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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교회 그 자체 [이신부의 세·빛] 땅에서 하늘까지! 예수님의 약속 이기우 2024-08-14 09: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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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2024.8.14.) : 에제 9,1-10,22; 마태 18,15-20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세상을 인간에게 맡기시고 다만 그 결과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은 하느님께 달려 있지만, 과정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흐름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람들의 죄 때문에 가로막히거나 꺾일 경우에는 제자들의 재량에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겠다고 약속하셨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흐름의 방향이 아래에서 위입니다. 실로 크나큰 위임이요 엄청난 재량을 주신 것입니다. 


이 위임의 책임과 재량의 권한을 부여 받은 제자들이 능력이 뛰어나거나 노력이 완벽할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제자들을 이끌어 주실 성령의 도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요 좁게는 성사의 기능입니다. 여기서 매거나 푸는 일의 가치가 동등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푸는 일이 매는 일보다 더 바람직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매어 주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재량과 위임의 범위를 통 크게 넓혀 주신 것이겠지요. 


만약 이렇듯 통 크게 위임 받은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성사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심판하십니다. 세상 종말이 오기 전일지라도 그렇게 심판하십니다.  


오늘 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시는 비단 바빌론 제국에 의해 남 유다 왕국 백성이 당하는 재앙만이 아니라 근세 이후 그리스도교권 신앙세계가 당한 정신적 재앙을 예고한 듯 합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 그런 재앙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이마에 표시를 한 소수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고 전합니다. 그 남은 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다시 열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예형이라 해도 좋습니다. 근세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매어 놓은 세상의 매듭을 풀어주자면 선조와 선배들의 시행착오와 범죄를 보속해야 할 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신앙과 교회의 역할, 성사의 기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비그리스도인에 비해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행운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 편협하고 그릇된 선민의식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시행착오로 결판이 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일반 세상에 사는 이웃들의 죄를 풀고 마음을 풀며 영혼을 풀어주라고 먼저 부르심을 받은 심부름꾼입니다. 


만약 다른 이들의 운명을 풀어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처신하면, 매여 있는 사람들은 매어 있는 죄로 또 그리스도인들 역시 풀어주지 못한 궐함의 죄를 짓는 것이므로 다 같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뜻은 매기보다 푸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현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는 물론이요 정의의 위기, 평화의 위기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마음을 모아 예수님께서 이미 보내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라는 데 있습니다. 단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성령의 기운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실 수 있기 때문에 각종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모인 작은 공동체의 힘, 그 힘들이 모인 연대와 통공의 힘이 희망입니다. 


무엇보다도 남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를 극복해야 하고, 둘이나 셋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교회 그 자체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숫자가 작아도 엄연히 교회인 그 작은 공동체가 움직이면 예수님도 함께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흐름의 방향을 아래에서 위로 정해 주셨고, 아래에다 위에서 맞추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은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해 줍니다. 우리의 영향력이 극대화될 것 같은, 그래서 영적인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조건이래야 겨우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청하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도 마음이 쉽게 모아질 것 같은 이웃이나 동료, 친구와 벗 등에게 관심을 집중해서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땅의 움직임이 이렇게 하여 시작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인 공동체의 일치가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입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동료 수감자를 대신하여 아사형을 자청하고 감옥에 성가가 울려 퍼지게 만들어 지상에 천국을 만들고 떠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의 모범을 생각합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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