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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가난한 예수 91 : 세금 납부 논쟁
  • 김근수
  • 등록 2017-10-10 10:50:07
  • 수정 2017-10-17 11: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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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래서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밀정들을 선량한 사람처럼 꾸며 예수께 보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사법권을 쥔 총독에게 넘겨서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21 그들은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과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또 선생님은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실 뿐더러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도 압니다. 22 그런데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23 예수께서는 그들의 간교한 속셈을 아시고 24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이시오. 그 돈에 누구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25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26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답변에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루카 20,20-26) 




예수가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친 후 유다교 지배층이 예수의 주요 적대자로 등장하고 있다. 본문은 이야기 흐름에서 루카 20,1-8과 공통점이 있다. 예수는 함정 질문을 받는다. 어느 쪽으로 답하든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긍정하면 경건한 사람들과 무장독립파와 대립된다. 부정하면 예수는 빌라도에게 고발될 수 있다.(루카 23,2) 예수는 반문을 던져 질문자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듣느라 곁을 떠나지 않았다(루카 19,48)는 본문의 배경을 기억하자. 앞 단락에서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질문한 사람들은 율법학자들과 대사제들이다. 


20절에서 기회를 엿보던 그들은 누구인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벌써 여러 차례 예수를 노리고 있었다.(루카 6,7; 14,1) 율법학자는 요즘 말로 신학자다. 바리사이파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 평신도 그룹이다. 유다교의 신학자들과 모범적 평신도 그룹은 왜 예수를 괴롭히는가. 그들은 종교 권력층이요 여론 주도층 아닌가. 유다교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를 노리고 있다. 예수는 종교 지배층이나 종교 여론 주도층에 속하지 않았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20절에서 밀정egkathetos들을 선량한 사람처럼 꾸며 예수께 보냈다.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여기에만 있다. 영화 ‘밀정’이 생각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우리 독립군을 괴롭힌 우리 동포들이 있었다. 밀정들을 선량한 사람처럼 꾸며 예수께 보냈다는 표현은 한국에서 정보기관에게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치가 떨리는 말이다. 예수 시대에도 정보기관의 횡포는 있었나 보다. 루카는 총독을 hegemon이라고 부른다.(루카 2,2; 3,1; 사도행전 23,24) Hegemon이란 단어는 주도권이라는 뜻으로 요즘 자주 쓰인다. 넘긴다paradounai는 사람을 체포하여 권력기관에 처벌을 요구하는 의미다.(루카 18,32; 23,1)


21절에서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칭송은 의로운 판사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흔들리지 않고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레위 19,15) 하느님은 공정하게 심판하신다.(로마서 2,11; 에페소 666,9; 골로사이 3,25) 의로운 판사는 하느님의 역할을 보여주지만, 나쁜 판사는 하느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의로운 판사라는 사실을 한국의 법조인들은 잊지 말라. 나쁜 판사는 자신의 엉터리 판결에 대해 하느님의 가혹한 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마르코 12,14)를 중복으로 보아 루카는 삭제했다. 루카는 세금kensos이라는 단어보다 공과금poros이라는 단어를 썼다. 

 

예수는 정치적 고려 없이 정무적 판단 없이 답변apokrisis할 것을 요구받았다. 로마황제는kaisari 로마제국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황제kaisar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사람 이름에서 황제 호칭이 되었다.(Bovon, III/4, 95) 로마제국은 세금을 식민지 사람들이 대신 걷어 바치도록 했다. 식민지 백성은 주민세와tributum capitis 토지세를tributum soli 내야 했고 로마시민들은 면제되었다. 유다지방은 공통년(서기) 6/7년경 인구조사를 근거로 세금이 결정되었다. 세금 납부는 유다인에게 경제적 고통뿐 아니라 하느님백성이 이방인에게 복종하는 민족적 수치로 여겨졌다. 


예수 이전에 벌써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이방인 군대의 지배를 받았다.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어떻게 지키느냐가 큰 문제였다. 이방인에게 세금 내는 문제는 모세오경에 사실 없었다. 그래서 유다교 내부에서 그룹에 따라 의견이 달랐다. 보통 주민들은 차라리 세금을 바치고 종교 자유를 어느 정도 허락받는 길을 택했다. 갈릴레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무장독립군 젤로데파는 로마에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사도행전 5,37)바리사이는 이 주제에서 하느님의 권위와 이방인 국가의 권위를 구분했다. 이 입장은 이스라엘과 1세기 교회의 입장이 되었다.(Bovon, III/4, 93) 


예수 당시 여러 화폐가 통용되고 있었다. 유다 지방 사람들은 상업에 티루스가 발행한 쉐켈을 썼다. 데나리온은 로마에서 가장 널리 쓰이던 은화였다. 로마는 세금을 로마 돈으로 바꾸어 내도록 했다. 공통년 전 44년부터 데나리온의 한쪽 면에 로마황제 초상이 새겨져 사용되었다. 데나리온은 로마군인과 공무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한 화폐였다. 데나리온은 세금 낼 때 사용된 돈은 아니었다.(Wolter, 653)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이시오.”(마태오 22,19)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루카 본문은 정확히 말하면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아니냐는 논쟁이 아니다. 세금을 유다인에게 최종적으로 받는 사람인 로마황제를 유다인은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25절 카이사르의 것은ta kaisaros는 모든 데나리온을 가리킨다.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이라는 예수의 반문은 통쾌했다. 예수와 제자들은 로마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에게 함정 질문을 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로마 돈을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우상이 그려진 물건을 지니고 다니는 일은 율법을 어긴 것이다.(탈출기 20,4.23) 그 사실이 들키고 말았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들은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의 화폐 데나리온.


