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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의 어미를 만났다 -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 이규원 작가 인터뷰
  • 편집국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3-26 14:55:40
  • 수정 2019-03-26 16: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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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규원)


유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만나다!


성모님과 사도요한이 떡집을 하며 숨어 살고 있다. 사도 요한이 어느 날 떡배달을 하고 돌아오던 밤, 길에 쓰러진 노파를 업고 돌아온다. 아들을 잃고 무덤에 갔다 오던 길에 기진해서 쓰러졌다는 말에 성모님은 연민의 마음으로 노파를 돌본다. 같은 시기에 아들을 잃은 두 어머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데 알고 보니 노파는 유다의 어머니였다. 두 어머니는 상대가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의 어미’라는 생각에 대립하며 갈등의 폭풍 속으로 휩쓸린다. 



이번 사순기간부터 시작해서 2019년 한 해 동안 교회를 순회하는 성극공연이 있다.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의 극본을 쓰고 제작을 총괄하는 이규원 작가를 만나 성극에 담긴 내용과 제작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유다의 어머니인가


Q.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는 ‘유다의 어머니를 무대 위로 모시고 아들을 잃고 헤매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왜, ‘유다의 어머니’인가요? 성경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유다의 어머니에 집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저희 어머니가 아들을 잃고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때 저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는데 어머니의 방황이 많이 힘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자주 성체조배를 했습니다. 성체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고통과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자연스럽게 유다 어머니의 고통이 헤아려졌어요. 같은 시기 아들을 잃은 분인데 유다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했구나 하는 성찰을 하게 되었지요. 


어머니가 떠나시고 제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지인이신 소설가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한다며 초대해주셨고 그곳에서 3년간 성경공부를 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함께 공부하던 예술인들이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더라’는 말을 해주시면서 대본을 써주면 자신들이 연극을 올려보겠다고 해서 만들게 됐습니다. 2005년 첫 제작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2019년의 제작도 어떤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것 같이 제작하게 되었네요. 같이 작품을 만들자던 분들은 임지를 떠나고 작가인 제가 리롸이팅을 거쳐 제작까지 맡는, 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었군요.


신자로서 우리는 성모님의 아픔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만 같은 시기에 아들을 잃은 유다 어머니는 잘 떠올리지 않는다. 이규원 작가는 유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쩌면 이 분의 아픔이 더 깊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Q. 연극에서는 ‘여자사람 성모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상을 하게 합니다. 교회에서는 흔히 마리아로 상징되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왔는데요, 성극 안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나요?


- 요셉성인에 대해서 그분의 헌신을 강조하는데 성모님 역시 한 여자사람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로 순명하신 거잖아요. 아들 예수를 얻기 위해, 하느님의 강생을 위해서 말입니다. 잉태와 출산 이후의 과정 속에서 성모님이 혼자 삭혀야만 하는 감정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감정은 성경 속에선 다 묻혔지만요. 


그런 성모님이기에 떡집에 오게 된 낯선 노파가 유다 어머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성모님도 본질은 한 사람의 인간 여자잖아요. 비록 작품 속이지만 신앙심이 탁월하신 분이므로 유다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며 유다의 어머니까지 품어 안으시지만 갈등을 곱씹으며 기도하는 과정이 필요하셨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장면들을 넣었지요.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또 예수님 당신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니 유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성모님은, ‘내가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하는 감정도 있었을테고 본인이 죽을 수는 있지만 아들이 죽는 건 막고 싶은 게 어머니의 마음이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대사에 많이 넣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어머니의 동병상련,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특히 ‘유다의 어머니’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게 특장점이지요. 그래서 유다 어머니가 주인공격이지만 작품 속 거지여자의 비중도 큽니다. 성령이 거지여자로 분해서 아들을 잃은 두 어머니를 찾아와 위로를 하죠. 거지여자가 들고 다니는 등불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거지여자는 이 작품 속의 고통 받는, 욕망에 사로잡힌 하느님 백성을 이끌고 하느님나라로 가는 존재니까요. 내적으로 보면 거지여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서울대교구 홍보국의 지원을 받아 38곳의 성당과 대학의 채플, 교도소 등을 순회하며 성대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13년의 세월이 흐른 2018년, 특별히 평신도의 해를 맞아 평신도의 힘으로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이름으로> 성극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 교회 안에 안착했으면 하는 마음


