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4년간 정의는 빼앗겼고, 검찰은 침몰했다. 경찰은 국민을 물대포로 죽였고, 그 시신까지 탈취하려 병원을 포위했다. 농촌을 살려달라고 올라온 농민에게 박근혜 정권은 끝까지 폭력으로 일관했다.
백남기 선생의 원통한 죽음 앞에 국민은 촛불을 들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백남기 선생의 시신을 지키던 촛불은 이후 광화문 광장으로 옮겨 붙었다.
백남기 선생에 대한 국가폭력 사건은 말 그대로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권을 앗아가는 폭력문제가 핵심이다. 또한 백남기 선생이 서울 광화문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농업 정책문제도 연관된다. 거기에 국가폭력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검찰도 문제다.
19대 대선주자들은 국가폭력의 잔혹한 실상을 드러낸 백남기 사건을 겪으며 새로운 정부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참여연대와 한국일보가 함께 진행한 대선후보 정책 질의에서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과도한 집회 금지 조치를 개선하고 차벽 설치를 제한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촛불광장에서 국민들이 몸소 보여준 사실에서와 같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성숙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가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부 공약으로 ▲야간 집회 시위 시간별 제한 금지 ▲집회시위 현장에 대한 사전 차벽 차단 금지 ▲집회 시위 장소 신고를 관할 지방자치단체로 변경 ▲집회 시위 장소의 신고가 중복될 경우 참가자 간 분리가 가능하고 충돌 우려가 없는 경우에 허용 등을 제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책 질의에서는 “최우선으로 ‘백남기 특검’을 실시하겠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은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10대 공약에서 검찰의 권한을 줄이고, 경찰 조직을 분산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또, ‘경찰위원회’를 재편성해 경찰 조직이 민주적 운영체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농어업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농어업정책 틀을 전환하겠다며 물가상승을 쌀 가격에 반영, 농어업재해대책법·농업재해보험법 지원기준 현실화 등을 제시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백남기농민 사건의 주요 순간마다 참여해 박근혜 정부가 국가폭력을 인정하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집회 시위를 제한하는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에도 찬성했다. 주교회의가 보낸 정책 질의서에서도 백남기 특검과 특별법 제정에 찬성했다.
심 후보는 지난해 11월 5일 백남기 선생 영결식에 참석해 추도사에서 “파렴치한 박근혜 정부는 참담함을 보이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백남기 선생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다. 어르신께서 우리 가슴마다 꾹꾹 눌러 심어주신 소중한 민주주의 씨앗을 무럭무럭 키워 반드시 결실 맺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심 후보는 경찰이 백남기 선생의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강제집행을 시도하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부검을 위한 불법적인 영장집행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을 인정하고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10대 공약에서는 촛불혁명 과제 중 검찰개혁과 사법정의 실현에 초점을 두고 공약을 제시했다. 행정체계를 개혁하는 차원에서 ‘광역·기초 단위 자치경찰제 도입’과 ‘자치경찰 관련 주민 참여와 통제를 제도화’하겠다는 공약이 있다. 농어업 관련 정책으로는 FTA 재협상 시 농업부문을 바로잡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집시법 개정에 대해 일부 찬성했다. 안 후보는 현행 집시법에서 청와대·국회 앞 집회를 막는 것은 개정돼야 하지만, 교통소통을 이유로 도로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현행 집시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관련한 천주교주교회의 질의에는 답하지 않았다.
안 후보는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병사(病死)’로 밝힌 것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의학은 사실이 중요하다. 정치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라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외인사(外因死)’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부검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다 알고 있다. 유가족이 반대하는데도 영장청구를 강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다. 반드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대 공약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와 검·경 권력의 민주화 등 앞서 소개한 두 후보와 비슷한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찰개혁에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경찰 관련 공약은 불법 중국어선 단속을 위해 해경을 부활시키겠다는 공약만 있었다. 농업 관련 공약으로는 쌀 소비 확대를 위한 급식프로그램 개선에 집중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집시법 관련 정책질의와 천주교정책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백남기농민 사건 당시 경남도지사로서 이에 대한 발언이나 행동도 찾기 힘들었다.
홍 후보는 자신의 SNS에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공사, 천성산 터널공사, 새만금 간척사업 등을 언급하며 “전문시위꾼들에 의한 국책사업방해가 대다수다. 한국사회가 시민단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고 허구한 날 집회나 시위로 국민전체에게 해악을 끼치는 집단들에 의해 농단이 되어서 되겠는가”라고 적었다.
그는 일단 국책사업이 결정되면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승복하는 것이 성숙한 국민의식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떼쓰기만 업으로 하는 전문시위꾼들에게 국가가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10대 공약에서는 경찰에게 영장청구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이 눈에 띈다. 또한 경찰대학을 재직자에게 개방하고 교육기관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농업관련 공약으로는 농가의 농산물을 담보로 정부 혹은 지자체가 대출 이자와 금융비용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집회 시위를 제한하는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질의에 찬성했다. 백남기 사건에 대한 천주교 측의 정책질의에는 답하지 않았다.
유승민 후보는 지난해 10월 6일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은 공권력이 과잉 진압해서 한 시민의 목숨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라며 “국가가 과잉 진압에 따른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부검과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은 특검을, 새누리당 일부는 부검하자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보수가 생각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불법 폭력 시위는 단호히 법으로 엄단해야 하지만, 공권력이 과잉 대응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10대 공약에서는 검찰·경찰과는 별도로 수사청을 설치해 세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는 권력분산 방식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농업 관련 공약은 없었다.
책임자 처벌 없는 개혁은 ‘공염불’
공동선은 평화를 지향한다. 이는 곧 올바른 질서의 지속과 안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공동선은 공권력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안전을 정당한 방법으로 보장할 것을 전제로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09항)
주요 대선 후보들은 선거를 앞두고 국가폭력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가폭력의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고, 재발 방지에 대한 공약이 없다면, 국가폭력을 개혁하겠다는 말은 단지 선거철에 넘쳐나는 공염불로 보일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달라는,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촛불의 호소가 대선주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공약에 더 절실히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