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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고귀한 진리 [이신부의 세·빛] 흠숭지례(欽崇之禮), 귀하디 귀한 진리를 대하는 방식 이기우 2024-11-07 13: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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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목요일(2024.11.7.) : 필리 3,3-8ㄱ; 루카 15,1-10


세상에는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유신론을, 무신론자들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지지하며 과학을 더 신봉합니다. 유신론자들 가운데에서도 인간이 신이라는 관념을 투사해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믿는 종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발생적 신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신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여 계시해 준 진리에 의해서 종교가 생겨났다고 믿는 신앙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계시적 신관을 따르는 것이고, 이 신관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분류에서 보면, 그리스도 신앙은 유신론과 계시적 신관에 따라서 신을 대합니다. 이를 경신례(敬神禮)라 하고, 신적인 존재들과 영적으로 교류하는 관계를 통공(通功)이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경신례와 영적인 통공에는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하느님께는 가장 높은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드려야 하며, 성인들에게는 공경지례(恭敬之禮)로 예를 표하는데 성인들 중에 으뜸이신 성모 마리아께는 상경지례(上敬之禮)를 드립니다. 삼위일체 도리에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같은 흠숭을 받으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지례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체와 성체성사에 대한 흠숭지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만큼이나 귀하게 찾으셨던 대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가난한 이들입니다. 백 마리 양 가운데에서 한 마리라도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그대로 두고서라도 그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양치기처럼, 그분은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셨으며 그들에게 안식과 참행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필요로 하는 안식과 참행복을 주시는 일을 당신의 기쁨으로 삼으셨으며,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같은 주제의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은전을 되찾은 양치기와 부인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라는 말씀이었는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귀하디 귀한 대상을 대하는 흠숭지례를 요청하는 진리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아끼던 필리피 공동체 교우들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진실을 고백합니다. 자신도 세속적으로는 그 어느 유다인 못지않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자라났으며, 율법에 대해서는 그 어느 바리사이보다도 더 해박하게 알고 있고 율법을 어긴다고 여겼던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기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 출신 배경이나 율법 지식과 열성 등을 쓸모없는 쓰레기로 여기게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고귀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믿을 교리가 지킬 계명으로 이어져야 하고, 믿음과 윤리가 한 치의 틈도 없이 결합되어야 하며, 그 윤리는 다만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네 실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면, 흠숭지례는 구약시대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던 하느님께 대해서가 아니라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 성제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 바쳐져야 하고, 또한 예수님께서 귀하게 여기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이들에게 안식과 참행복을 전하는 사도직 활동에로 향해져야 마땅합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께서 현대 사회의 우상숭배로서 자본 숭배를 질타하시는 것이나, 서로 섬김으로써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성직자들이 영적 세속성에로 도피하면서 공동합의성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태를 안타까워하시는 것, 또 평신도들이 복음화에로 투신해야 할 사명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강조하시는 것 등이 모두 흠숭지례를 우리가 올바르게 실행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조상대대로 하느님을 경건하게 믿어 온 유다인들이 정작 자신들을 찾아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에 속합니다. 유다인들의 종교적 열성이 사실은 자신들의 신 관념을 투사한 발생적 신관에서 나왔을 뿐, 원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이나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신 진리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이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하느님을 대적하려는 악마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악마는 그들을 사탄으로 삼아 예수님을 유혹하고 악에 빠뜨리려고 해 보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앞에서 사탄의 계략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처럼 흠숭을 드려야 할 존재에게 그에 합당한 예를 드리지 않는 것을 불경(不敬)이라 하고, 그 반대로 흠숭을 드려서는 안 될 대상에게 흠숭지례를 드리는 것을 미신(迷信)이라 합니다. 넓게 보면 합당한 흠숭지례를 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경도 미신도 우상숭배적 행위입니다.


오늘 미사의 화답송은 흠숭지례를 권유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 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시편 105,2-7). 그리고 예수님께서 흠숭지례에 맞갖은 정성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우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이끄신 복음은 이러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태 11,28)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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