Q. “보통의 힘없는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일을 하려는 건, 아프리카 수단에서 화성에 탐사선을 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극을 제작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힘든 일들을 계속 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2005년도에 홍보실장 허영엽 신부님이 지도신부님으로 함께 하셨었지요. 13년이 흐른 지금, 마침 지난해는 평신도의 해였고 평신도가 주축이 되어 교회 안에서 일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평신도들이 모여서 작품을 완성해보자고 뭉쳤지요. 이를테면 프로젝트 연극인 셈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평신도가 아무리 성서를 읽고 노력해도 부족하죠. 교회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부터가 어렵습니다. 누구나 다 예수를 알지만 설득력 있게 예수의 삶을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게다가 일반 평신도가 교회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일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리고 교회나 교회 밖이나 쏠림현상이 있어 명망이 없는 작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넘어서는 일도 난제죠. 작가와 작품은 서열이 불가능합니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고 기록할 가치를 지닌 것이니까요. 좀 더 모험도 감수하며 도전적으로 교회기관과 평신도가 문화콘텐츠 제작에 나서주면 풍요로워지겠지요. 결국은 ‘예수정신의 결여‘가 지금 교회의 가장 큰 우려이듯 문화콘텐츠의 제작도 그 연장선상에서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세상보다 더 혼탁한 게 교회겠지요. 죄인들의 집이니까요. 그럼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되새기는 집이 교회이므로 거기서 희망도 생기고 좌절도 그 지점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Q. 극본을 쓰는 일도 힘들었겠지만 제작하는 일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시나요?


- 2019년 제작은 든든한 분이 맡아주실 것으로 믿고 시작했는데 그분이 제작이 가능한 임지에서 전혀 다른 데로 갑자기 이동하면서 제작비 문제로 제작 불가능 상태에서 공회전을 했어요. 그러다 대학후배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 후배가 로펌에 있다 개인사무실을 내면서 하느님께 봉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저를 만나면서 연극을 통해 봉헌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도움을 받고 제가 보태면서 출발했습니다. 


보통 한 성당에 가서 공연을 하면 거의 10명에 가까운 배우와 스태프들이 움직이다보니 기본적인 인건비뿐 아니라 세트 운반, 식사비 등으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공연료를 받지 않고 가기가 어려워요. 한 본당에서 보면 적은 돈이 아니므로 공연료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저도 드라마작가로 시작했기 때문에 영상에 익숙한 사람인데 연극은 배우들과 직접 호흡을 같이 하면서 눈앞에서 드라마가 펼쳐지는 특별한 장르입니다. 영화와 TV드라마가 기계장치를 통해 전달되는 점에 비해 연극은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만남이므로 에너지의 단위가 다르죠. 한땀한땀 수를 놓은 전근대적인 문학장르가 연극인데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스테디셀러로 남는 레파토리로 만들고 싶어서 거친 여정을 생각을 차단하며 진행하고 있어요.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는 관객들이 판단하시겠지요.



Q. 공연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 공항동 성당에서 공연을 했는데 어떤 어머니가 신부님께 ‘이런 공연을 초청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더군요. 그분은 자신의 아들이 너무 속을 썩여서 ‘나가죽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들이 나가서 죽었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어요. 이 성극을 보면서, 성모님이 유다를 내 아들이라면서 품어 안는 모습을 보면서 ‘성모님은 유다도 품어 안으시는구나, 그렇다면 내 아들도 품어주시겠지 하는 안도감이 들더라고 하셨어요. 나는 내 아들을 못 품어 안았지만 성모님은 내 아들까지 품어주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조금 평안해지셨다고 하셨어요. 그런 고백이 작가로서는 보람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


▲ 일원동 성당에서, 이규원 작가 ⓒ 문미정


Q.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계속하시는데, 작가님께 ‘글쓰기’는 어떤 의미입니까?


- 예전에 강릉 초당 허균 생가에 갔어요. 허균 가족이 전부 문필가들이고 많은 문집들을 남기셨는데 ‘글월 문(文)’에 대한 해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글월 문(文)의 어원은 자취, 흔적, 물결, 무늬 같은 것이라고 해요. 허 씨 집안은 글월 문(文)을 ‘하늘로 가는 길을 밝히는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이분들은 글을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문집을 남기셨구나 싶었습니다. 허균도 그렇고 허난설헌도 그렇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인데 현실의 삶은 힘들었잖아요. 저한테는 이분들의 글월 문(文) 해석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은 제게 있어 거의 동일한 파장을 갖고 있습니다.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는 지난 2018년 12월 22일 잠원동 성당에서 어렵사리 첫 공연을 올렸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교회 안에 문화콘텐츠가 없다 하더라도 신자들은 이미 문화공연을 보는 눈이 높아졌다. 이규원 작가는 ‘결과가 최고는 아닐 수 있지만 최고를 향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팀을 해체하고 새 팀을 결성했다. 그렇게 서울 일원동 성당에서 다시 ‘첫 공연’을 하게 됐다. 



