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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기다리시는 ‘아브라함들’이 되어야 [이신부의 세·빛]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과 영원한 생명 이기우 2024-03-21 1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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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목요일(2024.3.21.) : 창세 17,3-9; 요한 8,51-59


오늘 독서는 유다교 믿음의 근거를 보여주는 한편,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교 믿음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시조입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분의 축복을 받았으며, 그는 그 부르심과 축복을 온 삶을 다해 믿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하느님께서 직접 메시아로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대하였고 또 그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하느님의 집안을 형성함으로써 준비하였습니다.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라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22,17).


그런데 정작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물려받은 유다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설마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으랴 하는 마음에서였겠지요. 그 당시 이같이 파격적인 말씀을 들었던 유다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습니다. 말이 안 되는 허무맹랑한 헛소리라고 이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인간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으셨던 말씀을, 그 귀한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오해한 유다인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아브라함 후손들의 믿음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아니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직접 겪었고 배운 그 믿음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인 요한 복음 제8장의 말씀은 요한 복음 제1장 서문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서문에서 ‘말씀’으로 소개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예수님으로 바꾸어 읽어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뜻이 더 명확해집니다. “한처음에 예수님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분도 하느님이셨다. …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 예수님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14).


이런 바탕 위에서 오늘 복음의 본문을 다시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이 말씀을 뒤집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요한 8,56) 하는 말씀 역시, 아브라함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나서 그 계약을 실질적으로 이루어주시고자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고, 이것이 아브라함의 예수입니다, 그리스도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다음에 결정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이것이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이를 두고 선재성(先在性)이라 합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사람.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한 길을 열어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그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믿는 이들이 거저 받은 구원의 은총이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죽음이 오더라도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온전히 참여하는 문을 통과하는 것일 뿐이고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들 역시 같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천사들처럼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부활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계시는 예수님 역시 지상에서 공생활을 하실 때처럼, 아니 그때는 이스라엘 땅에서 유다인들만을 상대로 하셨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현존하시므로 온 땅에서 모든 이들을 위해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복음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에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그분이 지금도 같은 경로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우상숭배가 창궐하는 고향과 친족의 땅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갔습니다. 그가 하란을 떠날 때 일흔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 되어 하느님 백성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 백성을 찾아 오신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누리게 하시고자 믿음의 사람들, 즉 아나빔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우리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예수님께서 기다리시는 ‘아브라함들’이 되어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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