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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스스로 기계처럼 살기를 멈출 수 있는가”
  • 지성용
  • 등록 2026-05-29 19:55:20
  • 수정 2026-05-29 1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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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tican Media


최근 교황 레오 14세는 회칙 『Magnifica Humanitas(위대한 인간성)』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엄과 공동선, 책임과 연대의 가치를 새롭게 성찰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교황청 문헌 『Antiqua et Nova(옛것과 새것)』는 AI를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간 이해와 사회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문명적 전환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인간의 본질과 소명을 다시 묻고 있다.


이에 <가톨릭프레스>는 '교황청 문헌으로 읽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학'을 주제로, 8주간에 걸쳐 지성용 신부(가톨릭관동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의 글을 연재한다. AI 시대를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으로 바라보며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 기술과 권력의 관계, 노동과 인간 존엄, 교육과 상담의 본질, 전쟁·감시·거짓정보의 윤리 문제, 그리고 영성과 공동선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볼 예정이다.


기계가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는 시대,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자 한다. 이 연재가 독자들과 함께 AI 시대의 인간을 성찰하고, 기술문명 속에서 인간 존엄과 공동선, 그리고 인간 존재의 깊이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교황청 문헌 『Antiqua et nova(옛것과 새것)』,『Magnifica Humanitas(위대한 인간성)』로 읽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학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상담을 흉내 내고, 설교문까지 작성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인간은 불편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따라 하고, 인간의 지식을 정리하고, 인간의 판단을 보조한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한때 우리는 지능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믿었다. 계산하고, 추론하고, 기억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AI는 바로 그 영역에서 인간을 추월하고 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읽고,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정교하게 문장을 만든다. 그러니 인간의 불안은 당연하다.


인간다움은 정말 지능에만 있었는가


하지만 여기서 멈추어 물어야 한다. 인간다움은 정말 지능에만 있었는가.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묻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 어떤 진실 앞에서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인간은 지식을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 전체로 그 지식의 무게를 감당하는 존재다.


AI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픔 속에서 밤을 지새우지는 않는다. AI는 사랑에 대해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시간을 내어주고, 상처받고, 용서하고, 다시 기다리지는 않는다. AI는 정의를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한 조직 안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AI 시대, 인간이 지켜야할 존재방식


그러므로 AI와 인간의 차이는 단순한 성능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 방식의 차이다. AI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인간다움은 몸이다. 인간은 몸으로 산다. 몸은 피곤하고, 아프고, 늙고, 죽는다.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인간은 서로를 돌본다. 병든 몸을 돌보고, 우는 사람 곁에 앉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건네는 행위는 결코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다. 몸은 인간의 약점이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의 가장 깊은 근거다.


두 번째는 감정이다. 현대 사회는 감정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감정은 인간 정신의 오류가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깊은 방식이다. 슬픔은 사랑했던 흔적이고, 분노는 정의가 무너졌다는 신호이며, 연민은 타자의 고통이 내 안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감정을 잃은 인간은 차분해질 수는 있어도 따뜻해질 수 없다.


세 번째는 관계다. 인간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하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견디며 인간이 된다. AI는 대화를 흉내 낼 수 있지만, 기다림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인간의 관계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에서 깊어진다. 효율이 아니라 신뢰에서 자란다.


네 번째는 윤리다. AI 시대의 위험은 기계가 너무 똑똑해지는 데만 있지 않다. 더 큰 위험은 인간이 책임을 기계에게 떠넘기는 데 있다. “AI가 그렇게 말했다”는 말은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결정은 인간이 하고, 책임도 인간이 져야 한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핵심 능력은 더 빨리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책임 있게 멈추는 능력이다.


다섯 번째는 영성이다. 영성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보는 능력이다. 영성은 인간이 자기 이익을 넘어 공동선과 진리와 사랑을 향해 열리는 힘이다. AI는 목적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의미를 갈망하지 않는다. 인간은 의미를 묻고, 초월을 꿈꾸고, 자기 한계를 넘어 더 큰 사랑을 향해 걸어간다. 이것이 인간의 영적 능력이다.


결국 AI 시대의 질문은 “AI가 인간을 이길 것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 기계처럼 살기를 멈출 수 있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계처럼 살아왔다.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고, 속도로 가치를 평가하고,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밀어냈다. AI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인간을 비인간화한 것이 아니다. AI는 이미 비인간화되어 있던 인간 사회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인간 회복은 기술 반대가 아니다. 기술을 거부하는 낭만주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깊은 인간학이다. AI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AI에게 인간의 최종 판단과 양심과 영혼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더 많이 아는 것으로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더 깊이 사랑할 때 인간다워진다. 더 책임 있게 선택할 때 인간다워진다. 더 약한 이의 고통 앞에 멈출 때 인간다워진다. 더 큰 의미를 향해 자신을 열 때 인간다워진다.


AI는 인간보다 말을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깊이 살 수는 없다. 또, AI는 인간보다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처럼 상처를 기억하고, 그 상처를 사랑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처럼 침묵 속에서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지는 못한다.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은 분명하다. 몸을 회복하고, 감정을 존중하며, 관계를 다시 세우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영성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시 열어야 한다.


기계가 언어를 갖게 된 시대에, 인간은 다시 삶을 가져야 한다.

기계가 지식을 갖게 된 시대에, 인간은 다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기계가 답을 말하는 시대에, 인간은 다시 질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질문의 끝에 인간다움이 있다.


▶ 다음주 화요일, 연재가 시작됩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 가톨릭관동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 한국영성심리분석상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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