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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이란 하느님 나라의 삶 [이신부의 세·빛] 문화와 문명의 힘, 순교와 선교의 역사적 위력 이기우 2024-10-11 14: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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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2024.10.13.) : 지혜 7,7-11; 히브 4,12-13; 마르 10,17-30 


영원한 생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하는 부자 청년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자 청년에게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지만, 사실 이 요구는 예수님 자신의 삶을 반영한 조건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하느님의 크디 큰 선물을 받자면 절대로 함께 손에 쥘 수 없는 자기 몫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당연한 조건이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떠나간 후 제자들에게는, 자기 몫을 내려 놓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면 일단 버렸던 자기 몫이 백 배가 되어 돌아오리라는 설명도 예수님께서 해 주셨지요. 교회와 신앙인들의 진정한 현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하느님 나라의 삶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그런 삶입니다.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가 발을 씻어주라고 분부하신 대로 겸손하게 서로 사랑하는 이 삶은 서로가 서로의 필요와 기대에 열려 있는 삶과도 통합니다. 이 사랑의 진리가 영원한 생명의 문화를 일굴 수 있게 하고 하느님 나라의 문명도 가능하게 합니다.


그만큼 사랑의 진리는 왕의 권세보다 귀하고 온 세상의 금보다도 값진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담은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의 말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살아있으며 힘이 있습니다. 이를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사랑의 문화, 사랑의 문명이라고 말합니다. 


문화의 힘


10월이 우리 교회에게는 전교성월이요 로사리오 성월인데, 사회에서는 문화의 달로 지냅니다. 아마 오랜 옛적부터 우리 조상들이 이 시월에 하늘 제사를 바치면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잔치를 통해 노래와 춤을 즐기면서 한민족 공동체임을 확인해 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한류 문화가 한창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한류가 처음에 중국과 일본에 퍼져 나가더니 중앙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와 중동 아시아를 거쳐 동유럽과 서유럽, 아프리카와 남미, 미국에서도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내용도 처음에는 K-Pop이나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 문화로 시작되더니 한식과 한복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첨단기술이 적용되는 전기자동차나 밧테리 같은 각종 제품들도 한국산이 세계 1,2위를 도맡아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아주 작아서 정밀기술이 요구되는 반도체나 또는 반대로 아주 거대하면서도 최첨단의 설계와 용접기술이 요구되는 배를 만드는 산업에서도 대한민국은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가장 난이도 높고 규모가 큰 대형건설 공사들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국 기업들이 수주하고 있기도 합니다. 돈 버는 일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심지어 가뭄이 심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식량 종자를 개량해 주는 농업이나 사막화 현상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비 사막에서 15년째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조림 같은 분야의 노력은 진정한 국제협력이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보건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몇 년 전에는 의료와 방역장비까지 한국산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보건위기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어 있는데 비해서 한류로 인해 좋아진 한국의 이미지 덕분에 유독 한국의 수출 실적만 더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단군 이래 한민족의 위상이 요즘처럼 높아진 때는 없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국운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화의 힘입니다. 그 문화의 힘 가운데 으뜸은 한글입니다.


한류 문화, 선한 소프트파워


한류(Korean wave)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바람 내지 흐름에는 그 전과 다르고 다른 나라와도 다른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고 삶의 질곡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가능해진 민주화의 영향이 첫 번째입니다. 빈부격차를 다룬 영화 ‘기생충’이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무기력해지고 왜소해진 개인의 절망감과 상실감을 다룬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이 한국을 미화한 작품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을 만큼 보편적인 주제를 가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극소수 엘리트들만 향유하던 한자와 한문 대신에 모든 백성이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문자를 창제하셨다는 것 자체가 한글이 얼마나 민주적인 동기로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합니다. 전 세계 문자 중에 이런 민주적인 문자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이러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견해가 첨단 전자제품과 플랫폼 기술을 통해서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IT(Information Technology)라고 부르는 정보기술 영향이 두 번째입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의 기술력 덕분에 세계인들은 한국과 손을 잡으려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최신 정보에 접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무엇보다도 한류 속에는 그것이 노래건, 드라마나 영화건, 상품을 팔거나 공사를 시공하건 간에, 그리고 다양한 국제 협력을 함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는 선한 영향력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다른 강대국들의 영향력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한 압력이었으므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수탈과 종속 등을 수반하는 패권적 표현이었던 데 반해서, 한류에는 패권적 요소는 전혀 없고 그보다는 오히려 닮고 싶어 하게 만드는 매력만 물씬 풍깁니다. 


