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훈련을 하는 1년코스 학교
지구촌 수십 개 나라를 오랫동안 걸으면서 알아차렸다. 한국인처럼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생활한다면 지구가 몇 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이라고. 문제는 지구촌 사람들이 이런 성장을 선망하고 있다는 것. 시장경제가 그렇게 흐르다 보니 적절한 모델이 없는 탓도 있다.
희망을 품게 된 것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생태적 모델이 보편화되어 시장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중이었다. 깨끗한 먹거리와 그를 뒷받침하는 생태농사기술,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그 실행을 해가는 거버넌스, 에너지절약 등 생태건축, RE100의 확산 노력 등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 같은 나라들처럼 시장경제 속에서 생태 부문이 제대로 행세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젠 더 늦출 수 없다. 세계 경제가 RE100 체제로 전환하면 많은 분야도 동시에 전환해야 한다. 가령 재생가능에너지가 늘어나면 좌초산업과 실업자의 증가도 불가피하다. 반면 새로운 직능을 맡을 인재는 부족하다.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으로는 좇아가기 힘든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도 그렇듯이 결국에는 교육에서 승부가 나게 되어있다.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교육이었듯이 지구촌 차원의 지속가능한 세상으로의 전환도 교육에 성패가 달려 있다.
바로 이 국면이 상상의 출발점이다.
진숙의 이야기
2024년 서울의 K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진숙은 입학하자마자 '생명의 학교'가 있는 익산 원광대 캠퍼스로 떠난다. 평소 깨끗한 먹거리와 그 농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 실습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생명의 학교에서 1년간 학점을 이수하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한 학급에 20명 두 학급 해서 모두 40명이 전교생이다. 등록금은 K대학에 납부했기에, 생명의 학교에는 약간의 실습비만 추가로 내면 된다. 이 학교의 재정은 국가가 대부분 지원한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권유하고 있다. 먹거리와 농사실습의 일원화를 기하는 시스템이다. 기실 현재 한국의 먹거리는 문제가 많다. 농약뿐 아니라 GMO변형 식재료들이 넘치고 있는 마당에 이 학교에서는 가급적 스스로 지은 농산물로 먹거리를 만든다. 이 부분이 진숙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형덕의 이야기
수도권 사립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형덕은 평소 전통건축과 생태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천식을 앓는 누이가 아파트 생활에 지쳐 좀 더 건강한 주거생활을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규대학에서 이런 기술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하여 생명의 학교에서 생태건축과 목공동아리에서 그 기초를 닦고 싶었다. 이 기숙사가 있는 '생명의 학교에'서 체류하면서 생태건축/목공 동아리에서 1년간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건축가가 될 자신에게 훌륭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훈련은 게스트하우스를 에너지절약형 생태건축물로 짓는데 그 모든 과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공사에 참여하면서 실질적 체험을 쌓아갈 수 있었다. 전통 방식의 온돌 시공에서부터 창호와 단열재의 활용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
희숙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지방국립대학 환경공학과에 입학한 희숙은 '생명의 학교' 얘기를 듣고 기뻐했다. 기후위기에 실천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대학 고학년의 환경전공 분야에 있어서도 생태적인 부문에 대한 커리큘럼이 부족하고 교수진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농학 분야도 생태적인 농사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 터에 자신의 요구를 안성맞춤으로 충족시키는 학습/실습의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학비도 기숙사비 외에는 추가로 드는 게 별로 없다.
현기의 이야기
현기는 어느 지방사립대학의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고는 에너지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 입학할 때쯤 기존 전기공학과의 커리큘럼을 보니, 에너지전환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주기보다는 전기공학 관련 그 자체의 이론과 응용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에너지전환의 기술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 듯했다. 그리하여 '생명의 학교' 소식을 듣고는 에너지전환에 대한 제반 지식과 실질적 기술을 익히고 싶었다. 태양광 패널의 설치와 관리, 소형 풍력발전 설비 등 현장에서 자주 활용되는 기술 등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이 실습의 경험은 학부에서 전공 공부를 할 때 더욱 생생한 도움이 될 것이다.
