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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이신부의 세·빛] 심판의 교리와 영성 이기우 2024-11-22 14: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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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왕 대축일(2024.11.24.) : 다니 7,13-14; 묵시 1,5-8; 요한 18,33-37


말씀의 핵심


오늘은 한 해의 전례력을 마감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야말로 온 누리의 임금이시라고 선포하면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새 해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미 구약 시대에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인류 역사 안에 세워져서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을 다스리게 될 미래를 내다보았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공생활의 말기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그분이 유다인들의 왕이 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신약 시대의 요한 사도도 다니엘처럼 같은 환시를 보았는데, 그는 이 하느님의 나라가 세속의 나라들처럼 권세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또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듯이 진리로 섬기는 나라가 되리라고 내다보았습니다. 모든 나라들에 속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섬김의 진리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깨달은 사도 요한 이후 고대 교부들 이래 가톨릭교회에서는 이제 하느님 나라의 실질적인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오늘 전례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왕은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이요, 그것도 권세로가 아니라 진리로 섬기는 왕이십니다.


하지만 세속의 권세들을 능가하는 권위로 세속의 지식들 위에서 진리의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온갖 오류와 허구의 지식을 진리로 알고 있던 모든 눈이 그분의 진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그분이야말로 세속의 권세는 물론 세속의 지식들까지도 심판하실 기준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사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서 초점이 되는 신앙의 신비는 심판입니다. 한 해의 전례력은 예수님의 일생을 관상하게 해 주는 고유 시기와 우리가 세상에서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연중 시기로 나뉘는데, 이 고유 시기에서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을 경축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예수님의 일생과 정확하게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과 승천은 대축일로 지내고 있지만 심판에 대해서는 생략되고 곧바로 성령강림대축일로 넘어갑니다. 그러니 굳이 사도신경의 순서대로 전례를 지내자면 심판대축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날이 오늘입니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요한 14,9)이라던 말씀처럼, 예수님의 심판은 하느님의 심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알았던 사마리아 출신 나병 환자의 이야기(루카 17,11-19)에서 보듯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하라고 이르시고는, 감사할 줄 몰랐던 유다 출신 나병 환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가 감사의 마음이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그 다음으로 중요시하셨던 태도는 성실하게 노력하며 항구하게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루카 18,1-8)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음 혐의로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신 채 관대하게 자비를 베푸셨고 단지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당부만 하셨습니다(요한 7,53-8,11). 감사와 성실과 자비가 심판의 잣대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잣대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도 몸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일흔두 명의 제자들이 파견되었다가 돌아와서 하는 귀환 보고를 들으시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지혜와 슬기를 자칭하던 의인들 엘리트에게는 선교가 실패하고 철부지 같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던 가난한 이들에게서만 선교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성과에 진심으로 감사하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 심판이 어떠할 지를 알려주는 첫 번째 사례입니다.


예고를 하자면 단 한 번만으로도 족할 터인데도 세 번씩이나 당신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던 일(루카 9,22.44; 18,31-33)도 제자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가르치고자 하셨던 그분의 성실한 인내와 진정성을 보여주신 것으로서 그분 심판의 두 번째 사례입니다. 또한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발을 씻겨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배신에 대해서 사전에 알고 계셨으면서도 문제 삼지 않으시고 깨끗이 용서해 주셨던 자비로우신 사례가 세 번째 그분 심판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와 인내와 자비라는 세 가지 심판의 잣대에 이어 결정적인 네 번째 잣대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이른바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 인간이 예외없이 적용받게 될 잣대는 가난한 이들에게 어떻게 대했느냐 하는 것입니다.(마태 25,31-46) 그런데 이 잣대는 단지 과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의 행위를 했느냐 또 얼마나 자선을 베풀었느냐 하는 규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가는 태도를 표현했느냐 입니다. 물질적 나눔 이전에 정신적 회개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적 지동설은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본질이 되고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이 그 본질을 표현하는 형식이 되어 이 진리를 중심으로 나머지 모든 것들이 돌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영적 지동설: 부활과 하느님 나라가 중심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권세와 재물, 이익과 돈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 눈으로 아무리 하늘을 쳐다보아도 분명히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모습은 육안의 관찰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태양을 돌고 있는 지구에서, 그것도 육안으로 관찰하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권세와 재물, 이익과 돈의 노예가 된 처지에서 진리를 관찰한단들 그 진리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맨눈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그리고 수학적 계산으로 검증해 보면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음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도 인생의 도리도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참된 진리이며 그 결과가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개선시키려 사회의 온갖 제도와 정부의 온갖 정책을 개선시키는 공동선의 노력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평안해지고 나라가 정의로워지며 개인들의 인생이 후천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바를 신앙인들이 좇아가지 말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추구하려면, 가난한 이들은 불쌍해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해 주는 길잡이라고 간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자녀들인 우리 모두가 부활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현실에서 주어지는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관과 말과 행위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청이 남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회개를 요청하는 이 문제를 우리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절박하고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면서 생색을 내거나 행여나 조건을 달면 그들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은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현실의 반영이어야 하는데, 이를 반영한 태도를 섬김이라 합니다. 섬김으로 나눔을 해야 제대로 된 애덕 실천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섬김의 진리로 백성을 섬기시는 그리스도왕이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마귀들린 이들을 만나시면, 그들이 마치 하느님의 사절이라도 되는 양 정성을 다해서 돌보아 주셨고,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의 권능을 내세우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들의 믿음 덕분이라고 치하하셨던 것이 그 모범이었습니다.(루카 7,50; 8,48; 17,19; 18,42)


하지만 복음서들이 증언하는 예수의 기적은 그분의 신적 권능이 99%요 당사자의 믿음이 1%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의는 늘 준비되어 있는데, 사람들의 믿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어쩌다가 절박한 믿음을 지닌 사람을 만나셨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기적 조건이 100% 충족되는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알려 주는 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요, 예수님께서 시범을 보여주신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성찬과 그리고 섬김이라는 양식 안에 현존하시어 그 권능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안목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온 누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온 마음도 다스리셔야 할 그리스도왕 대축일이고, 그분은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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