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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온 우리 동포 이야기
  • 문미정
  • 등록 2018-07-13 13:23:17
  • 수정 2018-07-16 11: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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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도 늘 그러셨어요. 조선 사람의 인권은 가만히 있으면 누가 와서 거저 주는 그런게 아니라고.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거라고요. 


1910년 조선 땅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인들의 말과 글을 빼앗고 토지를 약탈했다. 조선인들은 생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은 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 고된 노동을 시켰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정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조선인’이란 이유로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멸시 받아야 했다. 


이러한 재일동포의 삶을 그린 연극이 있다. 재일조선인 3세 김기강 씨가 1인 다역을 소화한 연극 <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 >다. 일본의 데이서비스센터(고령자종합복지센터) 민들레를 배경으로 을생 할머니와 재일조선인 2,3세 센터 스텝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일조선인들의 삶을 그렸다.  


▲ 단출한 소품 몇 개뿐인 무대. 김기강 씨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관객들과 함께 무대를 채워나갔다. ⓒ 문미정


김기강 씨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텝 명미를 연기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입 요우코의 수줍음 많은 모습을 연기하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느릿하지만 여유 있는 을생 할머니로 능수능란하게 변했다. 


여러 역할을 소화하면서 홀로 90분이 넘는 연극을 지루함 없이 이끌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출한 소품 몇 개와 혼자서 무대에 서면 외롭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김기강 씨는 능청스럽게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무대를 채워나갔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제주도에 두고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오사카로 건너와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을생 할머니. 금방 올 테니 울지 말라며 동생을 위로했던 할머니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90살을 맞이했다. 


재일동포의 삶은 고단했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치마저고리는 벗고 기모노를 입어야 했다.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의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누구를 탓하겠어? 시대를 탓할 수밖에 없지. 


관객들은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김기강 씨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함께 웃고 박수치고 때론 숨죽이고 울기도 했다. 


극 중에서 할머니들의 바이탈 체크를 한 스텝들은 무척이나 건강하다면서, “할머니도 역시 민족의 피가 흐릅니다!”라고 외친다. <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 >란 제목은 아무리 거친 곳에서도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의 민족성을 잃지 않고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건 아닐까. 


▲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 >를 소개하는 김기강 씨. ⓒ 문미정


2013년 10월 일본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 >는 현재 120회가 넘었다. 재일동포 1세 할머니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잘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이 연극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 


김기강 씨는 한국 사람들이 재일동포 역사를 잘 모른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1세 할머니, 할아버지는 민족성을 지키면서 우리를 키웠다”며, “조국에 계신 여러분들이 우리(재일동포)의 역사를 모른다면 정말 슬프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잘 전달하고 싶단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 >는 13일 오후7시 광주 극단 토박이, 14일 오후3시 세종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 일정을 마지막으로 한국 공연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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