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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종교지도자의 권위는 스스로 드러난다
  • 이병두
  • 등록 2016-07-04 10:14:46
  • 수정 2016-07-04 11: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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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상 사람들이 “이러다 종교가 다 망해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종교 걱정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 걱정이 괜한 기우(杞憂)가 아님을 보여주는 징조들은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매우 종교적이었던 유럽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왕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고 조선 시대 우리 역사에서도 가톨릭을 고리로 좋지 않은 사건에 얽혔던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생에 단 세 차례, 태어난 뒤에 한 번, 결혼식을 치르러 한 번 그리고 죽어서 장례 미사를 위해 한 번 성당에 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전통 종교인 가톨릭에서 멀어졌다고 하죠. 최근 조사 결과 영국에서도 이미 ‘종교를 갖지 않은 무종교인’ 비율이 국교인 ‘성공회와 가톨릭 신자를 합한 범(汎)기독교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사정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원과 교회가 부동산 매물로 나와 술집이나 숙박시설로 바뀌는 일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 이제 더 이상 시민들이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글에서 숱하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쪽의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종교를 가릴 것 없이 ‘종교인들의 권위는 사라지고 있는데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은 갈수록 더욱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가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거듭 거듭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각 종교에서 교조로 모시는 붓다와 예수가 그렇게 권위주의적이었을까요? 공자(孔子)가 그랬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분들은 일생 중 단 한 차례도 권위주의의 포로가 되었던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제자들이 ‘권위’의 옷을 입혀드리려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이분들을 성인(聖人)으로 모시는 것은, 그분들을 따르는 후대의 신도들이 조영한 거대한 상(像)에 감복해서가 아니라 ‘일체의 권위를 거부’한 그분들의 삶을 존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분들의 제자를 자처하는 각 종교계 지도자들은 그토록 ‘권위’에 집착하여, 화려한 옷과 고급 승용차, 호화스러운 거처를 좋아할까요? 이들이 움직일 때 마치 대통령을 경호하는 장면처럼 주변 정리를 하는 등 요란을 떨까요? 이렇게 해야 ‘권위가 나온다’고 믿고 있다면 아주 큰 오산(誤算)입니다. 시민들은 “왜 저렇게까지 할까? 무슨 공격 받을 일이 있다고 경호까지 해? ……”라면서 비웃습니다. 아들에게 대형 교회를 세습하며 고급 BMW 승용차 열쇠까지 함께 전해주는 어느 목사님의 소식을 듣고 어느 누구도 존경하지 않듯이.




훌륭한 종교 지도자라면 “나를 알아 달라, 존경해 달라!”고 이런 억지 몸짓을 쓰지 않아도 ‘권위’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붓다 당시의 일화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인이라면 그분의 여러 훌륭한[上首] 제자 중에서도 사리풋타(舍利弗)와 목갈라나(目揵連) 존자가 초기 교단 발전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붓다께서도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한 쌍의 제자이다”라고 언급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붓다에게 귀의하게 된 데에는 앗사지라고 하는 비구가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산자야라는 행각行脚 사문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둘은 이미 한 가지 약속을 하였다. ‘먼저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반드시 알려 주기로 한다.’

그때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 비구가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라자가하[王舍城]로 걸식하러 갔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모습이 의젓하였다. 땅을 보며 걷는 그의 몸가짐이 훌륭했다. 그때 라자가하에서 걸식하는 앗사지 비구를 사리풋타가 보았다.

사리풋타는 생각했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이가 있다면, 저 비구야말로 그들 중 한 분일 것이다. 저 비구에게 가서 물어봐야겠다. <누구에게 출가하였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믿고 있는가?>를.’

사리풋타는 다시 생각했다.

‘걸식하고 있는 지금은 저 비구에게 물어 볼 때가 아닌 것 같다. 우선 저 비구를 따라가 봐야겠다.’

앗사지는 라자가하에서 걸식을 마치고 성 밖으로 나갔다. 사리풋타는 앗사지 비구를 따라갔다. 사리풋타가 앗사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몇 마디 말을 나눈 뒤에 한쪽에 서서 물었다.

“벗이여, 그대의 안색은 고요하고 엄숙하면서도 깨끗하고 밝습니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에게 출가했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믿고 있습니까?”

“벗이여, 사캬족의 후예로 세속을 떠나 출가한 위대한 사문이 있습니다. 그분은 붓다입니다. 나는 붓다에게 출가하였고,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분의 법을 믿고 있습니다.”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설하십니까?”

“벗이여, 나는 아직 어리고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붓다의 가르침을 자세히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다만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벗이여,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앗사지는 사리풋타에게 법을 전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이것이 위대한 사문,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사리풋타는 그 법문을 듣고 청정한 법의 눈[法眼]을 얻었다. 곧 ‘발생한 것은 모두 소멸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게송으로 읊었다.


비롯 이것뿐이라고 하여도,

무수한 겁劫을 헤매어도 보지 못하였던

슬픔 없는 길을

그대들은 깨달았네.


사리풋타는 목갈라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목갈라나는 사리풋타가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벗이여, 그대의 얼굴이 고요하고 엄숙하면서도 깨끗하고 밝습니다. 벗이여, 그대는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까?”

“벗이여, 나는 불사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 도달했습니까?”

사리풋타는 앗사지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법문을 듣고 목갈라나도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다. 곧 ‘발생한 것은 소멸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리풋타와 같은 게송을 읊었다.

그때 목갈라나가 사리풋타에게 말했다. “벗이여, 우리 붓다의 곁으로 갑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E. H. 브루스터 편저, 박태섭 옮김, 「고타마 붓다의 생애」, 시공사. 104~106쪽)



붓다의 두 기둥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붓다의 제자가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가 그랬듯이, 오늘 이 땅의 시민들도 앗사지처럼 ‘고요하고 엄숙하면서도 깨끗하고 밝은’ 그런 수행자와 성직자의 모습을 원합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거나 경호원을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는 이들을 보고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는 ‘종교 지도자’라는 호칭을 쓸 수 있겠지만, 일반 시민들 중에서 그들을 ‘종교 지도자’라고 느끼는 이들은 없습니다.


정치인들과 어울려 그들의 못된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이나 하고 범죄로 벌어들인 돈을 ‘헌금’ ‧ ‘보시금’이라는 명분으로 세탁하는 창구를 맡아 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설사 각 종교계의 아주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도 존경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을 하고 심지어 ‘나쁜 놈들!’이라며 욕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교 지도자’를 자처한다면 하루 빨리 그 ‘권위’를 버리십시오. 스스로 ‘권위’를 버리고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앗사지 비구처럼 ‘고요하고 엄숙하면서도 깨끗하고 밝은’ 모습을 회복하게 되면 억지로 권하지 않아도 숱한 시민들이 여러분을 존경하고 여러분에게 ‘권위’를 선물해드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교단에 사리풋타와 목갈라나 같은 훌륭한 수행자와 성직자들이 많이 들어와 교단을 발전시키고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 여러분, ‘권위’는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필진정보]
이병두 : 종교 칼럼니스트이며 종교평화연구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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