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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코뿔소처럼 혼자서 갈 원력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
  • 이병두
  • 등록 2016-05-14 11:39:59
  • 수정 2016-05-14 12: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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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512일 미디어붓다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필자 주) 이 글은 2016510(화요일) 오후 5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BBS 불교방송 정병조의 무명을 밝히고에 출연하여 재가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하여 대담을 나눈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정식 칼럼이 아니라 글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표현도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만약 영리한 동반자와

정의롭고 현명한 동료를 얻지 못한다면

(자기가) 정복한 왕국을 버리고 (떠나는) 왕처럼,

코뿔소처럼 혼자서 걸어가라.

《Sutta Nipata; 숫따니파타》



▲ 2월1일 팔공총림 동화사 초하루 법회 (사진출처=동화사)


현재 한국 불교에서 재가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世界觀)이 서로 다르고 불교를 이해하는 안목(佛敎觀)도 하늘과 땅처럼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바람직한 재가 불자의 상(像)’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 제시하는 해법도 다양하다.
 


첫 번째, 부처님께서 살아계시던 그 당시에는 재가자와 승단의 관계가 어떠했는가? 현재 우리가 느끼는 ‘승가-재가’의 모습과 비슷했을까, 아니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까?
 
부처님 당시의 교단과 재가자의 관계는 ‘주종(主從)관계’가 아니라 서로 예우하고 존경해주며, 상대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보부족(補不足)의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께서 자주 만나셨던 재가자들로는 ① 코살라와 마가다 왕국의 왕과 왕비, ② 대 재벌이었던 수닷따 장자, ③ 부처님의 주치의이기도 하였던 의사 지바카, ④ 유녀(遊女; 妓女) 암바팔리 등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부처님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 이들은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한 적이 없고 오로지 ‘진리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왔으며,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난 뒤에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만나 환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기쁨에 겨워 세속 생활로 되돌아가는 발길이 가벼웠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재가자는 우리에게는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재벌’이라는 뜻의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아나타핀디카)’라는 명예로운 칭호로 알려진 수닷따 장자였다. 어느 순간부터 이 인물에 대해, “부처님과 제자들이 우안거(雨安居)를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절을 짓기에 적합한 땅을 사려고 했지만 소유자가 ‘황금을 땅바닥에 깔아라. 그만큼만 팔겠다’는 억지 조건을 내세워 그 땅을 팔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러나 수닷따 장자는 그 조건을 충족시켜가면서까지 그 땅을 사서 기원정사를 지어드린 신심 돈독한 재가자”라는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수닷따 장자의 경우, 그가 부처님을 뵙고 진리에 눈을 뜬 이후 ‘장자(長者)’라는 재벌의 이미지보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의 ‘급고독(給孤獨)’ 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재가자들의 모범 사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승가와 재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 살펴보려면, 한역(漢譯) 『장아함경』의 「유행경」에 해당하는 빨리어 경전인 『디가니까야』의 「대반열반경 (Parinibbana Sutta)」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기억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시자인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 입멸(入滅) 후의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쭙고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 답해주신 내용인데, 이것은 ‘승가와 재가의 역할’에 대한 간곡한 당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난다 존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유해를 잘 모시려면 저희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여래의 유해를 잘 모시려고 머뭇거리지 마시오. 아난다여! 그보다는 오히려 그대 자신을 위해, 그대 자신의 [출가] 목적을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여야 할 것이오. 움츠러들지 않고 열성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그대 자신의 [출가] 목적에 전념하여야 하오. 아난다여! [세상에는] 여래에게 헌신적인 현명한 귀족, 현명한 바라문들과 현명한 재가자들이 있으며 여래의 유해에 공경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오.”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장례와 관련된 일까지도 승단이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재가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다른 부문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살아계시던 때에도 제자들끼리 갈등하고, 분열로 치달아 부처님의 당부까지도 묵살하여 결국 부처님이 홀로 먼 길을 떠났지만, 이 잘못된 승려들을 깨우쳐서 화합 대중으로 이끌어낸 것도 코삼비의 재가 대중이었다. 코삼비 사건은, 단순하게 ‘바르지 않은 스님들에게는 공양을 올리지 않겠다’는 선언의 의미보다는 ‘갈등하고 분열한 승단을 다시 화합시킨 행동’에 방점을 찍어야 하고 오늘의 재가불자들에게도 바른 길을 안내하는 나침판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부처님 당시에 승가는 재가자들을 위해 진리를 설하고 재가자들은 공양을 올려 스님들의 의식주를 해결해드리는 이른바 ‘법(法)보시-재(財)보시’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이처럼 분명한 원칙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국가 권력‧재력을 가진 재가자와의 관계에서 승단이 종속적으로 바뀌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불교가 전파‧정착하는 과정에서 왕실 귀족이나 재력을 가진 이들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고, 게다가 어느 곳보다도 전제왕권이 확립되어 있던 이 지역에서는 아무래도 권력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오랜 동안 권력에 억압되어 왔던 관계가 역전(逆轉)되어 - 물론 아직도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재가 신도들을 대하는 것과 달리 깍듯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 승단이 재가자 위에 군림하고 재가자들은 무조건 스님들을 떠 받들어 모시는 ‘상하(上下)’관계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우리 한국 불교의 근현대사만 보아도, 큰 역할을 한 재가자들이 여러 분 있었다. 대표적인 몇 분을 소개해 달라.

