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 백남기 청문회가 오후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야당은 경찰의 살수차 운용의 불법성과 위험성을 추궁했고, 여당은 폭력 시위 가담자의 불법성을 부각하는데 집중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 관계자들은 시민들을 향해 직사로 뿌려지는 물대포 영상을 보면서도 “안전교육을 받았다”, “안전을 위해 좌우로 살수했다” 등의 진술만 되풀이했다.
이날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지난해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이 집회 전 발동했던 ‘갑호비상령’ 조치에 대해 “시위에 모인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희 교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경찰의 갑호비상령 발동 조건에 해당하는가를 묻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의 말에 “갑호비상령은 계엄령에 준하거나 직전 상태에만 제기될 수 있는 명령이다”라며 경찰의 과잉 진압이 시위대를 자극해 격렬한 대응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경찰의 폴리스라인이라고 하는 차벽은 그 자체로 집회 참가자에게 심리적 압박감과 무기력감, 당혹감을 준다”며 “차벽이 집회 참가자들을 흥분하게 하고 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은 연구결과로도 이미 밝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발령한 ‘갑호비상령’은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령으로 대규모 집단사태로 치안 질서가 혼란해지거나 계엄이 선포되기 전 상황에서 발동된다. 집회 당시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에 갑호비상령이 내려졌으며 전국 248개 부대, 2만여 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특히 “경찰은 집회의 본래 목적인 항의 대상과 집회 장소를 분리했다. 집회의 자유에선 이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 점에서 경찰의 진압은 위헌적이고 불법적이다”라며 “쌀값 21만 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파기한 청와대에 대해 항의할 기회조차 박탈한 것이다. 차벽으로 집회의 자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폭력시위’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태도에 대해 “시위 과정에 불법이 있을 수 있지만, 경찰은 불법 군중을 분리해 평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임무”라며 “경찰은 1백 명 불법을 근거로 9만 9천 9백 명의 평화 집회를 방해했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 “지난 2월에 유엔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공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적법, 합법하다고 하더라도 무력사용을 방지해야 할 예방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국가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와 있다.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불상사가 발생한 사실만으로도 국가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백남기 선생에게 사과할 수 없다는 강 전 청장의 논리를 지적했다.
“구급차 실려 간 사람만 36명, 경찰 책임 없나?”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집회 당시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음은 인정하면서도 “경찰도 평화적으로 집회시위를 관리할 임무가 있는데, 이것을 실패한 것이 아니냐”라며 “경찰 수장으로서 평화적인 집회가 되도록 의무를 다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강 전 청장이 ‘참여 인원이 많아 다른 장소로 가서 집회시위를 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하자, 권은희 의원은 “아니다. 집회 이전부터 정부는 공안대책회의를 통해 불법폭력집회에 대해 엄정 대응이 불가피하다며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불법시위를 선동한 자나 폭력행위자는 끝까지 추격·검거해 사법 조치하겠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또한, 강 전 청장이 실질적으로 평화집회에 대해 노력을 했다면, 집회시위보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경찰과 집회 참석자들이 충돌해 경찰관 113명이 부상하고, 집회 참석자들은 구급차에 실려 간 인원만 36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민중총궐기 당시 현장에서 실제로 살수차를 운용한 한석진, 최윤석 경정이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이 시위대 진압을 목적으로 사전 훈련을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안전을 위해 좌우로 살수했다’고 반복해 증언하면서도 훈련 당시 사람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지는지에 대한 훈련은 하지 않았던 점도 밝혀졌다.
권은희 의원이 두 증인에게 “모니터가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하는데, 그러면 안전성에 대한 보장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한석진 경정은 “그 전날 서울기동본부에서 실제상황을 가정해서 충분한 살수 훈련을 했다”며 사실상 민중총궐기 이전 경찰이 시위대 진압을 목적으로 훈련을 한 점이 드러났다.
또한 살수차의 위해성에 대해 교육받았느냐는 질문에 최윤석 경장은 ‘훈련대로 안전하게 좌우로 살수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사람을 향해 직사살수 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바닥에 살수하는 훈련 위주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 시위참가자의 가슴 이하 부분을 겨냥해야 한다’는 살수차 운용지침과 관련한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살수차 사용법 외에 실질적인 안전운용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훈련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문감사보고서’ 제출 후 다시 열려야
이날 청문회는 경찰의 ‘청문감사보고서’ 제출에 대한 여야 간 견해차이로 일시적인 파행을 겪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사건의 최초 진술과도 같은 ‘청문감사보고서’를 경찰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권은희 의원도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는 증인들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진술 조서인 청문감사보고서가 제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청문회가 열린 이유는 백남기 농민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 누구의 고의 과실이며,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라며 “이제까지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사안과 상관없는 폭력 시위 가담자의 불법성만 부각하는데, 그러면 진실규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이 발생하고 304일이 지났지만, 경찰은 ‘수사 중’이란 이유로 감사보고서 제출을 거부했고, 강 전 청장도 이를 이유로 사과를 거부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감사보고서가 없던 청문회는 불법시위와 과잉진압의 논쟁으로 흘렀다.
사람의 머리를 향해 따라다니며 직사살수 한 동영상이 나왔지만, 경찰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안전훈련’을 받았고, 시위대는 ‘불법폭력’ 시위를 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