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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가정에 관한 교리 교육’ 전문
  • 최진
  • 등록 2016-04-11 11:52:39
  • 수정 2016-04-11 12: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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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8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에 관한 교리 교육 내용을 발표했다. 교육 내용은 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요 일반알현에서 가정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권고문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마련된 것이다.


주교회의는 “교황 성하께서는 2015년의 수요 일반 알현에서 가정을 주제로 한 교리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며 “서른 차례 이상의 수요 일반 알현 가운데에서 가정에 관한 교황 성하의 가르침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씀을 모았다”고 밝혔다.


권고문은 성경에 기록된 가정생활과 오늘날 가정현실을 살피며 가정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관점과 가르침을 전한다. 또한 부모와 자녀, 형제, 노인, 친척과 친구 등 다양한 관계의 기초가 되는 가정의 역할을 강조하며, 가정 영성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권고문은 이탈리아어와 영어 등 6개 언어로 공개됐으며, 한국어판은 주교회의가 번역해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사랑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집했던 가정에 관한 두 차례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결과를 소개하고 발전시킨 후속 권고다. 문헌에는 ‘가정에서의 사랑에 관하여’(on Love in the Family)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서론과 9개 장, 325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이 권고문에 최종 서명한 반포일은 성 요셉 대축일인 2016년 3월 19일이다.



다음은 주교회의가 발표한 교리교육 전문이다.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은 인류 보편사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작은 나자렛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만드신 인간 가정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로 정하신 것입니다”(2014년 12월 17일 수요 일반 알현). 


“인류의 희망은 세대 간의 조화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자녀의 기쁨은 부모의 심장이 고동치게 하고 미래를 다시 열어줍니다. 자녀는 가정과 사회의 기쁨입니다. 자녀는 생식 생물학의 문제나 자아실현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더구나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더더욱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는 선물입니다. 그들은 선물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자녀는 선물입니다. 자녀 한 명 한 명은 고유하며 그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자녀는 자기 뿌리와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2015년 2월 11일 수요 일반 알현).  


“사람들은 가정 안의 형제자매들과 인간 공존과 사회생활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가정 자체가 이 세상에 형제애를 전해줍니다!”(2015년 2월 18일 수요 일반 알현)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녀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태어나 몇 년 동안은 온전히 다른 이들의 보살핌과 사랑에 의존하여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도 이 단계를 뛰어넘지 않으셨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우리는 이 신비를 깊이 생각합니다. 성탄 장면은 가장 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모습입니다”(2015년 3월 18일 수요 일반 알현).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 가운데 하나만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쌍이 되어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한 것입니다”(2015년 4월 15일 수요 일반 알현). “죄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불신과 분열을 야기하였습니다. 여러 형태의 학대, 억압, 사악한 유혹, 그리고 모욕적이고 때로는 가장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오만으로 남녀의 관계가 손상됩니다. 그리고 과거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부장적 문화의 부정적인 월권을 생각해보십시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많은 남성 지배적 형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성의 몸을 착취하고 상품화하는 오늘날 대중 매체 문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최근에 남녀의 [혼인] 유대에 대한 우리 문화 안에 만연한 불신과 회의, 더 나아가 적대감을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누구나 이해할만한 여성들의 불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문화에서는 그러한 유대가 내밀한 친교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남녀] 차이의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를 불신과 무관심에서 보호할 수 있는 이러한 [혼인] 유대에 대한 긍정적 정서가 확산되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혼인 유대의] 뿌리를 더욱 많이 잃게 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유대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절하는 분명 모든 이에게 손해가 됩니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되찾아야 합니다”(2015년 4월 22일 수요 일반 알현).   


“젊은이들은 가정을 최고의 행복 지표로 여깁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젊은이들은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하여 생각조차 않으려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혼인성사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실 혼인성사는 유일하고 되풀이 될 수 없는 유대의 표징으로 신앙의 증언이 되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그러한 두려움이, 혼인 유대와 가정에 은총을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 부부의 근본적 평등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은 오늘날 새로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혼인의 사회적 존엄에 대한 증언은 이러한 방식으로, 설득력 있는 증언의 방식, 곧 부부의 상호성과 보완성의 방식으로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를 위하여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을 강력하게 지지하여야 합니다. 왜 여자가 남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합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남녀는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불평등은 완전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위하여 여자의 모성과 남자의 부성이 늘 소중한 보화로 여겨져야 합니다”(2015년 4월 29일 수요 일반 알현). 