이러한 매력은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한민족의 예술성과 창의성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선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류 문화는 패권적 하드파워가 아니라 선한 소프트파워입니다. 패권적 하드파워는 증오와 대립갈등을 무한증폭시켜 왔지만 선한 소프트파워는 인류를 하나로 소통시키고 연대하게 해 줍니다. 


한류의 뿌리, 홍익인간


이런 선함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요 누가 시킨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의 정신적 유전자 속에 자리잡고 있을 만큼 깊은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저는 이 뿌리가 단군왕검 이래 건국이념으로 내려온 ‘홍익인간’ 정신이라고 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부와 영토와 패권을 추구하기 마련인 건국신화에서, 유독 한민족은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였습니다. 이것이 문화의 기본이요 한류의 매력입니다. 


예로부터 하느님을 믿어온 히브리인들의 지혜를 담은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이시며 자비하신 주여, 당신 말씀으로 온 누리는 만들어졌고 당신 지혜로써 사람을 지으셨나이다. 당신 손수 만드신 창생을 거느리시며 그들이 거룩함과 의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 정직한 마음으로 통치하게 하소서”(지혜 9,1-3). 이처럼 한겨레도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즉 거룩함과 의로움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라는 진리를 계시받아 민족의 목표로 제시한 채 반만년의 역사를 흘러 왔던 것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의로움의 가치는 두드러집니다. 국난이 닥칠 때마다 지배층의 대응방식이 형편없었어도, 민초들은 스스로 ‘의병’이라고 자처하면서 개미처럼 일어나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일제강점기에도 의병이 일어났었습니다만, 외국에서는 보기 어렵고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사례로서 최근의 대표적인 두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쳐서 나라 살림이 거덜나게 생겼을 때 너도 나도 장롱 속에 묻어두었던 금붙이를 들고 나온 금 모으기 운동이 그렇습니다. 이때 351만 명이 참여하여 227톤의 금을 모았는데, 이 희한한 애국 행렬을 본 외국 투자가들이 감동하는 바람에 나라 빚을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 다 갚았습니다. 또한 2007년 태안 앞바다를 지나던 유조선이 충돌하여 기름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서해 바다가 검게 뒤덮였을 때 너나 할 것없이 무려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들어 그 추운 날씨에도 손으로 일일이 기름띠를 닦아내서 깨끗한 바다로 되돌려 놓은 기적도 그렇습니다. 


한류의 꽃, 순교 정신


홍익인간 정신이 한류의 뿌리라면, 한류의 꽃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무려 백 년의 박해 동안 보여준 순교 현상과 이를 계승하려는 순교 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로움을 넘어서는 거룩함의 가치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모순이 백성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 옆 나라 중국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들이 저술한 천주교 교리책들이 방아쇠가 되어 강고한 성리학 체제를 무너뜨릴 기세로 천주교가 맹렬하게 번져 나갔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혹독한 박해를 받아야 했고, 그것도 백 년 동안이나 받았습니다. 


한민족 역사 반만년 동안에 지배층과 일부 피지배층이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충돌한 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천주교처럼 피지배층이 선진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체계를 지닌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백 년 동안 저항한 사례는 전무후무합니다. 옳지 못한 사회적 모순에는 목숨을 걸고 저항하지만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이들이 겨레 안에 뿌려 놓은 선한 유전자는 매우 진한 향기를 풍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남녀는 동등하다”, “사회적 차별은 폐지되어야 하며, 개인들의 양심과 사상은 자유로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인격은 존중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천주교 신자들이 단군의 후손으로서 같은 후손인 한겨레에게 던진 거룩한 메시지였습니다. 