 
훌륭한 재가 불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원(大願) 장경호 거사‧덕산(德山) 이한상거사‧우촌(牛村) 전진한 거사와 불연(不然) 이기영박사 같은 분들이 근현대 불교 중흥에 큰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사였다.
 

▲ 대원 장경호 거사

첫째로, 대원 장경호거사는 최초의 불교교양대학인 ‘대원불교대학’을 창립하여 재가자 교육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동국대 불교대학 말고는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곳이 없었던 1970년대에 이곳에서는 당시 기라성 같은 교수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하였고, 재학생 중에는 재가자들뿐 아니라 스님들도 많았으며 그분들 중 현재 조계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은 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전국에 수많은 불교 교육기관이 세워져 ‘바른 불교’를 가르치고 신행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대원불교대학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본다.


대원거사는 특히 거금을 출연하여 대한불교진흥원이 설립되는 기반을 닦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자립 운영이 어려웠던 조계종 운영자금의 60%를 진흥원에서 지원했던 것으로 안다(당시 조계종 예산 1억 6천만 원 중 1억 원을 진흥원의 지원에 의존함). 그리고 이 진흥원이 의지를 확고하게 하고 재정 지원을 해서 불교방송 창립이 가능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대원거사의 공헌에 대하여는 승재가를 막론하고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덕산 이한상 거사

둘째로, 덕산 이한상거사는 현재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신문》을 창간하여 운영을 온전하게 책임졌고 이 신문을 통해 법정스님의 날카로운 칼럼 등으로 불교계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대학생불교연합회(大佛聯)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였고, 불교인재 육성을 위한 삼보장학회를 설립해 이곳에서 학비 지원을 받은 젊은 학자들이 그 뒤 한국 불교학계를 이끌게 되었다. 작고하거나 현재 생존한 불교학자들 중 연구 업적과 제자 양성에서 탁월한 자취를 남긴 분들이 거의 다 삼보장학회 혜택을 받아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군종법사와 불교 종립학교 교법사 활동 지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큰 역할을 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기영 교수

