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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민 주도’의 녹색금융을 제안한다 경기도 녹색금융 논의에 부쳐 양준호 2020-10-16 10: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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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일본 도쿄에 있는 매우 ‘재미있는’ 은행(?)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프로젝트에만 자금을 공급하는 이른바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의 각국 사례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일본 각지에서 시민들이 직접 출자해 경영하고 책임을 지며, 지역의 생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지향하는 시민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해 지역사회 혁신에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이 시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그곳의 이름은 ‘미래뱅크사업조합’. 은행명도 독특했지만 그들의 금융사업 방식도 매우 획기적이고 또 진보적이었다. 나아가 그들의 사업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 은행은 탈원전, 녹색성장, 신재생에너지 등과 같은 친환경적 실천에 적극적인 도쿄 시민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서, 그 투자에 대해 낮은 금리의 배당을 지급한다. 시민들로부터 예금은 받지 않았으며, 법적 조직형태는 대부업체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는 예금 취급기관이 되면 일본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를 받게 돼 자신들이 지향하는 시민의 녹색 프로젝트에 대한 ‘인내심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융 당국이 은행들을 수익성, 건전성으로만 옭아매는 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은행의 투자자 중 80%가 낮은 금리의 배당도 마다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배당보다 중요한 것은 녹색 프로젝트를 통한 지역사회 혁신인 것 같다. 1994년에 설립된 이 은행은 주로 지역의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등 탈원전 에너지전환 사업, 친환경상품 생산, 그리고 시민에 대한 녹색교육 사업에 파격적인 저금리(최대 2%)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래뱅크사업조합이 녹색 프로젝트와 관련해 자본력과 기술력이 있는 사업 주체는 융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지역에 뿌리내려 활동하면서 사회성과 공공성을 견지한 주체들의 자금수요에 한해서만 융자를 제공해왔다는 점이다. 즉 녹색 관련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NGO 중에서도 금융기관에 계량화된 재무정보나 담보를 제공할 수 없어 신용할당의 피해를 받고 자금시장에서 배제되어 온 주체들에게 혜택을 준 것이다.


역량 있는 큰 규모의 사업조직이 아닌 이들에 대한 융자는 당연히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은행은 도쿄도 등 지자체와 연계해 리스크를 공유했다. 무담보 대출기한은 10년 이내로 설정했고, 융자 상한액은 300만 엔에서 900만 엔으로 설정하며, 장기회임기간을 갖는 설비자금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공적 신용보증을 통해 거액의 융자를 시행하기도 했다. 지자체는 이 은행의 융자에 대해 일정 비율까지 그 손실을 보전해준다고 했다. 해당 은행이 융자 결정을 하는 모든 과정에는 금융전문가 시민, 출자자 시민, 지역의 녹색운동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 은행의 위와 같은 파격적인 시도들은 지역 시민으로부터 탄탄한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 그 지지는 이 은행에 대한 지속가능한 시민 출자, 즉 사업의 영속성을 담보해 내고 있었다. 현재 이 은행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시민은행형 녹색금융기관으로 발전했다.



최근, 경기도형 그린뉴딜을 논의하는 한 토론회에 참여해 ‘그린뉴딜을 위한 녹색금융, 그 사회적 금융의 방향과 과제’란 주제로 발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일부’ 주장들은 녹색금융을 제1금융권 식 영리 모델의 틀 안에서 인식하고, 또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와 관련한 문제의식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녹색금융이 ‘시민적이고 사회적인’ 녹색 사업을 담보해낼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그리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약간의 우려를 전제하여, 경기도 녹색금융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그린뉴딜 즉 ‘뉴딜’ 차원에서 정책화하고자 하는 녹색금융인 만큼, 기존의 상업금융 즉 영리주의적인 금융의 틀을 근본적으로 깨부수는 금융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사업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업금융시장에서 배제되어 버린 녹색 사업자들, 특히 녹색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끌어안는 포용적 금융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녹색 주체들에 대한 투‧융자 결정(심사)의 전 프로세스에 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금융의 시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담보되어야 한다. 기존의 금융을 획기적으로 변혁할 수 있어야 그린 ‘뉴딜’ 차원의 녹색금융으로 평가될 수 있다.


셋째, 일반 은행 형태로 ‘경기도 녹색은행’이 설립되면, 예금을 취급하는 은행이기 때문에 수익적, 영리적 규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금융위원회와 같은 금융감독 당국의 간섭과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신협이 지역밀착형 조직 또는 협동조합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상업 금융 은행들과 같은 기회주의적 자금공급 행태를 보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니 일본 시민사회가 설립한 녹색은행들과 같이, 어감은 좋지 않지만 법적 조직형태를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 대부업체로 해 설립‧운영하게 되면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악덕 대부업체와 달리, 모든 운영 과정을 시민이 직접 통제해 공공성과 사회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넷째. 경기도 녹색은행의 자금은 ‘사회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영리 상업은행들은 지역 내 약자들의 자금수요를 지금껏 외면해왔다. 수익 원리주의에 빠진 지역 상업은행들에게 지역 발전 또는 지역 혁신과 관련해 자금을 투‧융자할 것을 의무화하는 ‘경기도 지역재투자 조례’를 제정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각출된 자금으로 녹색 주체들에게 투‧융자하고, 그 리스크는 경기도가 공적 보증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녹색금융에 비즈니스가 강조되다 보면, 제대로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녹색금융은 물 건너 가버리게 된다. 사회적, 공공적 기여를 위한 녹색금융은 금융의 ‘뉴딜’ 을 통해서만, 특히 금융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관여를 통해서만 담보될 수 있다.


양준호(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민중의소리]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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