자기들은 로마에게 세금을 잘 내고 있는데 예수 그룹은 어떤가 알아내려는 심보에서 나온 질문이다. 예수의 답변은 명쾌하다. 카이사르의 것을 가지고 다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는 하던 대로 로마황제 카이사르에게 계속 충성하라며 예수는 비판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은 하던 대로 하느님께 계속 충실하겠다는 말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의 길은 틀렸고, 예수와 제자들의 길은 옳다는 뜻이다. 로마황제 카이사르는 하느님께 복종(사도행전 4,19; 5,29)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는 질문자의 속셈을 알았다.(루카 5,22; 9,47; 11,17)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잘 알아내야 한다. 한국 대선토론회에서 함정 질문을 마구 던지는 후보들이 있지 않던가. 나쁜 질문에는 예 또는 아니요로 멍청하게 답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질문자의 덫에 빠지는 일이다. 루카는 예수가 적대자들보다 뛰어나며 그들의 함정 질문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루카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국가와 종교라는 거창한 주제에 학술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를 로마에 고발하려는 것뿐이다. 학술 세미나에서 받은 질문이라면 예수는 아마도 다르게 반응했을 것이다. 


본문은 루카에서 적대자들이 예수에게 던지는 마지막 함정 질문이었다. 이후 누구도 예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예수가 함정 질문에 속지 않았다는 사실을 목격한 증인들은 군중이었다. 군중이 예수의 능력을 알아차렸다. 적대자들은 질문을 포기했지만 폭력을 준비한다. 논리로 예수를 이길 수 없으니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것이다. 폭력은 악의 세력이 쓰는 마지막 무기다. 


루카는 적대자들의 악함과 무능을 폭로하려고 했다. 그리스도교는 국가에 위험하지 않은 종교라는 사실을 초대교회 신자들과 독자들에게 확인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는 전혀 관계가 없고 아주 다른 영역이므로 서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을 본문에서 이끌어낼 수는 없다. 종교와 정치는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독재자들이나 독재세력에 부역하는 어용신학자들은 본문을 인용하여 그런 짓을 많이 했다. 


“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종교가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어야 하고 오로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준비하게 위해서만 종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182항)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잘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느님의 도구인 우리가 그러한 부르짖음에 귀를 막는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뜻과 그분의 계획을 거스르는 일입니다.”(복음의 기쁨, 187항)


본문의 주제를 놓고 성서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무장독립파와 거리를 두는 예수를 강조하거나(J.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II, 1292-1293), 그런 예수와 다르게 로마제국의 횡포에 분노하고 유다 부역자들에게 엄한 예수(S,G.F. Brandon, The Trial of Jesus of Nazareth, 66-68)를 그리기고 했다. 적대자에게 속지 않은 논쟁가 예수를 강조한 학자들도 있다. 세금을 내야 하느냐 문제는 사실 예수에게 큰 주제는 아니었다. 세상 종말이 곧 다가올 것을 기대한 예수나 초대공동체에게 세금 내는 문제는 시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정치권력보다 하느님이 위대하시다는 말을 예수는 하고 싶었다.


중세 가톨릭에서 가톨릭교와 국가의 관계는 로마서 13,1-7, 베드로전서 2,13-17 그리고 오늘 본문 루카 20,25 세 구절이 가톨릭교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성서적 원리로 사용되었다. 그 영향은 라테란 4차공의회 문헌과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에 남아 있다. 1958년 교황 비오 12세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한 나라와 다른 나라의 관계와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루카 20,25절을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정하는 원칙으로 재확인했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로마서 13,1)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복종하십시오.”(베드로전서 2,13)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시오.”(루카 20,25) 선거를 통해 권력이 교체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기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숨이 막혔겠다. 가톨릭은 신자들에게 국가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가르쳤지만 불의한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을 분명히 가르치진 않았다. 그래서 주교와 신부들은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하기 꺼리는가. 가톨릭은 민주주의 도입에 별로 공헌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끈질기게 방해했었다. 프랑스혁명에서도 스페인내전에서도 가톨릭은 독재권력을 편들었다. 부끄러운 역사다. 이제 그래서는 안 된다. 불의한 국가권력에는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교회가 정치권력과 갈등을 빚을 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느님을 따라야 한다. 정치권력에게 특혜와 안정을 얻기 위해 교회가 복음을 잠시 외면해선 안 된다. 주교들은 그런 위험과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박해에 저항하기보다 권력의 유혹에 무릎 꿇기가 현실적으로 더 쉽다. 주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주교의 빨간 모자는 순교의 피를 상징한다. 돈과 권력에 약한 주교는 주교가 아니라 배교자다. 로메로 대주교는 목숨 걸고 설교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그들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현실이 저는 기쁩니다.”(1979. 7. 15 강론) 한국에는 왜 로메로 대주교 같은 주교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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