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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미얀마 학살 중단’위한 거리미사 현지 파견사제 편지 공개··· “살육의 현장 너무 고통스러워” 강재선 2021-03-16 10: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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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재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구사)이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거리 미사를 봉헌했다. 


16일, 정구사는 미얀마 대사관 무관부(옥수동 성당 근방) 앞에서 미얀마 군부에 유혈 사태 중단을 요구하며 정구사차원에서 미얀마 시민들을 여러 방면으로 꾸준히 지원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 박주환 대전교구 신부 ⓒ강재선


이날 강론을 맡은 천주교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는 정구사에 소속된 한 사제(이하 A 사제)가 미얀마에 파견되어 있는 동료 사제로부터 받은 편지를 대독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박 신부가 대독한 편지 안에는 미얀마 군부의 폭력과 시민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에 관한 복잡한 심경과 함께 왜 한국인들이, 또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인”


A 사제는 가장 먼저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외국인이자 수도자인 탓에 좁은 운신의 폭으로 직접적인 활동에 나서지는 못한다며 “나만 미얀마의 고난에서 벗어나 지내고 있다는 죄책감과 함께 솔직히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도 마음 한구석에 숨어있다”고 고백헀다. 


그러면서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기도와 영적 증언이 아닐까 한다”며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통해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미얀마 사람들은 지금 후손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나선 게 분명하다.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이 민초들이야 말로 진짜 영웅들이다.


그는 “먼저 수도자로서 하필 이 시점에 미얀마에 있게 된 것은 특전”이라고 말했다. A 사제는 “(군부 탄압과 같은) 이런 상황에서 빛나는 것은 역시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어리석게까지 보이는 용기”라며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미얀마 사람들은 지금 후손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나선 게 분명하다.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이 민초들이야 말로 진짜 영웅들”이라고 강조하고 이것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이야 말로 특전이라고 말했다.


A 사제는 “그래서 나는 지금 부끄러움의 선물을 받고있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겠나 싶다”며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이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인이다. 이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못 보는 게 어찌 가능하겠는가”라고 직접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동료 시민들을 위해 서로 희생하는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경의을 표현했다.


▲ ⓒ강재선


A 사제는 미얀마 사태를 두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오지랖”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뜻밖에 닥쳐온 강도의 공격을 받아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쳐버린 사제나 레위인처럼 교회밥을 먹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런 무난한 선택을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데도 당시 사회에 천대받던 사마리아 출신자만은 차마 현장을 외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을 “평화롭기만 할 하늘을 버리고 사람의 모든 불편과 권한을 더불어 감당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그 하느님의 오지랖”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곳 양곤 한국 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제발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또박또박 한국말로 울부짖던 미얀마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도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웠다”며 “굳게 닫힌 대사관 철문은 마치 타인이 당한 불행을 빗겨가는 사제와 레위인들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고 통탄했다.


목숨을 걸고 말도 안 되는 억압과 압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인간성 가장 깊은 곳인 양심에서 울려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기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시민 불복종 운동은 사실 하느님 말씀과 양심에 대한 복종 운동이다. 


군부가 시민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는 모습과 시민들을 향해 사냥꾼처럼 발포하는 모습을 보며 “같은 사람을 향해 몇 번이나 정조준해서 쏘다가 결국 살해에 성공했다며 환성을 내질렀던 사냥꾼들 앞에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이 통째로 짓밟히고, 파괴되고 희롱당한 것 같은 모멸감 속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바라보니 그렇게 조준사격해가며 악행을 저지르는 그 몹쓸 인간도 결국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에서 생기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수치심이 하나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 피켓을 들고 함께 하는 수도자들 ⓒ강재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력 진압을 중단할 것을 호소한 누 따웅 수녀의 이야기를 비롯해 시민들이 미얀마 군부에 맞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는 구체적인 모습 가운데서 “인간이라는 자랑스러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A 사제는 “줄기차게 평화시위를 이어가는 평범한 미얀마 사람들의 결연한 표정, 살육의 현장에 나뒹구는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는 발걸음들, 거리에 비록 나가지 못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과 음료수를 챙기는 정성, 나도 가난하지만 십시일반으로 모금해서 시민 불복종 운동에 뒤따르는 부족분을 돕고자 내미는 손길과 같은 모습들은 거의 반대되는 또 다른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며 “이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자랑스러움,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과 자부심을 통해 부끄러움의 어둑하고 차가운 폭력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A 사제는 인종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 나치에 대항한 본회퍼 목사의 저술 가운데 하나인 ‘저항과 복종’이라는 제목을 묵상하며 “목숨을 걸고 말도 안 되는 억압과 압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인간성 가장 깊은 곳인 양심에서 울려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하기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니 시민 불복종 운동은 사실 하느님 말씀과 양심에 대한 복종 운동이다. 복종해야 할 유일한 음성에 복종하면, 저항해야 할 폭력에 꿋꿋이 저항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진선미 하느님 모습을 닮은 아름다운 저항”이라고 강조했다.


