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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당선작 다시 보기
  • 최진
  • 등록 2016-04-28 18:28:41
  • 수정 2016-04-28 18: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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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막식을 하루 앞둔 25일 강정마을의례회관에서는 `평화교류의 밤`이 열렸다. (사진출처=강정국제평화영화제)


영화를 통해 평화를 모색했던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26일 폐막했다. 행정기관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성당과 강정마을회관 등 제주교구와 시민들의 협조로 영화제가 치러졌다. 이로써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정부와 기업의 도움 없이 진행된 시민 영화제가 됐다.


참가자들은 이날 폐막식에서 평화선언문을 통해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강정과 대한민국의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담았다. 제주도의 조그만 마을 강정에서 시작된 평화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갈 것을 희망하며, 지난 4일간의 여정에 대해 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제주도민과 시민들의 힘이 모여 뜻 깊은 자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제주도의 첫 번째 국제영화제인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앞으로도 고통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아름다운 축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특히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갈등과 폭력 그리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는데 보탬이 되고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양윤모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는 인지도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닌, 전국,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가 돼서 만든 영화제”라며 “영화제를 통해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권일 공동조직위원장은 “평화란 단순히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껴안고 손잡는 것”이라며 “강정에서 영화제가 열려 동아시아 지역의 전쟁 위기가 1%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해군기지보다 강정마을이 훨씬 더 평화와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1회 영화제를 대표하는 작품에 수여되는 강정평화영화상에는 국내외 작품이 각각 한 편씩 선발됐다. 국내 선출작으로는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거미의 땅>이 선정됐고, 국제 선출작으로는 일본 카게야마 아사코, 후지모토 유키히사 감독의 <러브 오키나와>가 선정됐다. 두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에게는 각각 상금 250만 원이 수여됐다. 


강정평화영화상 국내 당선작 <거미의 땅>


여자들은 홀로 남아 붉은 옷을 입은 채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져 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면서 기지촌이 들어섰다. 정부는 기지촌이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이면서도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졌다. 


강정국제영화제 마지막 날인 26일 상영된 <거미의 땅>은 여성에게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는 영화다. <거미의 땅>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이른바 ‘기지촌’에서 생활한 세 여성의 증언을 담았다. 감독은 기지촌 여성 박묘연·박인순·안성자 씨의 증언을 각각 인터뷰와 편지, 그리고 재현을 통해 담았다. 


영화의 시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묘연 씨의 이야기다. 무려 스물여섯 명의 아이를 낙태했던 경험이 있는 박묘연 씨는 버려진 아이 둘을 데려와 기른 후 모두 입양 보냈다.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지만, 그는 ‘무엇을 해도 삶에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박묘연 씨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마음속 울분도 무덤덤하게 털어놓는다. 


미군과 결혼해 두 딸을 낳고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결국 아이들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박인순 씨는 등장인물 중 가장 큰 분노를 보여준다. 미군을 상대하며 성병을 얻고 평생 딸을 그리워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절규는 안쓰럽기보다는 무서울 정도로 처절하다.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녀는 수집한 상자 위로 그림을 그려 그리운 딸에게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쓴다. 


반면 기지촌에서 혼혈로 태어나 스트립 댄서로 일했던 안성자 씨는 반려견과 장난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등장인물 중 가장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이제는 폐허가 된 기지촌에서 과거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기억을 재현한다.  


영화는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과 분노, 눈물과 외로움을 담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과감히 버렸다. 친절한 설명도 없고 허전함을 달래주는 음악적인 기교도 없다. 영화는 기지촌 여성들과 관객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관객들은 불편함 속에서도 적나라한 현실을, 전쟁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으로 “영화 <거미의 땅>은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담아내려는 가치 중 평화·인권·여성·생명·이주민 문제를 미군기지 기지촌 여성들이 겪어내야 했던 참혹한 기억의 공간으로 안내해 강렬하게 드러냈다”며 “이 영화는 군사기지의 건설과 그에 따른 기지촌 형성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국가적 윤리에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는 것을 가슴 시린 영상 미학으로 보여줬다”고 밝혔다.


▲ 강정평화영화상을 수상한 <거미의 땅>과 <러브 오키나와>


강정평화영화상 국제 당선작 <러브 오키나와>


아무것도 안 하면 이런 폭력적인 국가에 나도 한몫을 하게 되는 것이니, 앉아 있을 수 없다


일본 전체 면적의 1%를 차지하지만, 주일미군의 74%가 주둔한 일본 오키나와의 투쟁을 다룬 영화 <러브 오키나와> 또한 관객들에게 편안한 영화라고 보기 힘들다. 영화 <러브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전체 면적에서 20%에 달하는 미군기지 지역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2년 개봉해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이틀째인 24일 상영된 <러브 오키나와>는 8년간의 촬영을 통해 군사기지가 결국 안보와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것임을 알린다. 일본이면서도 일본에서 배제된, 소외되고 차별받아 온 오키나와의 역사는 현재 야만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옮겨놓은 듯하다. 


강정을 아는 한국인에게는 영화의 울림이 남과 같지 않다. 영화는 약 2시간의 상영동안 처절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의 현장을 담는다.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주민들과 이를 막아선 공권력의 폭력을 그려내면서 헬리콥터의 굉음과 주민들의 고함을 배경음으로 실었다. 


하나가 되어 지켜내자는 시민들의 굳건한 의지가 자본과 밀려드는 공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절망, 약해져 가는 믿음과 흔들리는 눈빛 등은 자칫 오늘날 강정마을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우려를 담아내는 듯하다. 너무 비슷해 안타까움까지 닮게 된다. 일본인의 절박함과 눈물에 한국인이 이토록 공감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신들이 국가주의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것이 나약하고 소외된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국가와 인간이라는 총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라는 ‘의미의 공동체’가 ‘실존하는 인간’에게 이토록 모질고 잔인해도 되는 것인지 강렬한 영상으로 질문한다. 


또한 영화는 그저 싸움의 현장을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함께 나서자고 손을 내민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싸움을 일으킨 문제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영화 속에서 미군기지 공사를 진행하는 간부는 “여기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 나는 돈을 못 번다. 그럼 나와 내 가족의 삶이 힘들어진다. 제발 공사를 하게 해 달라. 나는 명령에 따라 이곳에 일하러 온 것이다”고 말한다. 서로를 원망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 앞에서 공사장 간부의 외침은 오키나와 사람들만큼 절박하다. 


사람을 위해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가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었다. 영화는 그 허구성 짙은 잔혹함을 정확히 짚어내고 보여준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영화 <러브 오키나와>를 강정평화영화상 국제 부분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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