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하루가 1,000일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며, 참사의 진실규명을 기다리며 매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 안타까운 하루들이 모여 1,000일을 채웠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전후로 이를 애도하는 추모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국미사가 봉헌됐다. 50여 명의 사제들과 700여 명의 수도자, 신자들이 미사에 참석해 꺼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오늘 이 미사는 우리 모두가 꺼지지 않는 빛이 되고자 다짐하는 미사
이날 시국미사의 주례를 맡은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는 “어둠이 삼켜버린 세월호 희생자들, 미수습자들, 여전히 어둠속에 고통 받는 가족들, 그리고 이 땅에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봉헌한다”며 “오늘 이 미사는 우리 모두가 꺼지지 않는 빛이 되고자 다짐하는 미사”라고 시국미사의 취지를 분명히 했다.
김명식 신부(의정부교구)도 1,000일 동안 아픔을 간직해야만 했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위로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그는 폭압에 짓눌리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신앙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짓눌렀던 정권으로부터 탈출을 하자고 말했다.
김 신부는 “세월호 참사의 상처가 아직도 국민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며 “슬픈 일이 있으면 서로 부둥켜안고 마음껏 울어야 그 상처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는 1,000일 동안 그러지 못했다”며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우리는 단순히 저 파란지붕 아래 살고 있는 한 할머니가 물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만났을 때처럼 탈출을 위해 모였다.
그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무시한 집단에게 우리의 분노한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며 “우리는 단순히 저 파란지붕 아래 살고 있는 한 할머니가 물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만났을 때처럼 탈출을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세월호 참사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것도, 그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과 유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모두 하느님께서 들으셨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신앙인과 국민들에게 고통 속에서 탈출하기를 권하고 있고, 교회가 이러한 권유를 세상에 전하며 모세와 같은 예언자적 소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교회가 되어주자”라며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곳으로 탈출하자”고 했다.
그는 탈출을 꿈꾸는 신앙인들이 가장 위험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속적인 영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세속적인 영은 인간을 오만과 자만에 빠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속의 영을 가지고 살 수 없다고 짚었다.
우리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자. 광야에서의 삶이 힘들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함께 탈출하자.
김 신부는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 가난을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우상에 빠지게 된다”며 “우리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자. 광야에서의 삶이 힘들지라도 우리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함께 탈출하자”고 강론을 마쳤다.
이날 시국미사 발언대에는 지난 7일 출범한 4·16세월호국민조사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맡은 박성영 4·16연대 운영위원이 나섰다. 그는 세월호 광장을 찾아준 신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참사의 진실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해달라는 호소를 잊지 않았다.
박성영 공동대표는 먼저 “1,000일이라는 긴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과 싸워야 했고, 광화문에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라며 “그러나 정말 치열하게 싸우는 세월호 가족들을 보며 싸울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1,000만 촛불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 함께할게. 행동할게’란 처음 약속을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특히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어려운 시기에 세월호 광장을 굳건히 함께 지켜주시는 천주교 신부님과 수도자, 신자분들께 감사한다”라며 “1,000일이든 10,000일이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잡은 손 꼭 잡고 함께 나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미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까지 침묵행진을 했다. 주최 측은 침묵의 의미가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을 애도하며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를 포함한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침묵으로 연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촛불과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바라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경복궁 앞을 지나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또한 11차 촛불집회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한 정원 스님이 오후 7시 40분경 입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함께 염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