Q.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 첫 공연이 3월 29일 저녁 8시 일원동 성당에서 있습니다. 누구든 가서 볼 수 있다고 소개하셨는데 혹시, 망설이고 있는 관객들을 위해 인상적인 장면 하나만 미리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 유다가 어느 날 성 밖에 나갔다가 어미소와 송아지가 나란히 논길을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가 멀어지면 어미소가 ‘음메!?’하고 부르고 송아지가 ‘음메!?’ 하며 뛰어오는 게 참 부러웠다는 말을 요한에게 했다는 설정을 통해 요한이 이런 대사를 유다의 어머니에게 토해냅니다. 아들을 잃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돈도 잃고 허탈한 상태로 유다 어머니가 ‘유다의 나무’ 아래에서 유다를 부릅니다. 소처럼 ‘음메!? 음메!?’ 하면서요.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서 ‘아들아!? 아들아!?’하고 부르는 게 유다모와 삼각을 이루며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이 극의 절정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농촌에서 성장했는데 소를 직접 키웠어요. 소가 새끼를 낳고 일정 시기가 되면 새끼를 내다팔아요. 그럼 그날부터 소가 ‘음메에에에?’ 하면서 송아지를 찾으며 며칠을 울어요. 거친 짐승의 소리를 듣다 한밤중 외양간에 가서 가만히 소의 머리를 만져주면 소는 저의 이마를 커다란 혀로 핥곤 했지요. 그때의 교감이 이 장면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작용했지요.


연산군이 폐비 윤씨를 그리워하는 일화도 곁들여지면서, 이 작품에서 유다 어머니를 엘리트주의에 경제중심적인 어머니상으로 만들어갔어요. 예수님은 엘리트주의와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셨잖아요. 예수와 유다의 세계관의 차이를 민인중심주의와 엘리트주의로 정리해봤어요. 엘리트주의는 분리하고 차별하는 사유죠. 분류가 좀 거칠기는 하죠. 현실 속에서 보면 엘리트주의가 해내는 일도 많죠,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긴 안목으로 보면 엘리트주의는 폐해가 너무 큽니다. 견제가 필요하죠. 어쩌면 전근대적인 사유패턴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분제사회의 또 다른 변형이 엘리트주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회계를 맡을 정도로 예수님 제자들 중에서는 엘리트였죠. 나머지 제자들은 거의가 고기 잡는 어부출신이었으니까요. 유다는 무식한 제자그룹을 무시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말이 통하는(?) 유다와 예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세상을 구원하는데서 예수님의 방식과 유다의 길이 엘리트주의와 민중중심주의로 나뉘어지면서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켰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유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처형으로 몰아가면 예수님이 전능함을 드러내 로마제국을 물리치는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는 설정 속에서 유다가 배반을 했다고 추정하는데, 글쎄요, 무슨 상상을 못 하겠어요. 어떻든 유다는 욕망의 사람이지 사랑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을 향한 시선


▲ 성극 <어머니의 이름으로>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규원)


Q. 성극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 조직, 모임, 개인 속에서 누군가는 외면당하고 배제당합니다. 우리는 부담스러운 이들을 멀리하며 자신의 삶이 부서지는 걸 보호하며 가는데 긴 시간이 흘러서 돌아보면 배제한 만큼 삶이 협소해지고 왜곡되어 있는 걸 느낍니다. 거칠게 말해서 이천 년 교회사가 ‘유다 어머니’를 외면해 온 셈이네요. 결과적으로는. 


공연을 하고 간 성당에서는 며칠간 ‘유다의 어머니’를 얘기하면서 경직된 사유에 어떤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유다이즘(judaism) 속에서 메시아상은 다윗이나 모세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런데 하느님은 예수님 활동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잖아요. 바리사이 나환자 시몬이 같이 먹기를 청하자 선뜻 그 집에 가서 먹고 마시는 예수의 모습은 다윗이나 모세의 이미지와 다른 메시아상이고 궁극적인 구원은 그런 지평에서 이루어지는 일치잖아요.


