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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성거산성지의 야생화들은 말한다
  • 지요하
  • 등록 2016-05-09 10:16:46
  • 수정 2016-05-09 18: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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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성거면의 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성지’에서는 올해도 야생화들의 꽃 잔치가 펼쳐졌다. “야생화들은 말한다”라는 표어를 내건 ‘야생화 축제’다. 해마다 5월 초순이면 열리는 행사인데, 올해로 12회째다. 1일 개막식과 함께 시작되었고, 8일까지 계속됐다. 


성거산성지 담당사제로 성지 보존과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살고 있는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가 12년 전부터 열고 있는 행사다. 정지풍 신부는 이 행사가 앞으로도 매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성거산성지 안에 묻혀 있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함께 야생화들의 생명력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그에게 성거산성지의 야생화들은 단순한 야생화가 아니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넋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해된다.  


▲ 야생화 축제 개막미사 / 부활 제6주일이며 성모성월 5월의 첫날인 지난 1일 천안시 성거면의 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성지에서 제12회 야생화 축제가 열렸다. 성거산성지 담당사제인 정지풍 신부가 개막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지요하


성거산성지의 야생화 축제에는 다수의 문인들과 미술작가들, 사진작가들과 수예작가도 참여한다. <대전가톨릭문학회> 소속 문학인들이 들꽃을 주제로 한 시들을 짓고, 지역의 미술작가들과 사진작가들이 그림이나 사진을 넣어 만든 수십 점의 시화작품들이 행사장 곳곳에 내걸린다. 또 미술작가들이 들꽃을 그린 그림들과 사진작가들의 사진작품들도 전시된다. 


올해는 특히 수예작가 황경화씨가 수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수십 점의 수예작품들이 실내 쉼터의 벽들에 전시되어 야생화 축제의 품격을 더욱 고조시켰다. 나는 갖가지 형태의 수예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황경화 작가의 가슴에서 빛나는 큼지막한 노란 리본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제12회 축제가 시작된 1일은 부활 제6주일이었고, 5월 ‘성모성월’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정지풍 신부는 오전 11시 전국 각지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모든 순례자들에게 점심을 무료 대접했다. 


야생화 축제 개막식 행사는 오후 1시 30분에 있었다. 정지풍 신부는 미사 강론과 개막식 인사말을 통해 성거산성지 야생화들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성거산성지 야생화들이 말하는 것들을 조목조목 들려주었다.     


▲ 성거산성지 성모광장 / 미사 전국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천안 성거산성지 성모광장에서 봉헌된 제12회 야생화 축제 개막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 지요하


(전략)


“꽃은 시각적으로 미적 요소를 충족시켜주기도 하며, 내면적·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예수님께서도 성서에서 꽃과 나무를 비유하여 하신 말씀들이 많습니다. 특히 인간은 꽃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연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여 문인들이나 화가들은 이를 예술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온갖 사물의 생명력으로 인식하고, 동양에서는 외면적 형태보다는 정신(精神)적인 면을 암시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곤 하였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소중한 것이 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매일 매일 뜨고 집니다. 사람들은 해와 달을 보며 꿈꾸고, 내일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같은 해와 달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거나 담아주면 전혀 다른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거산성지에 야생화를 심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교우촌 주변과 무명 순교자 무덤, 성지의 후미진 구석에서까지 연이어 피어나는 들꽃들을 발견하게 되면서였습니다. 순간 청초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무명 순교자들의 분신과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상징 꽃이라는 생각이었지요. 


밟히고 밟혀도 피어나는 야생화, 가꾸고 돌보지 않아도 홀로 외롭게 피어나는 야생화, 숨어서 피는 이름 없는 꽃 ‘은화’는 침묵의 역사 속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 또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무명 순교자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분들은 ‘치명의 덕’으로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들입니다. 


