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직접선거와 대통령 5년 임기는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의 발현이다. 오늘날 대통령의 권력은 민주주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반드시 그래야 하므로) 절대로 무한 권력이 아니다. 기간도 5년에 불과하고, 범위도 민주주의의 틀(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3년이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이상한 현상들을 많이 보았다. 임기 5년이 50년인 줄로 착각하는 듯싶은 제왕적 권력 행사를 여러 번 목격했다. 정치형태를 유신시대로 환원시키는 시대착오적인 권력 행사로 나라가 전반적으로 경직돼있다.
우선은 권력층 내부에 토론이 없는 듯하다. 권력 핵심부에서 토론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언론매체를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 전시작전권 무기한 연기, 통합진보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 노동개혁(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테러방지법 제정 등등 퇴행적이고 파괴적인 중대한 정부 시책들이 사전 토론 과정 없이 성급하게 단행됐다는 사실에서 토론 부재의 징후를 느낀다.
우리는 자주 TV화면을 통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장면들을 본다. 제한적이고 단발적인 보도 화면으로 전체를 논할 수는 없지만, 토론의 낌새조차 느낄 수 없는 그림에서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대통령이 뭔가를 얘기하면 각료들이나 수석비서관들은 다소곳이 눈을 내리고 볼펜으로 메모하기 바쁘다. 선생님의 말을 받아 적느라 정신이 없는 중학생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북한의 세습 통치자인 김정은이 뭔가를 얘기하면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이 열심히 수첩에다 볼펜을 굴리는 장면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는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이 아닌 고위 공직자가 열렬히 발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인데,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분간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언젠가 어떤 미국영화에서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이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발언을 했고, 각료들 사이에는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과 각료 사이에 의견 충돌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풍경을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은 단 두 명의 각료
우리나라에서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장관 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한마디 한 적이 있기는 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던 유진룡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각료 전원이 사표를 내야 한다”는 의견을 표한 것이다.
대통령 면전에서 개진된 유진룡의 발언은 대통령을 노엽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입에서 “그만하세요”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두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발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진룡은 결국 그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시책에 불만을 품고 저항을 한 고위 공직자가 또 한 명 있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진영이다. 그는 대선 공약과는 달리 박근혜 정부가 노인보험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방식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사퇴를 감행했다. 말하자면 공약의 불이행 문제 때문에 대통령에게 항명한 셈이다.
학자 출신인 유진룡과 진영을 제외하고는 고위 공직자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고분고분하기만 한 순한 양들이었다. 대통령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토론을 유도하는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단임이라는 것, 우리에게는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경험도 있다는 것,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은 바람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 앞에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관료들은 여전히 주눅이 들어있고, 계속 퇴행적인 일이 벌어진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을 거듭하는 꼴이다.
공직사회가 전반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 때문이다. 그 광선에 한 번 노출되면 치명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 광선은 정치권 전체에 광범위하게 투사되기도 한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도 그 광선에 맞아 축출되었고, 막강 여당의 대표라는 김무성도 그 광선에 일정부분 노출되어 시들시들 맥을 못 춘다. 그러다가 요즘 총선 국면에서는 김무성이 한 번 반짝 방패를 들기도 했는데, 그 방패가 얼마나 견고하고 지속적일지 지켜볼 일이다.
‘레이저 광선’은 무한 권력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은 암회색 같은 색상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은 18년 철권 통치자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를 꼽을 수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본다. 18년 철권독재의 여독이 암암리에 작용을 해서, 과거의 박정희 대통령을 잘 알고 있는 고위 공직자일수록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주눅이 든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박근혜 정권의 정의롭지 못한 출범을 꼽을 수 있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개입한 관권 부정선거라는 오명은 벗을 길이 없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부정은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경찰은 부화뇌동했고, 검찰의 수사도 검찰총장 찍어내기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되고, 법원도 올곧게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 풍토를 드러내고 보니, 우리 사회에 진실과 정의에 대한 신뢰도 희망도 없게 되었다. 신뢰 없고 희망 없는 사회는 그야말로 어둠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 다수가 주눅이 든 상태를 면할 수 없다.
국정원의 댓글 부정이 됐든 선관위 개표부정이 됐든 박근혜 정권의 정의롭지 못한 출범은 정권재창출도 쉽게 가능한 것으로 예상하게 만든다. 권력은 등 뒤로 무슨 짓도 할 수 있고, 무슨 짓을 해도 결정적인 사단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등식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배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정권 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고인 물이 생기지 않고 순환을 하여 국가사회가 활력을 얻게 되는데, 야당마저 지지부진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도 없다. 정권 교체가 되지 않으면, 권력이 아무리 사정 드라이브를 건다 어쩐다 해도 부정부패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사회 곳곳에 썩은 물웅덩이만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없기에, 달리 말해 정상적인 순환에 대한 보장이 없기에 고위 공직자들 다수가 대통령 눈치나 보고 주눅이 든 자세로 자리에만 연연하는 게 아닐까?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옳게 살까 보다는, 각박한 경쟁 풍토에서 어떻게 이기고 출세를 할까 쪽으로만 고심하며 달려온 사람들일수록 출세할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출세를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고 자리만 보인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자의 레이저 광선만이 절대적 가치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 명심할 게 있다. 인간의 권력은 무한할 수도 없고, 절대적일 수도 없다. 오늘의 레이저 광선이 아무리 위력을 지닌다 해도, 오후에 당장 바람 앞의 촛불이 될 수도 있다. 꽃이 아무리 붉어도 5일만 지나면 색채를 잃는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잘 깨닫고 겸허한 자세를 지니는 것, 그것만이 자신을 구하는 길이다.
아직은 ‘박자’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등등하지만,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지는 해’가 되었다. 국가채무 595조, 주택 전셋값 상승률18.2%, 담뱃세 9조5천억(일 년 새 부자들의 종합부동산세는 2조원이나 깎아주고, 서민들의 담뱃세는 3조원이나 올리고), 청년실업률 사상 최고, 누리과정 기초연금 공약파기,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부실해외자원외교 13조 손실 등등 (참고 기사 : 박근혜 정부 실정, 안경 없어도 잘 보입니다 / 오마이뉴스) 지난 3년 동안의 실정이 너무도 울창하다. 음울한 그림자가 이미 해를 가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