등을 적시하였고, 4년 넘게 지속되는 코 가래에 매일 시달리는 불편함, 또 그로 말미암아 몸의 건강이 전체적으로 망가져 폭삭 늙어버린 사정들을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4년 넘게 겪고 있는 형벌 같은 ‘고생’의 실상,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존하며 살고, 소설가로서 소설 작업을 포기하고 사는 눈물겨운 현실에 대한 ‘위로금’으로 1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2011년 4월에 설립된 준사법기관으로 ‘의료분쟁’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신속하고 공정하게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통상 1억 원 안팎의 의료분쟁을 조정 해결해주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신청서를 파일로 넣은 다음 A의료원 2017년 6월의 ‘의무기록’ 사본, 서울 D병원 2019년 1월의 의무기록 사본, 그리고 가장 최근인 서울 서초동 ‘라경찬한의원’의 진단서와 < 태안신문 >에 연재하고 있는 ‘투병기’의 절반(1회분에서 6회분까지) 실린 < 태안문학 > 44집 한 권 등을 등기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나 같은 사회적 약자, 늙고 병들고 돈도 없어서 법원에는 가지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기관인 줄 알았습니다. 신청서 파일을 접수한 다음 날 카톡 창에 중재원의 공지가 떴습니다.


“신청인의 신청 사건은 조정4팀(팀장 000)에서 담당하며, 7월 17일까지 피신청인이 조정절차 참여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건은 자동 각하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20일에는 카톡 방에 다음과 같은 공지가 떴습니다.


[2020의조 1112, 각하 안내]


피신청인의 절차참여 부동의로 조정사건이 각하되었습니다. 제출 서류 및 수수료를 반환할 예정입니다.


담당자: 조정감정 4팀 000 02)6210∼0194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이 내 머리에 화살처럼 꽂혔습니다. 나는 즉시 전화를 걸어 격렬하게 항의를 쏟아내었습니다.


내 항의 내용은 글이 너무 길어지기에 생략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현재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울 서초동의 모 한의원을 다니며 처음 접해본 특이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한방치료비가 비싸다는 것은 일찍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 진료를 받고 있는 한의원은 유난히 비쌉니다. 치료 예정 기간 2년 동안 지불해야 할 치료비는 1,560만원이나 됩니다.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이 글을 코가래와 씨름하며 이틀이나 걸려 썼습니다. 글을 마치며 다시 한 번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묻습니다.


“그런 거짓 간판을 걸고 왜 존재합니까?”


A의료원에도 묻습니다.


“조정중재원의 조정절차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너무 비겁한 행동 아닙니까?”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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