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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근수] 안중근 의사 시성을 어서 추진하라 -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은 신앙인의 모범
  • 김근수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6-03-26 09:53:23
  • 수정 2016-03-26 09: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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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투옥돼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의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반박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쳤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는 한 달 뒤 3월 26일 오전 10시 31살 나이로 처형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 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라며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코 나는 (이토를) 오해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는 어머님 전상서에서 “훗날 영원히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전날 면회를 온 두 동생에게 자신의 장남을 천주교 사제로 길러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천주교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누구일까. 김대건 신부, 김수환 추기경, 수많은 순교자, 성인, 복자, 수많은 순교자, 이름 없는 순교자 등 많고 또 많겠다. 그러나 평신도로 시작된 한국천주교회와 예수의 삶을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를 첫째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김대건 신부보다 안중근 의사가 한국천주교회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웃과 민족,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민족 역사에서 보아도 가톨릭 신앙에서 보아도 안중근 의사는 훌륭한 분이다. 한국, 북한, 중국에서 모두 존경받는 인물이다.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 우리 민족과 모든 인류에게 모범이다.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은 신앙인의 모범이다. 


안중근 의사를 시성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 의사 시성을 추진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왜 미루기만 하는가. 한국천주교회는 안중근(토마스) 의사 시성을 어서 추진하라. 


남미에 로메로 대주교가 있다면,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가 있다. 예수 부활을 생각하기 이전에 예수 죽음을 먼저 생각할 일이다. 안중근 의사는 왜 죽었을까. 부활절을 하루 앞둔 오늘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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