세 번째로는 이기영교수의 역할이다. 그분의 학문적인 업적은 별도로 하고, 이기영교수는 특히 광덕스님과 짝을 이루어 대불련 학생들을 지도하고, 여성 불자들이 ‘기복(祈福)’ 신앙 수준을 넘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불이회(不二會) 창립을 권유하였으며 이 여성 불자들은 ‘불이상(不二賞)’ 시상 등 현재까지 수십 년 동안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지도하였다. 나는 이런 점에서 이기영교수와 광덕스님이 ‘승재가 관계의 환상적인 모범 사례’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주목하고 따라야 할 사례일 것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대한불교진흥원을 비롯하여 대원 장경호‧덕산 이한상‧불연 이기영 같은 분들이 큰 원력과 의지를 갖고 설립한 곳들이 ‘현재 이분들의 뜻을 얼마나 잘 이어가고 있는가, 이 선각자들이 당시 한국 불교 중흥을 위하여 했던 역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 중국이나 인도는 어떤가? 그곳에서도 재가불자들이 큰 역할을 했을지 궁금하다.
 
중국에서도 재가불자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전근대 시대에도 「신화엄경론」을 저술해 선종사상에 영향을 끼친 이통현, 「호법론」을 저술해 거사들의 책임을 강조한 장상영 등 재가불자들이 중국 불교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근대에 와서 ‘중국 근대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양문회(楊文會)를 비롯해 지나내학원(支那內學院)을 설립해 불교학자를 양성한 구양경무(歐陽竟無))와 탁월한 불교학자 여징‧탕용동 등 재가자들이 무너진 중국 불교의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켰다. 이분들이 아니면 중국에서 불교와 불교학이 매우 깊은 나락((那落, 奈落)으로 떨어져서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와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를 설립하여 경전을 발간하고 뛰어난 불교학자들을 길러낸 양문회는 침체해있던 중국 불교를 살려낸 대표적인 재가자이다.
 
이어서 인도와 스리랑카 사례를 살펴보자.


▲ 암베드카르 박사

인도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무부장관을 맡았던 인도의 암베드카르박사는 거의 사라져버렸던 인도 불교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암베드카르가 없었으면 불교의 고향인 인도 대륙에서 더 이상 불교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암베드까르 박사가 영국 출신의 상가락시타 스님‧로카미트라 법사와 함께 연주한 3중주(重奏)가 인도 불교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하는데, 나도 여기에 100% 공감한다.


현재 스리랑카가 ‘불교국가’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 출신의 올코트 대령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리랑카는 수백 년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제국주의자들이 오랜 역사 전통을 간직해온 불교를 억압하고, 학교 설립과 주민 등록 제도 등을 교회에서 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에 특혜를 주고 불교를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스리랑카의 불교는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이를 살려낸 인물이 올코트 대령이었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한국과 중국‧인도(스리랑카 포함)에서 위기에 처한 불교를 살려내고 부흥시킨 이들이 재가자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 재가자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다섯 번째, 국내외에서 승단을 외호하면서 큰 역할을 한 재가자들이 많은 것을 알겠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승단과 재가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가느냐?’, 이 문제일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는가? 아울러 현재 우리 불교계 현실도 짚어 달라.
 
현재 우리 불교계는 지나치게 승가 중심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그러다보니 재가자들 대부분은 승가에 대한 콤플렉스와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승가를 오로지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그룹’도 생겨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재가자는 엄연히 승가에 대한 존경을 잃지 말아야 하고, 혹 승가가 잘못된 길을 가면 ‘애정을 담은 비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비판을 받지 않는 조직은 언제든 부패하여 무너진다는 것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잘 보여주지 않는가. 그렇지만 모든 것을 승단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도 옳은 길은 아닐 것이다. 재가자들도 ‘우리가 불교 부흥을 책임지겠다’는 원력과 의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불교가 현재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승단을 외호(外護)하지만 그에 종속되지 않고 ‘승재가가 동반자가 되어’ 함께 불교를 진흥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투신하였던 대원거사‧덕산거사‧이기영박사님과 같은 분들이 갔던 길을 잘 돌아보아야 한다. 그분들은 승단의 혼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불교를 새롭게 살려보자!”는 원력과 의지를 펼치지 않았는가.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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