제가 ‘강완숙 골롬바’를 주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데, 강완숙 골롬바는 서녀(庶女)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대표적인 여성 순교자로 ‘양반가 아씨’ 이미지인데 사실 그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서녀였어요.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는 양반가 아씨 이미지가 고착된 것은 유감이죠. 강완숙은 예산지방 지체가 높지 않은 양반의 서녀로서 조선시대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지요. 강완숙 골롬바가 여성 회장을 맡았던 여성공동체가 하나 있었어요. 수녀원의 효시 같은 거죠. 그 리더가 ‘윤점혜 아가다‘인데 그분도 여주 이씨가의 서녀였어요. 또 강완숙 골롬바 집을 드나들며 함께 일했던 ‘한신애 아가다’ 순교 복녀도 보령지방의 서녀였지요. 


세 서녀(庶女)가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 초기 여성리더였습니다. 모두 참수당하고 지금 복녀로 시복되었지요. 남인들이 권력에서 실추되면서 서학을 공부하고 천주학을 이 땅에 알린 것처럼, 여성 편에서 보면 세 명의 서녀들이 여성들에게 (천주학을) 많이 퍼트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남성 남인들만 크게 조명이 됐지, 여성 세 서녀들은 조명이 안됐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세 서녀들한테 ‘천주가 너의 아버지다’라는 교리문답이 얼마나 천둥치듯 울렸을까요. 이분들이 천주학을 따르다가 참수를 당하기까지 ‘내가 살 자리도 아버지 앞이요, 죽을 자리도 아버지 앞이다’라는 지점들이 작용했을 거 같습니다. 


‘서녀’, 이 사람들이 불평등한 사회에 평등의 가치를 들여왔어요. 여성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경계에 있는 이 서녀들이 여성들에게 하느님을 소개하는 입장이 되었잖아요. 중심에 서 있으면 그 시대 안에서 삶이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경계에 선 사람들은 시대를 넘어서는 역할로 새 시대를 이끌어내더군요. 우리는 배제한 만큼 오류를 범하게 되더군요. 조선정부는 수많은 서자 서녀들을 양산해 놓고 그들을 외면했지요. 그들은 조선정부를 부수는 쐐깃돌이 됩니다. ‘유다의 어머니’를 배제한 시간은 넉넉한, 용서와 사랑의 시간은 아니었죠. 


이규원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세월 속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음이 굳건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이 성극 공연이 ‘주인공 아닌 사람을 향한 시선’, ‘소외당하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넓힐 수 있다면 작가로서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Q.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강완숙 골롬바’를 주제로 소설을 하나 쓰고 있고 산문집도 하나 나옵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는 처음 시작하면서 ‘100회 공연’을 기도했는데 좀 평탄하게 안정된 스테디셀러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2005년 교도소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모두 집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울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눈물 속에서 어떤 회복을 느꼈습니다.


일원동성당 신부님이 문화콘텐츠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덕분에 일원동성당에서 첫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이후 공연이 자리를 잡으면 돌아가서 책 작업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는 3월 29일 저녁 8시 첫 공연이 있을 서울 일원동성당에서 만나 14년에 걸친 성극제작 이야기와 이규원 작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규원 작가는 14년 전 처음 공연을 올릴 때도 생각지 못한 계기가 일을 성사시켰다며 이번에도 우연치 않게 제작이 시작되었고 큰 어려움들을 넘으며 여기까지 왔으므로 이제 하느님이 든든한 협조자들을 보내주실 것을 믿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교회 안에서조차 엑스트라가 있고 주인공이 있는 현실에서 이 작품을 통해 주인공이 아닌 사람, 경계에 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두터워지길 바란다. 작가의 바램대로 <어머니의 이름으로> 작품이 스테디셀러로 나아가며 여기저기서 ‘유다의 어머니’도 하느님의 딸임을 생각하며 편협한 신앙생활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 교회의 문화콘텐츠는 신자들을 섭리의 크고 넓은 바다로 이끌어주는, 삶의 결 속에서 드리는 생생한 미사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 이규원 작가는 공연 포스터에 들어간 그림은 최인호 작가의 저서 『인생』에 실린 삽화라고 소개했다.


공연 관련 문의 : 작가 이규원 010 – 4007 - 3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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