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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현이동훈] 세월호 유가족,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2
  • 현이동훈
  • 등록 2016-03-23 10:57:04
  • 수정 2016-03-23 10: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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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처. 세월호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회피에 짓눌림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회피로 힘든 날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좀 그만 하자, 보상금 받았으니 끝난 것 아니냐” “세금을 세월호에 쓸 수는 없다” “세월호 문제를 여기서 말하지 말고 안산으로 가라”는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정치권은 지방선거 이후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들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바티칸을 방문한 한국주교들에게 “세월호는 어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교들에게 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하는 질문임을 새겨봅니다. 예수님, 한국교회는 세월호 추모 미사를 몇 번 드렸으나 최근 무관심하고 잊으려고 합니다. 저희들의 무관심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폭력임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예수님, 장애인들도 세상의 무관심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매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는 집에만 갇힌 장애인들의 절규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출근길이 불편하다며, 교통에 방해가 된다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교회에서도 장애를 이유로 전례참여와 교리교육, 성서사도직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8처. 세월호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이 다른 사회적 희생자들과 연대함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예루살렘의 많은 여성들이 울면서 뒤따랐습니다. 당신이 그 여성들을 위로하셨듯이 5·18 광주항쟁 유가족들과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은 특별법을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 하기도 했습니다. 밀양과 청도 송전탑 피해 어르신들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장애인들도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장애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무관심과 비연대, 패배감으로 인한 환멸에 지쳐 있는 저희 마음을 일깨워 다른 사회적 희생자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제9처. 세월호 유가족들이 3년 가까이 국가폭력에 저항함을 묵상하고, 장애인들이 집단폭력으로 고통 당함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과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청문회에서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죄책감도 없이 뻔뻔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전 해양경찰청장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철없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월호 희생자 앞으로 징병영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과 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고시원이나 도서관의 막힌 공간이 아니라 현장으로 먼저 가게 하소서. 


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집단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자 상당수가 장애인입니다. 작년 대구권 지역의 한 대학에서 장애학생이 학우들에게 집단폭력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한 정치인의 장애인 딸이 대학 부정입학 의혹을 받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치인은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욕심은 장애인자녀에게 큰 폭력임을 모르는 듯합니다. 일자리가 없거나 자기와 맞지 않는 노동에 억지로 임하는 장애인도 있습니다. 일부 사회사업 시설에서 폭력을 당하는 장애인들도 십자가에 넘어지는 당신이십니다.


제10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생계에 위협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의 옷을 벗기는 로마 병사들처럼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일부 유가족들은 직장까지 잃었습니다. 투쟁을 이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수님, 부디 저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이 아니라 진실이 묻혀지길 바라고 편리한 합리성으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이 문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사회는 로마 병사들처럼 장애인들이 가진 것도 빼앗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집에만 있는 장애인, 자신과 맞지 않고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자리 현장에서 억지로 일하며 착취당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기본소득과 장애등급이 높다는 이유로 장애수당을 받지 못하고 독립생활을 포기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제11처. 욕설과 비방 그리고 모욕으로 못 박힌 세월호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의 고통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유가족들이 사회·문화적으로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보상금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는 말, ‘세금을 낭비한다’는 말, ‘우리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못이 되어 유가족의 마음에 박히고 있습니다. 행정폭력과 교육폭력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철없다” “덜 배웠다”는 말로 모독하며 못을 박고 있습니다. 심지어 문화폭력은 유가족들의 단식농성현장에서 폭식투쟁이란 폭력으로 모독하기도 했습니다. 분향소를 방문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유가족으로 둔갑해 유가족들의 손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루카 2,35)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장애인들도 언어폭력으로 못 박힘 당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함부로 쓰는 말에는 병신, 불구자, 장애자, 장애우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비하하는 봉사란 말, 청각언어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들을 비하하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라는 말, 피부장애인들을 비하하는 문디 혹은 문둥이란 말, 성기능장애인을 비하하는 고자라는 말, 소아마비와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절름발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들이 장애인들의 마음과 영혼에 못 박고 있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라는 못도 장애인들을 가족의 집과 시설이란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제12처. 세월호 희생자들과 장애인들의 죽음을 묵상합시다.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 어찌하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버리셨습니까? 희생자들에게 하느님은 너무 멀리 계셨습니다.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 어찌하여 유가족들을 고통당하게 하셨습니까? 국가폭력과 문화폭력 그리고 자본폭력은 왜 이렇게 강하고 뻔뻔하기만 합니까?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 어찌하여 장애인들이 가족들에게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어찌하여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폭력을 당해 죽어야 합니까? 어찌하여 장애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합니까? 


제13처.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들이 유가족들에게 전달됨을 묵상합시다. 장애인들의 죽음들이 언론 보도 되는 현실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침몰한 세월호에서 자신의 생일에 떠오른 희생자 시신이 가족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 희생자는 참사당한 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실종자 명단에 올랐던 학생이었습니다. 참사당한 날로부터 한 해가 지나서야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품이 유가족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유품들과 마주한 유가족들의 모습은 십자가 아래에서 당신의 죽음과 시신을 마주했던 성모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참사 당일 국가와 자본의 무책임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구조 활동을 했던 어민들과 수색을 했던 잠수사들은 지금도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테러권력은 그 일을 잊으려고 덮으며,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외면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움직임들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됐다. 그만 하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희생자가 자신의 가족이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 편에 서지 않는 대한민국 사법 현실에선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세금 낭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정부와 정치인의 탈을 쓴 ‘힘의 운반자들’의 방해로 세월호 진상규명 예산이 삭감되어, 진상규명이 축소된 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 가족들에게 살해당한 장애인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희귀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부모와 함께 자살당하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낙태 당하는 태아도 있습니다. 부모의 죄가 크지만 전통 유교의 가족문화를 이유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지 않는 행정이 짓는 죄가 더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부양의무제 폐지와 독립생활, 활동보조연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제14처. 희생자들이 남긴 삶의 자리와 구조되지 않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시끌벅적했던 교실들과 복도가 이젠 거대한 침묵으로 가득합니다.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이 앉았던 책상과 의자는 주인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다른 희생자들이 남긴 삶의 자리에 가족들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했던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들이 속하고 지지하는 정당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희생자들을 죽인 이준석과 그 선원들,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고 공폭력이 된 공권력, 자신들의 이익에 눈이 멀어 소극적인 구조와 참사를 일으킨 자본폭력, 재난에 대처하지 못한 국가폭력, 마지막으로 위로는커녕 유가족들을 모독한 문화폭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과 책임을 안고 진도 앞바다에 있는 세월호가 하루빨리 이양되게 하소서. 배 하나가 인양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책임이 인양되는 것입니다. 3년, 700여 일 동안 아직 구조되지 못한 9명의 희생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2016년 어느 방송사에서 세월호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성령님, 제보자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시고 그들을 국가폭력에서 보호해 주십시오! 그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유족도 양보해야 한다 말하면서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한 교회의 움직임을 뉘우치게 하소서.


아멘.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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