미정 카이의 이야기
미정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아버지가 한국에 유학하러 와서 한국인 어머니와 결혼해 낳은 2세다. 그녀는 한국어 교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진출할 생각을 하던 중 이 학교의 존재를 알게 되어 기뻤다. 그녀는 아예 처음부터 이 학교가 있는 원광대의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하기로 했다. 1년 코스의 '생명의 학교'이지만 경우에 따라 좀 더 반복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이나 녹색금융 같은 것도 아프리카에서 절실했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표준이 되는 한국의 먹거리에 대한 실습을 제대로 해두고 싶었다. 김치뿐 아니라 콩을 위주로 식물성 발효식품은 온실가스를 최소화하는 건강먹거리로 주목받고 있고, 물을 적게 사용하는 벼농사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은 지구촌을 살리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미정에게는 기숙사 생활을 통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의미가 컸다.
'생명의 학교'는 어떤 개념의 학교인가?
대안학교의 형태였던 '녹색대학'이 독립적으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기성 제도의 학위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배움터 형태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적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생명의 학교'는 기존의 대학 체제를 존중하면서, 학습자에게 양자택일의 고민을 하게 하지 않고도 기존 대학의 운영체제 속에서 생태적 지식의 학습과 실습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운영은 어떻게 하는가?
한 학급에 20명 두 학급 해서 모두 40명이 전교생이다. 입학 심사는 지원동기와 지원자의 내력이 중시될 것이다. 관심 있는 대학들과 학점인정 MOU를 체결할 것이다. 신입생들은 선택에 의해 '생명의 학교'에 와서 1년간 과목 이수한 다음 자신의 대학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소정의 등록금은 자신의 대학으로 납부하되, 생명의 학교에는 실습비 일부와 기숙사비만 납부한다. '생명의 학교'는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학습 과정이므로 국가가 지원하도록 한다.
'생명의 학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160조원 규모의 그린뉴딜 예산을 편성해도, 이를 제대로 집행하고 소화해낼 인재가 부족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은 기존의 학과에서는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바로 기후 대책,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등 녹색 부문의 지식이다. 개별전문지식은 쌓이고 있을지언정 교육과 학습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실습이 필요한 부문이 많다. 거기에 기여한다. 1년이지만 이 코스를 겪고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게 되면 학제 간 시너지 효과가 커진다.
구체적인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가?
강의 토론과목과 실습과목 두 영역으로 나뉜다. 전자인 강의 토론과목은 생명철학. 지구과학. 생명농사및먹거리. 생태건축. 생명농림어업경영. 동물복지. 협동조합. 녹색금융. 에너지전환기술. 생태관광 등이다. 실습과목은 이 과목 중 실습이 요구되는 과목으로 하되 필수와 선택으로 나뉜다. 실습 필수는 생명농사및먹거리 및 생태관광(현지 도보여행)이다. 교양 부문은 학생 각자가 필요한 과목을 자신의 대학과 온라인 연계 학습하거나 원광대에서 수강할 수 있다.
왜 원광대학교에 첫 캠퍼스를 만드는가?
원광대가 아니라도 무방하다. 다른 적극적인 대학에서 먼저 펼칠 수도 있다. 원광대는 하나의 모델이다. 지방명문 종합대학으로서 의과대학과 종합병원도 있다. 재단(학교법인)은 생명사상과 그 실천을 중시하므로 재단 차원의 격려와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원광대 캠퍼스와 그 주변은 땅이 넓고 농사실습장을 운영하기에 좋다. 전국에서 접근하기 좋고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장기적인 비전은?
초기에는 한 곳이지만, 점차 국내 여러 캠퍼스로 확산하고 장기적으로 지구촌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아마도 미네르바스쿨을 변형시킨 모델로 온라인 학습과 현장 체험을 융합한 모델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하나의 모범이 되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이 학교 설립 목적이다.
장기적으로 지구촌 각국에 '생명의 학교'를 운영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학생들은 1년에 3~4 장소를 옮겨가면서 학습을 할 수도 있다. 각 대학에 정식교과과정으로 자리잡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 오고자 하는 지구촌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는 예비학교가 되고, 지구촌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선행체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수원대 교수,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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