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원영미디어바우처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5년이 넘었다. 정부가 시민에게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나눠주고, 시민이 신뢰하는 언론사나 기사에 그것을 직접 쓰게 하는 제도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5월 28일 21대 국회에서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처음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지만, 2024년 8월 상임위 소위에 회부된 이후 2년 넘도록 추가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좋다는 말은 넘치는데 움직임이 없다.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도를 설명한 뒤 국민 1천 명에게 물었을 때 75.4%가 찬성했고, 72.2%는 미디어바우처가 언론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2025년 8월에는 여당 의원 17명이 공동으로 정책토론회를 열었고, 같은 해 9월에는 고사 직전의 지역언론에 미디어바우처가 '생명수'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지난 11일 <미디어오늘>은 '이제는 미디어 바우처다' 라는 사설을 통해 22대 후반기 국회가 학계·언론계와 함께 입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놓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데도 왜 제도는 5년째 제자리인가. 미디어바우처를 둘러싼 논의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답은 논쟁의 기록 속에 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지역언론에게 바우처는 생존의 동아줄이고, 정치권에게는 언론개혁의 무기이며, 학계에게는 언론 신뢰를 되살리는 실험이다.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기대를 품다 보니 설계도를 그리는 일부터 쉽지 않다. 2021년 한 토론회에서는 포털, 여론 독과점, 부수조작, 가짜뉴스 등 여러 언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수단으로 미디어바우처를 바라보다 보니 제도의 목적이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찬성론 안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찬성의 목소리 안에서도 쟁점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첫째는 시민이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여기는 언론에 불호를 표시하는 '마이너스 바우처'다. 진민정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정치적 수사로 쓰이는 현실에서 시민이 가짜뉴스가 아니라 입장이 다른 언론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쇠뿔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재원이다. 법안은 정부광고 배분을 바꾸는 데서 출발했지만, 정부광고는 정책 홍보를 위한 예산이지 언론지원금이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김선호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거론되는 재원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법리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짚었다.
셋째는 쏠림이다. 시민이 직접 고르면 특정 매체나 정치 성향의 매체로 바우처가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역언론 현장에서도 시민의 선택이 특정 매체에 집중될 경우 규모가 작은 지역언론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쟁점들은 반대론이 아니라 설계의 숙제다. 제도를 버리자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자는 말이다. 문제는 5년 동안 누구도 이 숙제를 끝까지 풀지 않았다는 데 있다. 토론회는 여러 차례 열렸지만 대개 주최자의 필요에 맞춰 열렸고, 결론은 번번이 "시범사업부터 해보자"에서 멈췄다.
정부광고에서 플랫폼 책임으로
이제 발상을 바꿀 때다. 뉴스는 공동체가 함께 쓰는 공유부다. 기자가 발로 뛰어 만든 뉴스로 가장 큰 수익을 거두는 곳은 언론사가 아니라 뉴스를 매개하는 거대 플랫폼이다. 그그렇다면 재원을 정부광고에서 마련하는 방식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뉴스라는 공공적 자원으로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의 책임을 재원으로 연결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례도 생겼다. 호주 의회는 지난 8월 20일, 대형 플랫폼이 호주 뉴스사업자들과 일정한 상업적 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호주 내 디지털 광고 매출의 2.75%를 부담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제도는 플랫폼과 뉴스사업자 사이의 계약을 통해 부담금을 상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네이버·카카오와 넷플릭스 등을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플랫폼의 공적 책임은 이미 여야를 가리지 않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호주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면 되는 것은 아니다. 호주 제도는 플랫폼과 뉴스사업자의 상업적 계약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다. 플랫폼과 개별 언론사의 협상력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계약 중심의 모델이 소규모·지역 언론사에 얼마나 고르게 혜택을 돌아가게 할지는 별도의 과제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재원을 모아 '언론공유부 기금'을 세우고, 그 일부를 시민이 직접 배분하는 창구로 바우처를 두는 것이다.
좋은 뉴스를 판단할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장치다. 동시에 시민의 선택은 인기와 진영을 따라 몰리기 쉬우므로, 기금의 다른 창구에서는 지역 주재 기자 수 같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인건비를 지원해 선택받기 어려운 작은 지역언론과 공익보도의 바닥을 받쳐야 한다. 바우처가 경쟁의 창구라면 기초지원은 생존의 창구다. 두 창구가 함께 있어야 쏠림이 기금 안에서 완충된다.
바우처의 주인은 시민이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이 설계를 누가 할 것인가. 언론사는 수혜자이고, 플랫폼은 부담자이며, 정당은 언론을 우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보는 당사자다. 모두가 이해당사자인 판에서 설계를 이들에게만 맡기면 5년의 표류가 다시 5년 이어질 뿐이다. 바우처의 주인이 시민이라면 설계의 주인도 시민이어야 한다. 시민토론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두 차례의 시민토론회를 제안한다. 1차 토론회는 '5년의 논쟁이 남긴 쟁점과 과제'다. 찬성론자만이 아니라 설계의 위험을 짚어온 신중론자들을 함께 초대해, 무엇이 제도를 가로막아 왔는지 정직하게 펼쳐 놓는 자리다.
2차 토론회는 가칭 '언론공유부 기금'의 필요성과 가능성이다. 1차에서 드러난 숙제를 흡수한 대안으로서 기금의 재원과, 무엇보다 그 기금을 정부와 정당으로부터 독립시킬 거버넌스를 따져보는 자리다. 두 토론회가 묻는 것은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어떻게'다.
이 토론회는 10월 23일 열리는 선거제도개혁 시민대토론회와 짝을 이룬다. 선거제도가 권력을 뽑는 제도라면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제도다. 둘 다 시민의 공유부인데, 둘 다 오랫동안 정당과 시장의 손에 맡겨져 왔다. 한쪽만 고쳐서는 다른 쪽이 발목을 잡는다.
뉴스는 마을의 공동우물과 같다. 우물을 파는 이는 기자이고, 그 물을 길어다 병에 담아 파는 이는 플랫폼이며, 때로 물을 흐리는 이도 있다. 우리는 지금껏 우물 관리를 물장수와 촌장에게 맡겨 두고 물맛이 나빠졌다고 탓만 해왔다. 이제 마을 사람들이 우물가에 둘러앉을 차례다. 두레박은 시민의 손에 쥐어져야 한다. 우리는 두번의 광장 혁명을 헛되게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