의로움을 넘어서는 거룩한 실천, 순교


특히 지난 2014년에 복자품에 오른 순교자들은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거룩하고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이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말합니다. 이 순교자들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124위 순교자들은 당시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성리학적 가치 체계 안에서 천주교의 참된 가치를 발견했고, 이를 삶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가 된 후 박해가 닥치자 배교하기보다는 차라리 산 속으로 찾아 들어가 세운 교우촌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실천하였고, 순교는 이러한 신망애덕의 실천에서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순교자들은 박해 중에도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희망하면서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관심은 생각이나 마음만으로 지닌 것이 아니었고, 순교자들에게 신앙은 실천이었으므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은 사랑의 삶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간직했고, 자신들의 삶은 천주교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 삶은 결코 그릇되지 않다는 사실을 실천적 행동으로 세상과 사회에 웅변해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순교자들의 내면세계는 완덕의 추구라는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만큼 내면의 가치는 외양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이 드러낸 외양의 특성은 가진 재화를 나누는 공동체적 신앙생활 그리고 개인적 순결에 대한 지향 등을 통해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순교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불합리한 유교적 신분질서나 남녀 차별에서 벗어나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존엄함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였습니다. 


이러한 외양으로 나타난 실천의 내면세계는 천주교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교우촌(敎友村)이 함께 사는 주거 공동체였다면, 이들에게는 명도회(明道會)라는 교리 학습 공동체가 붙어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주교요지와 천주가사를 비롯한 여러 서책을 공부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종교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복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사랑의 문명을 2백여 년 전에 앞당겨 실현한 한류였습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관계


또한 당시의 교회에서는 남녀 간의 순결을 강조했습니다. 이 순결은 비단 미혼 여성의 순결이나 과부의 정절만을 의미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가치가 되었습니다. 박해 시대 강조되던 순결은 이제 개인윤리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윤리로 발전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 교회의 순교자들은 향주삼덕의 실천을 통해서 내면적 완성을 추구했고, 이로 인해 외양적으로도 신자로서의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순교자들이 가지고 있는 순교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의 순교 인식에 대한 바탕에는 계명을 철저하게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들 순교자는 순교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따르는 행위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순교자들은 체포된 이후 신앙과 배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때에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의로움을 넘어 거룩하게 살아가려는 의지였습니다. 


순교자들이 추구한 완덕의 삶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삶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삶이었으며, 결국은 순교를 향한 열망으로 드러났습니다. 순교자들이 가진 순교 열망의 근원은 첫째, 하느님께 관한 인식이 분명했기 때문이며, 둘째 순교 자체를 하느님의 부르심이자 명령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셋째 그들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순교를 각오하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순교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만큼 일상생활 속에서도 순교의 은혜를 청원했고, 순교의 그날을 기다리면서도 일상생활을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이처럼 순교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순교 인식은 그 안에 향주삼덕이 응축되어 있고, 순교를 일상생활 안에서 완덕을 구현하는 행위로 이해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 교회 순교자들은 완덕의 지향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합일과 자기완성을 바랐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순교자들은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갈망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신앙을 지킴으로써 현세에서도 이미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이미 부활한 삶을 살아갔던 이들 순교자야말로 선교사들의 모범입니다. 순교 정신과 선교 사명을 이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한류의 열매는 순교자들이 모범을 보여준 사랑의 문화로 세상 속에서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선교입니다. 순교 정신으로 임한다면 그 어떠한 열악한 선교 환경에서라도 능히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오늘날 5백 만 한국 가톨릭이 입증합니다. 이만하면 순교 정신이 한류의 꽃이라 할만 하지 않습니까?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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