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구대교구가 바뀌면 대구도 바뀐다고 생각한다.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소신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
지난 9월 18일, 천주교개혁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 대구MBC > 심병철 기자가 한 말이다. 심병철 기자는 2년 전 ‘희망원의 인권유린과 비리 사건’ 취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각종 비리의혹을 심층취재·보도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기자가, 왜 이토록 깊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검은 그림자의 중심을 향해 가는 것인지 대구에서 심병철 기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 천주교를 상대로
“희망원 문제로 취재를 시작하고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사목공제회 자금흐름, 대구가톨릭대학교 내부고발문건, 팔공산골프장 문제까지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혹이란 의혹은 모두 조명한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저도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천주교는 절대 권력이자 성역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교구 검은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발단이었던 소병욱 총장(전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신부)의 문건을 입수하게 됐죠. 이 분이 후에 말을 번복하기는 했지만 그 전에 유일하게 통화한 기자가 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심병철 기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둘러싼 비리가 단순히 개인 사제들의 잘못과 일탈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50만 명에 이르는 신자들과 130여 곳의 복지시설, 대구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한 10여개의 학교와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과 같은 의료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사실 대구경북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구경북에서 천주교는 단 한 번도 견제를 받지 않는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대구교구는 조환길 주교 비리 의혹 관련 보도를 금지해 달라며 < 대구MBC >를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었죠?”
“취재에 착수한지 1년만인 2017년 12월 드디어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내부문건을 확보했습니다. 문건작성자는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 총장신부였고 폭로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는데 대구가대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대구교구로 보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교구는 전 총장신부가 총장연임에 실패한데 불만을 품고 사실과 다른 문건을 작성했다며 2018년 2월 8일 대구지법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처음 재판부는 대구교구 측의 요청을 일부 받아들여 4월까지 보도를 유예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구체적인 비리 의혹이 담긴 문건을 확보한 언론사에게 일정기간 문건과 관련된 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구문화방송은 이의신청을 하고 두 달여 동안 법정공방을 벌였다. 마침내 2018년 4월 24일,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은 최종 기각됐다.
심병철 기자는 법정공방 과정에서 오히려 대구대교구 측 내부 문서를 확보할 수 있었고,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이튿날부터 조환길 대주교의 비리 의혹과 관련한 집중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교황대사를 이렇게 쉽게 만나게 될 줄이야
“지난 8월에는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수에레브 대주교를 직접 만나기도 하셨죠? 대사관에 함께 갔던 대구가톨릭대의료원 노조원들과는 별도로 교황대사님과 추가 인터뷰를 하셨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처음에 만났을 때 그 분이 교황대사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대사님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대사님을 보좌하는 신부님쯤 되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노조원들 머리에 안수를 하고 강복기도를 해주니 노조 대표들이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 ‘도대체 왜 울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분이 교황대사인 수에레브 대주교였고, 이후 제가 문건을 드리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지난 8월 21일, 대구가톨릭대의료원 노조는 주한교황청대사관을 방문했고 교황대사 알프레드 수에레브 대주교는 대사관 밖으로 나와 이들을 직접 맞이했다. 임금 인상, 주5일제 도입 등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파업에 돌입한지 28일째를 맞는 날이었다.
수에레브 교황대사는 파업에 참가한 550명이 쓴 손편지들을 직접 받아들고 이들의 이야기를 세심히 들었다. 이날 동행했던 심병철 기자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교황대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자세는 이전 교황대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열흘 후, 노조와 의료원 측은 2018년 임금 및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사회단체들은 “대구가톨릭대병원의 불명확한 회계규정과 대구가톨릭대, 선목학원 간에 무분별하게 오고 간 전입·전출금 문제는 도마 위 뜨거운 감자”라면서, 투명한 병원운영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바뀌면 대구가 바뀌고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을 하셨죠?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슈적인 정치 지형의 원표가 이 동네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기반에서는 특히나 매일신문과 주교의 눈치를 봅니다. 매일신문 기자들은 신부들에게 꼼짝도 못합니다. 노조위원장이 ‘공익과 회사이익이 부딪히면 난 회사이익을 따르겠다’고 대자보에 쓰는 동네입니다. 이런 곳에서 대주교가 개혁적인 인물로 바뀌면 신문사 사장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 바뀌는 겁니다. 서울에 있는 극우세력들의 뿌리가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인 < 매일신문 >을 비롯해 언론 및 출판기관도 10여 곳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팔공컨트리클럽과 같은 골프장까지 소유하고 있는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사업장은 대구에 250곳을 넘는다.
심병철 기자는 사람만 제대로 바뀌어 똑바로 일하면 이 엄청난 조직이 사회에 긍정적인 쪽으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와중에 내부자들의 격려가 힘을 보태
“2년 가까이 취재하고 보도가 나가는 동안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대구대교구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집중적인 보도가 나가자 천주교 신자들과 사제들로부터 보도내용에 공감한다는 격려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거듭나서 쇄신 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쏟아냈습니다.”
지난 9월 천주교개혁연대는 대구대교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천주교 사업장의 실태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심병철 기자를 초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심병철 기자는, 1995년 입사 후 이렇게 자신의 취재 내용을 토대로 한 토론회 자리에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런 내부정화의 움직임이 이어져 천주교회가 새롭게 거듭나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살아있는 권력이 된 교회를 상대로 그 비리의혹을 취재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취재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어떤 신자분께서 제게 ‘이건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분이 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고 생각보다 일이 더 커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일이 잘 풀려 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됐습니다. 그 신자분의 말처럼 누군가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심병철 기자는, 어느새 신자들의 언어인 ‘신앙의 신비’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심 기자는 천주교회가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며 그때보다 더 좋은 종교단체가 되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한다.
결론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약은 먹기에 쓰지 않나
“토론회에서도 끝까지 가겠다는 각오를 밝히셨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요?”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보도로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오래되고 잘못된 관행을 끊고 새롭게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하는 노력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자생활을 하면서 남길 수 있는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2월 19일 대구경북기자협회는 < 대구MBC >가 방송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검은 비리 의혹 집중 보도’를 올해의 방송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동안 현실에서는 대상으로서의 가치만큼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그저 한 종교단체의 일탈 정도로 여겨지는 것인지 < 대구MBC >의 특종과 집중보도를 함께 조명하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상도 받고 칭찬도 듣고 명예도 얻었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낙담하지 않겠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우리들이 사라지고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들만 사는 세상이 됐을 때 모두 제 기사를 진실로 여길 것 입니다.”
심병철 기자는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라도 드러날 진실 앞에서 기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으로 책임을 다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2019년, 이어질 심병철 기자의 활약에 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