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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 미얀마 학생들 만나 “남의 일 아니다” 연대해 소극적이던 미얀마 불교계도 민주주의 행동 나서기 시작 강재선 2021-03-19 16: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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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서울대교구)


지난 18일 오전, 한국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은 한국에서 유학 중인 미얀마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에게서 현지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 종교계에 전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바람을 나눴다.  


이에 앞서 염수정 추기경은 미얀마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지지하는 뜻에서 미얀마 가톨릭교회에 5만 달러를 긴급 지원한 바 있다.


염수정 추기경과 만난 미얀마 유학생 한수민 씨는 14일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로 인터넷이 차단되어 현지에 있는 부모와도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있으며, 계엄령 선포 지역에서는 집밖에만 나가도 총격을 당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얀마 사람들은 이번에 민주화운동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위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서뚜카오 씨도 현지의 처참한 상황에 대해 전했다. 현지에서는 시위에 나서는 젊은 학생들이 대거 납치당하고 납치를 당했다가 “군부의 폭행으로 사망해 시신으로 돌아온다. 미얀마에 ‘인권’은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염 추기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그렇기 때문에 “12일에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께 서한과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한 지원금을 보냈고 한국 주교단도 미얀마와의 연대를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한 가족으로 마음을 모아 미얀마가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도로 함께 하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라크에 방문하셔서, 평화는 승자나 패자를 요구하지 않고 형제와 자매를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평화를 깨지게 하는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자신의 SNS에 이번 만남의 후일담을 밝혔다. 홍성남 신부는 한국 유학 중인 미얀마 청년들의 존재를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을 통해 알게 되었고, 천주교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를 통해 염수정 추기경과 미얀마 청년들의 만남을 요청했다. 홍 신부는 “밤마다 성모께 미얀마를 구해달라 기도했더니 응답하셨구나 하는 생각”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소극적이라 비판받던 미얀마 불교계, 한 목소리로 행동 나선다는 소식 전해져


▲ `우리는 평화롭게 시위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WhatsHappeningInMyanmar)


한편, 지난 17일에는 2007년 ‘미얀마 샤프론 혁명’을 주도했던 승려들이 뒤늦게나마 군부를 규탄하며 미얀마 시민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지 소식을 전하는 < Myanmar Now >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 산하 미얀마 최고승려기구인 주 상하 마하 나야카 위원회(State Sangha Maha Nayaka, 약칭 마하나)는 군부를 “무장한 소수병력”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이 비무장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을 멈추라는 내용으로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 


마하나 회의에 참석한 익명의 승려에 따르면 군부가 진압을 멈추지 않을 경우 승려들이 관할하고 있는 사찰과 학교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계획이다.


2007년 군부의 부패하고 방만한 국가 운영으로 시민들의 삶이 어려워짐에 따라 촉발된 ‘샤프론 혁명’은 시민들의 탁발로 먹고사는 승려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일이었기에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승려들의 의복색인 ‘샤프론’이라는 별칭이 2007년 시위에 붙게 되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산하 매체 < Eglise d'Asie >는 승려들이 2007년에는 군부를 상대로 혁명을 이끌었지만, 2017년 군부가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상대로 외국인혐오적 시위를 이끌기도 하고 아웅산 수치로 대변되는 민족민주동맹당(NLD)를 지지하는 등 정치적으로 단일하지 않은 집단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쿠데타에 대해서도 승려들은 각기 다른 행동을 보였다. 먼저 지난 2월 1일 군부의 쿠데타를 앞두고 랑군과 네피도 등지에서 일부 승려들이 군부에 합세하여 선거부정을 주장했고,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역시 쿠데타를 앞두고 주요 사찰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기부금을 전달했다. 반면, 3월 14일 양곤 공단지역인 흘라잉따야, 만달레이 아마라푸라 등 여러 곳에서 승려들이 시민들의 평화시위에 합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원이자 1988년 8888혁명에 참여했던 킨 마르 마르치(Khin Mar Mar Kyi) 박사는 “일부 승려들, 특히 불교·국가·군부 연합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던 승려들은 아웅산 수치 정부 하에서 위협을 느낄 수 있었다”며 “최근까지 미얀마인이라는 말은 불교신자라는 뜻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즉, 아웅산 수치 정권 하에서 미얀마 소수민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불교 신정주의 국가를 추구하던 승려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느껴 보수적인 도덕관과 종교관을 유지하는 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하나는 이처럼 산발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미얀마 전역의 승려 60만여 명을 관장하고 있는 기구인 만큼, 단일한 입장을 표명하는 승려단의 성명서는 미얀마 군부를 저지하는데 있어서 진일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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