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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신부의 세·빛] 삶과 말로 세상에 알리는 생활 태도 이기우 2025-11-07 17: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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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일 (2025.11.09) : 에제 47,1-12; 1코린 3,9-17; 요한 2,13-22


전례의 취지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는 평신도 사도직에 봉사함으로써 교회를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직자는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그리고 수도자는 천국을 미리 사는 수도생활을 통하여 평신도들을 현세에서 천국으로 이끌라는 하느님의 안배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내다본 대로,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이 되는 평신도의 사도직이 수행되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리라는 소망이 오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성직자의 성사 거행과 수도자의 수도생활 모범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한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수행하신 바를 세상 속에서 뒤따르자는 것입니다. 이는 예언자로서 그분이 세상을 향하여 말씀하신 바를 뒤따르는 예언자 직무, 사제로서 하느님께 당신 삶을 봉헌하신 바를 뒤따르는 사제 직무, 왕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섬기신 바를 뒤따르는 왕 직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본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섭리대로 되살리는 길입니다.


예언자 직무


평신도의 예언자 직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시대의 징표를 지혜롭게 식별하여 삶과 말로 세상에 알리는 생활 태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직무는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을 영위하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담긴 계시 진리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이 계시 진리를 해석해 주는 성전, 즉 거룩한 전통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성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가톨릭교회가 펴낸 ‘가톨릭교리서’ 역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기에 매우 유용한 거울인데, 여기에는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회교리에 따른 사회생활의 지혜를 풀어 주고 있습니다. 또한 백여 년에 걸쳐 역대 교황들의 사회교리 문헌을 집대성한 ‘간추린 사회교리’도 나와 있고, 이를 읽기 쉽게 다시 간추려 놓은 ‘세상의 빛’도 있습니다.





사제 직무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내용입니다. 타락한 사두가이들이 제사 봉헌을 독점하면서 성전제와 십일조를 거두어 치부하던 복마전을 예수님께서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놀라서 당황하는 성전 수석사제들 앞에서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세우겠다.”(요한 2,19)


그들은 물론 이 성전 정화 사건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던 제자들도 그 당시에는 이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겨우 믿었습니다. 이처럼 사제직무는 부활 신앙의 소산입니다.


평신도의 사제 직무는 성직자들이 수행하는 사제 직무에서 그 본질을 배웁니다. 즉, 마치 미사 전례에서 켜 놓는 초처럼 성직자들은 전례에서 성사를 거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비의 빛으로 태워서 하느님께 봉헌하는데 이를 가정과 세상에서 구현하라는 것이 평신도의 사제 직무입니다. 평신도의 사제 직무를 보편 사제직이라 하는 이유는 성직자들이 미사를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로 거행하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제물로 삼아 봉헌하신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삶도 봉헌하는 것처럼, 가정이나 세상이라는 보편적인 장에서 삶을 봉헌해야 하는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어머니는 가모장으로서 가정을 교회로 만들고 이 가정 교회의 사제로서 자녀 교육과 양육, 기도 생활과 자비의 실천,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에 대한 참여 등으로 가정을 성화시킴으로써 평신도에게 고유한 직무를 수행합니다. 교회는 물론 사회도 이러한 가정의 역할을 세포로 하여 구성됩니다. 그러니 세상을 움직이는 사회의 모든 구조 역시 사회 생활에 참여하는 가정의 역할을 기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 생활에 참여하는 가정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과 경제에 관한 신앙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신론 사조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자칫하면 돈과 출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상숭배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직무에서 거울로 삼는 성경과 성전의 가르침이 이 평신도 사제 직무에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또는 사회 활동에서든, 가족이나 동료들이나 이웃들에게, 시간으로나 돈으로나 노력으로나 또는 기도로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것이 평신도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열려진 사제 직무의 본질입니다.


왕 직무


평신도의 왕 직무란 예수님께서 공생활 내내 모범을 보여 주셨듯이, 기회가 되는 대로, 능력이 닿는 대로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는 일입니다. 봉사야말로 천국의 생활양식입니다. 그분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권세를 휘두르는 왕 노릇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마치 하느님처럼 섬기면서 종 노릇을 하심으로써 천국의 생활양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왕의 직분이란 엄밀히 말하면 종의 직분입니다. 다스리기 위한 직무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직무라는 뜻입니다.


이 시대의 징표


박해는 신앙을 퍼뜨리고, 순교자의 피는 새로운 신앙을 불러 일으키는 씨앗이 됩니다. 제도적인 의미에서 종교에 대한 박해는 종식되었다고 하겠지만, 신앙적인 의미에서는 영세자 열에 냉담자가 아홉인 이 현실이 사실은 내적 박해와 다름이 없습니다.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예외가 되어 버린 이 현실이 믿음의 삶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위협이요 유혹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믿음의 진리에 대한 어둠이 짙을수록 믿는 이들의 삶은 진주처럼 빛납니다.


교우 여러분, 가톨릭 평신도로서 우리가 천주교인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예언자 직무와 사제 직무와 왕 직무를 자신의 삶에서 개미처럼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해 나가면 그것이야말로 이미 다가온 하느님 나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 천주교 서울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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