▲ ⓒ강재선


A 사제는 “저항해야 할 것에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종해버리면 정작 복종해야 할 양심은 질식당한다. 이것은 더러운 복종”이라고 비판하며 가톨릭교리에 따라 “권력에 대한 우리의 불복종과 저항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라고도 덧붙였다.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이나 기본 인권이나 복음의 가르침 등에 어긋날 때, 시민들은 양심적으로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가톨릭교리 2242항)


강론을 맡은 박주환 신부는 A 사제를 대신하여 힘찬 목소리로 “특히 미얀마 군인들에게 간청한다”며 “형제들이여, 여러분 각자가 모두 우리다. 우리는 동족이다. 여러분을 죽이는 노동자, 농민은 여러분의 형제자매다. 죽이라는 명령을 들을 때 ‘살인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생각하라.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비탄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미얀마에 억눌린 백성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호소합니다! 명령합니다! 억압을 중단하십시오!”라고 외쳤다.


“살육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누군가의 이익 돼서는 안 돼


▲ 연대발언 중 눈물을 흘린 나현필 사무국장 ⓒ강재선


이날 연대발언을 위해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 사무국장은 양곤 공단 지역에서 유혈 진압이 발생하여 수십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지역에 가본 기억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아팠다”고 말했다.


그들의 살육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게 하지 말자고 호소해달라.


나현필 사무국장은 한국의 의류봉제기업들이 진출해있는 양곤 공단지역에서 열악한 조건을 견디고 일했던 이들이 대부분 10-20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며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파업과정에서 경찰, 용역에 의해 폭행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한국기업에 맞서 싸우던 여성 노동자들이 이번 시민 불복종 운동 선두에 서서 싸워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활동가로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나 사무국장은 구체적으로 군부의 “살육”을 멈출 방도가 보이지는 않지만 “오늘 같이 많이 기도해달라”고 청하며 종교계도 시민사회와 함께 미얀마 군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향해 “그들의 살육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게 하지 말자고 호소해달라”고 청했다.


정구사, 미얀마 시민들에 2만 달러 지원금 전달··· 활동가, 학생 등 더 지원 예정



정구사는 최근 평화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에게 2만 달러를 모금해 전달했으며, 오는 4월 30일까지 모금을 통해 다시 한 번 민주주의 시위를 위한 지원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정구사 대표 김영식 사제는, 미얀마 활동가나 학생들을 선발하여 한국 유학을 주선하고 장학금을 지급하여 이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시민 학살 중단하라’는 주제로 봉헌된 이날 야외 미사에는 50여 명의 신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참여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지난 주말 미얀마 군부가 또 다시 비무장 시위대를 공격하여 최소 38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군부가 쿠데타를 벌인지 6주가 지난 현재까지 130여 명에 달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현지 소식을 전하는 < Myanmar Now >는 지난 주말 시위 당시에 양곤에서 가장 큰 마을인 흘라잉따야 마을(Hlaing Tharyar Township)에서만 18명이 사망했으며, 그 외에도 양곤 시 전역에서 최소 30명의 시민들이 미얀마 군경의 진압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도 최근 미얀마 가톨릭교회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담아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Charles Maung Bo) 추기경에게 서한과 함께 긴급 지원금 5만 달러를 보냈다. 서한과 긴급 지원금은 주 미얀마 교황청 대사로 있는 장인남 대주교를 통해 전달될 예정이다.


▲ 미얀마 대사관 맞은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무 피켓 ⓒ강재선


이에 앞서 박정희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지학순 주교의 정신을 따라 설립된 가톨릭 단체 (사)저스피스도 미얀마 대사관을 항의 방문하여 미얀마 군부가 벌인 유혈 사태와 폭력을 규탄하고 미얀마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역시 미얀마 군부가 자행하는 유혈 사태에 우려의 성명을 발표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통해, 미얀마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적인 국가 공동체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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