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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마르크스 추기경 사임 반려 ‘교회 잘못 책임지겠다’는 추기경에게 “교회 전체가 위기다” 끌로셰 2021-06-12 15: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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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Vatican Media)



가톨릭교회 내 성범죄 문제를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주교로서 책임지겠다며 사임 서한을 제출했던 라인하르트 마르크스(Reinhard Marx) 추기경의 사임을 교황이 반려했다.


'독일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제목으로 교황청이 공개한 답신은 친밀한 호칭을 사용하며 마르크스 추기경 발언을 하나하나 짚어 동의를 표하는 개인 서한의 형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도교회의 잘못을 책임져야 할 주교들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질책했다.


“나 몰라라식 정치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교황은 가장 먼저 마르크스 추기경에게 “무엇보다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며 “당신이 보여준 용기는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이라는 끔찍한 현실에 부끄러워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적인 용기”라고 말했다.


이어서 마르크스 추기경의 지적에 동의하며 “성범죄로 인해 교회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이에 더해 오늘날 교회는 이 위기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일부 주교들이 자신이 성범죄와 직접 연관이 없다는 구실로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은폐하는 모습을 두고 “나 몰라라식 정치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우리의 파스카 신앙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 차원에서 위기에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공동체로서 위기에서 벗어나는 생명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마르크스 추기경에게 “성범죄의 슬픈 역사와 교회가 최근까지 성범죄를 다루었던 방식을 두고 재앙과 같다고 묘사한 것에 동의한다”며 “우리가 신앙을 체험하는 방식 가운데 나타나는 이러한 위선을 깨닫는 것은 은총이며, 이는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차원에서도 역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범죄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겸손하게 고백해야"


특히 교황은 개인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보편교회, 제도교회의 책임자로서 자기 책임을 부정하는 주교들을 향해 “‘목숨을 걸지 않고’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꼬집었다.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현실은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관념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관념은 논의의 대상이고, 현실은 책임과 식별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대상이다. 역사적 상황이 각 시대의 해석법에 따라 이해되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를 ‘우리를 에워싼 죄악’의 역사로서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할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나는 보편교회의 모든 주교가 이 현실에 책임을 다하고 ‘나는 이 위기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황은 “우리가 요구받고 있는 것은 그 결과가 어찌 되든 용기 있게 위기를 마주하고 현실을 감당하는 태도라는 개혁이며 모든 개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회의 개혁은 위기에 봉착하여 주님으로 인해 개혁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목숨을 걸지 않은 ‘개혁 이념주의자’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교황은 “당신은 서한에서 과거를 묻어버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침묵하고 태만하며 제도교회 명성만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개인적, 역사적 실패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우리는 ‘옷장에 숨겨둔 백골’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성범죄 현실과 교회가 이를 다뤄왔던 방식을 ‘바깥으로 드러내고’ 성령이 우리를 비탄의 사막, 십자가, 부활로 이끌도록 허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성령의 길이며 그 시작점은 ‘우리가 틀렸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겸손한 고백”이라고 강조했다.


“주교들, 베드로처럼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고백해야”


교황은 특히 주교들을 향해 “설문조사, 제도 권력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의 명성도 자기 죄를 숨기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도 의존하고 있는) 돈의 권력과 매체의 여론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에게 문을 열어드리고,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우리 자신의 헐벗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며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더듬더듬이나마 말함으로써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초대 교황이 역대 교황과 보편교회 주교들에게 남기고 가신 유산”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 보여주시는 가엾음과 온유에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치유의 힘을 가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교회로서 우리는 부끄러움의 은총을 청하고, 주님께서 에제키엘 16장에 나온 파렴치한 탕녀의 모습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사랑하는 형제여, 이것이 내 답입니다. 당신이 말 한대로 계속하되,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으로서 계속하십시오”라며 “당신의 사명을 확인해주면서도 사임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이 로마의 주교라는 사람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베드로가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주님께 자기식으로 사임을 청하자 ‘내 양 떼들을 돌보아라’는 답을 들었을 때 느꼈던 것을 떠올리십시오”라고 말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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