저는 성거산성지를 찾아오시는 순례자분들에게 무명 순교자들의 상징 꽃인 야생화를 보면서 순교자들과 함께 꽃 중의 꽃인 ‘믿음의 꽃’, ‘순교의 꽃’을 마음에 심고 가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매년 야생화 전시회를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야생화 전시회를 눈으로만 보지 마시고, 아름다운 꽃들이 상징하는 소리와 향기를 귀로, 가슴으로 들으시고느끼시기를 바랍니다” 


▲ 영명축일 축하 / 성거산성지 제12회 야생화축제 개막식 중간에 <대전가톨릭문학회> 회원들이 오는 8일 영명축일을 맞는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에게 미리 축하를 했다. ⓒ 지요하


나는 지난해 제11회 성거산성지 야생화 축제 때도 정지풍 신부의 부탁으로 축시를 지어 가지고 가서 직접 낭송을 했다. 그러고 와서 <오마이뉴스> 지면에 <꽃잔치 속에서 꽃시를 낭송하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 축시 낭송을 했기 때문에 올해 개막식 행사에는 그냥 참석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정지풍 신부는 올해도 내게 축시 낭송을 부탁했다. 나는 하루 종일 축시 짓는 일에 몰두했다. 동일한 행사에서 낭송할 같은 주제의 시를 지난해와는 다르게 지으려 하니 어느 정도 고심이 필요했다. 덕분에 나는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었고, 성실을 다한 낭송으로 축제 개막식 분위기에 일조할 수 있었다. 


천주교 성거산성지 담당사제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는 글을 쓰며 문학을 연구하는 문인이기도 하고, 직접 그림을 그리는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소리’와 ‘향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여 지난 4월 ‘천안예술의전당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 <향기와 소리, 색을 입다>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카메라를 사랑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데, 성거산성지 구석구석을 살피다보면 정지풍 신부가 탁월한 원예전문가이고 토목전문가이며 농부라는 사실도 감득하게 된다. 


정지풍 아킬레오 신부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가 지난 1일 제12회 성거산성지 야생화 축제 개막식에서 낭송한 축시를 소개한다. 


▲ 축시 낭송 / 성거산성지 제12회 야생화 축제 개막식 행사에서 내가 직접 축시를 낭송했다. ⓒ 지요하



성거산 야생화, 아름답고도 처연한 꽃들

― 제12회 성거산성지 ‘야생화는 말한다’ 축제에 붙여 



깊은 산 속 꽃마을에 올해도 꽃 시절이 찾아왔다

조물주의 섭리에 따라 꽃 잔치가 펼쳐지니

세상을 정화하는 꽃향기가 천지간을 흐르며

온 누리에 손짓을 한다


깊은 산 속 꽃마을에는 

사시사철 하늘이 내려와 있었다

수목 사이로 햇살이 찾아와 놀다 갔고

안개와 구름도 틈틈이 찾아와 참견을 했고

실바람 명지바람이 사뿐 다가와 속살거리기도 했고 

때로는 심술궂은 바람이 몰려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침마다 새들이 날아와 

갖가지 소식을 전하며 용기를 주고

저녁에는 보금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밤에는 하늘의 별들이 하나 둘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아 이슬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별빛들은 서로서로 꽃이 되어 피어났다


깊은 산 속의 꽃들은 

숨어 있는 신세였지만

조물주의 뜻에 순명하며 

자유의지로, 자립하는 몸짓으로 발화할 수 있었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 스스로 삶을 이어온 깊은 산 속의 꽃들

수수만년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반복해온 성거산 야생화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자신들이 하늘에서 왔고

하늘의 별빛들이 내려온 것임을 알고 있다


하늘을 우러르기 위해 피를 흘리고 땅에 묻힌

수많은 백의의 넋들이 꽃으로 피어났음을 

그리하여 자신들이 순교자들의 화관임을 알고 있다 


아침마다 찾아와 소식을 전하는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들꽃들은 때때로 눈물짓기도 한다


피지도 못한 채 바닷물 속으로 스러져간 

삼백의 꽃봉오리들을 껴안고 피어났기에

성거산성지의 야생화들은 이슬에 젖어

꽃잎들이 더욱 아름답고도 처연하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을 수상 하였다.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히였다.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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