“혼인성사는 신앙과 사랑의 위대한 행위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의 아름다움을 믿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을 넘어서서 나아가도록 늘 재촉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용기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 ‘주님 안에서 혼인’하려는 결단에는 선교적 차원이 수반됩니다. 이는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과 주님의 은총의 도구가 되려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2015년 5월 6일 수요 일반 알현).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른바 불법적 상황에 처해 있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표현을 싫어합니다”(2015년 6월 24일 수요 일반 알현). “교회는 이러한 상황이 그리스도교의 성사에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인 교회의 시선은 언제나 어머니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은 성령의 힘으로 늘 사람들의 선과 구원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itio)에서 말씀하신 대로 ‘진실을 알기 위하여 상황 파악을 조심스럽게 해 나갈’(「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itio], 84항) 의무를 느낍니다. ……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파문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파문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여겨져서도 안 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에 속하여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신중한 식별과 현명한 사목적 동반이 필요하며 ‘쉬운 해결책’(제7차 세계 가정 대회에서 한 연설, 밀라노, 2012.6.2., 답변 5항)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자들이 불법적 상황에 놓인 이들을 환대하고 격려하려는 교회 공동체의 자세를 솔직하고 일관되게 나타낼 것을 거듭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기도, 하느님 말씀 경청, 전례 참여, 자녀의 그리스도교 교육,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과 봉사,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그 소속감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2015년 8월 5일 수요 일반 알현).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 심지어 자신의 생애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이들까지도 늘 환대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교회에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회중, 곧 하느님의 손님들인 이러한 가정을 돌보도록 선택되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예수님에 속한 이러한 회중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정과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맺은 유대를 반드시 되살려야 합니다. 가정과 본당은 하느님을 궁극 원천으로 하는 사랑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두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진정으로 따르는 교회는 늘 문을 열고 [모든 이를] 환대하는 집이 되어야합니다. 문을 걸어 잠근 교회, 본당, 단체는 결코 교회라 불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곳은 박물관이라고 불려 마땅합니다!”(2015년 9월 9일 수요 일반 알현)


“신앙은 하느님의 창조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정이 그 화목을 궁극 목표로 삼지 않고, 세상의 ‘가정화’라는 벅찬 계획을 가정에 맡기셨습니다. 가정은 이러한 세계 문화 건설을 시작하는 기반으로서 우리를 구해줍니다. 바로 가정이 수많은 공격, 많은 파괴, 많은 식민화, 곧 세상을 크게 위협하는 돈과 이념의 식민화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가정은 방어의 기반이 됩니다!”(2015년 9월 16일 수요 일반 알현) “남자와 여자의 풍요로운 유대로 이루어지는 가정은 우리 세상이 직면한 엄청난 도전 과제에 대한 해결책이 됩니다. 이 도전 과제는 분열과 획일화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극단은 공존하면서 서로 도우며 함께 소비지향적인 경제 모델을 뒷받침하여 줍니다. 가정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됩니다. 사회의 기본 세포인 가정은 개인 차원과 공동체 차원의 균형을 이루어 주며, 동시에 창조 재화와 자원의 지속 가능한 관리의 모범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통합 생태의 주체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으뜸 주체로 지상의 인류 문명의 근본 원칙인 친교의 원칙과 풍요의 원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2015년 9월 30일 수요 일반 알현).


“이러한 성찰을 하며 우리는 자비의 희년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이 문은 성문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 곧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문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문입니다! ……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가정처럼 환대하지 않는 교회는 복음에 해를 입히고 세상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교회에는 철통같이 굳게 닫힌 문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 곧 문턱, 통로, 경계를 상징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물론 문이 보호를 해야 하지만 거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은 억지로 열어서는 안 되고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환대는 자유롭게 맞이할 때 그 빛을 발하고 무례한 침해로 그 빛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문을 자주 열어 보면서 밖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지, 어쩌면 누군가 용기가 없어서 또는 문을 두드릴 힘이 없어서 문 밖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문, 곧 교회의 문을 두드릴 용기를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용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결코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문은 가정과 교회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문의 관리에는 신중한 식별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신뢰를 불러일으켜야 합니다”(2015년 11월 18일 수요 일반 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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