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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정의로운 건강?
  • 김혜경
  • 등록 2018-12-19 14:53:48
  • 수정 2018-12-19 14: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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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부터 매 월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나누었던 [독서나눔]은 이번 책을 끝으로 연재를 마감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총 서른여덟권의 책과 귀한 글을 나누고 연재를 허락해 주신 김혜경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 (사진출처=세이브더칠드런 영상 갈무리)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12월 이즈음이면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벌이는 캠페인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에 참여한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아프리카 말리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된단다. 무더운 아프리카에 웬 털모자냐 싶지만 실은 지역마다 기후가 다양하고 사막 같은 곳은 밤낮 기온차가 심해서 갓 태어난 아기는 폐렴이나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는 거다. 또 인큐베이터 같은 값비싼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개발국가에서는 엄마가 아기를 모자와 담요 등으로 감싸 안고 체온을 2℃ 정도만 높여도 많은 신생아를 살릴 수 있단다. 이를 캥거루케어라 부른다. 


모자뜨기 키트를 구입하다 떠오른 「아픔이 길이 되려면」. 딱딱한 양장본에다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 좀 건조하게(?) 느껴지는 부제가 붙은 책. 학자가 그것도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쓴 거라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천만에 아주 다정하게, 정성스레 써내려간 산문 같다. 뭐든 겉모양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건 역시 조심해야한다. 추운 겨울,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그의 문장에 귀 기울이면서 아 그랬구나, 그렇구나 하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저자는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말한다. 그건 지금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사람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노인 등은 물론이고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 적부터 비롯된단다. 가난한 어머니 때문에 영양 결핍인 태아는 살아남는데 꼭 필요한 뇌 같은 기관에 영양분을 먼저 사용하고 췌장 같은 덴 적게 사용한다는 거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오십년쯤 후 당뇨병이나 심장병,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미처 인지하거나 기억하지도 못한 사회 환경이 자신의 몸에 새겨지고, 이 때문에 성인병 혹은 우울증을 앓게도 된다는 말이다. 나도 몇 년 전 공황장애가 생겼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데 이 역시 내가 처해왔던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내 안에 나도 모르게 남긴 상처들 때문이지 싶다. 


삶의 기반을 흔드는 고용불안은 비정규직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십 수 년 일하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되었던 쌍용자동차노동자들. 파업에 참여했던 이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걸프전과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군인들보다도 높단다. 전쟁을 겪은 군인들보다 해고노동자들이 더 아프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는 왜곡된 거였다. 2007년 69억이던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는 겨우 1년만인 2008년에 5,177억으로 계산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를 근거로 <근로기준법> 제24조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만들어 부실기업이라며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아낸 거다.(97쪽) 결국 2009년 2,646명이 정리해고 되었고 이후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거나 뇌출혈로, 심장마비로, 당뇨합병증으로 죽어간 해고자와 가족이 삼십 명에 이른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직장을 잃었을 때 우리나라는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없다. 모든 짐을 해고자와 그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퍼센트가 직장을 잃었을 때 국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 프로그램을 펼쳤고 오히려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했다고 한다. 부럽기 짝이 없다. 


해고 등으로 생기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일상적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에 상처가 남아 생기는 질병이다. 그런데 저자는 트라우마가 된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이후에 그 사건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재생산되는지가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져온 사회적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서 자신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트라우마는 더욱 심해지고 깊어진다는 말이다. 물론 저마다의 상황과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데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근본적으로 보자면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인 폭력에서 기인한 거라면, 공동체는 그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175-177쪽)는 거다.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정부는 철저한 원인 조사와 대책 마련은 물론이고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찾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 떠올리기에도 고통스러운 세월호 참사의 경우, 피해자들은 여러 이유로 상처를 받았고 아픈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는 유가족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 내용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과장해 보도하면서 참사로 고통 받는 피해자를 마치 운 좋은 사람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특히 세월호 지원 대책에 포함된 대학 특별전형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태도는 더 문제였다. 관련 뉴스에 ‘친구는 죽었는데 너는 좋은 대학 가서 좋겠다’라는 댓글이 달렸고 이를 본 생존 학생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과 피해자를 이간질한 셈이 되고 말았으니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 과정은 너무나 서툴렀다. 꼭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 ⓒ 문미정


일본을 보면, 쓰나미 등의 재난을 겪은 지역에 정부가 여러모로 지원을 하지만 누구도 그 내용을 입에 올리지 않고, 언론도 보도를 하지 않는단다. 지원 내용을 국민과 공유하는 게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재난 당한 이들을 애도하고 치유하는데 집중하도록 온 사회가 침묵한다는 거다. 그게 맞다. 그게 제대로 된 공동체의 모습이다. 누구든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묵묵히 함께 해주고 그들이 겪는 슬픔과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게 공동체여야 하니 말이다.


저자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인턴과 레지던트라는 이름의 의사들, 긴장 속에서 부족한 인력으로 우울증과 불면증, 전신피로를 앓는 소방공무원 등을 들어가며 어쩌면 좋겠느냐 안타까운 표정으로 묻는다. 경찰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진압할 때 버스에서 심하게 구타당하는 아빠를 본 다섯 살짜리 꼬마는 그 후 유치원 버스를 타지 못했다고. 다른 아이들이 신나게 재잘거리며 소풍을 가도 버스 계단에 발을 올리지 못해 홀로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다고. 그 아이 속에 뭐가 어떻게 남았을지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그런 사람은 되어야하지 않겠느냐 조심스레 당부한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의 도움이 절실하다. 예컨대 아기침팬지는 머리가 작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산도를 빠져나온다. 엄마와 얼굴을 마주하며 나오는 새끼를 엄마가 두 손으로 받아 안듯 출산을 한다. 그런데 사람은 머리통이 크게 진화해온 바람에 비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느라 두 번이나 몸을 틀면서 아기의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나오게 된다. 자칫 엄마가 손으로 받으려다 아기의 목이 꺾일 수도 있다. 누군가 곁에서 도와야 안전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도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일 년 정도는 보살핌을 받아야 기껏 걸음마를 한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니 아무쪼록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해야 한다. 사랑의 화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여기라는 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아무래도 올 겨울에는 털모자를 하나 더 떠야겠다.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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