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가 3,1-6)
요한에 대한 루가의 아주 간단한 언급에 우리가 놀랄 필요는 없다. 공동성서의 판관기에서도 예언자, 판관, 왕에 대한 소개는 길지 않았다. 유다민족은 유배 시대부터 자신의 역사를 이민족 통치 연도에 비추어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예언서와 묵시록 문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루가도 그렇다. 슬픈 일이다.
루가는 요한과 예수의 등장 시기에 정치 상황을 소개한다. 이민족 로마군대가 이스라엘을 통치한다는 것이다. 요한과 예수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예수는 식민지 백성이었고 사형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잘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것 같다. 예수의 역사는 모르는데 예수의 말씀만 줄줄이 외우고 인용하고 해설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루가는 예수의 등장을 마르코 1,1-8과 비슷하게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연결하고 있다. 특히 공동성서를 인용하여 예수의 등장을 소개한다. 예수를 공동성서와, 즉 유다 민족과 연결하려는 루가의 의도 때문이다.
오늘 단락에서 여섯 번이나 시대를 언급한 것은 예수를 세계사적 인물로 부각시키려는 루가의 배려 덕분이다. 요한의 등장에 대한 루가의 자세한 소개는 요한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요새 말로 말하면, 요한은 인터넷 검색 순위에서 앞자리를 차지한 인물이겠다.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14-37 재위) 후임자다. 1절에서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시간 표현이다.
그러나 이 년도는 티베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함께 통치를 시작하던 공통년(서기) 12년을 가리키는지, 로마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선출된 14년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다. 루가가 어느 달력을 썼고, 년도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본시오 빌라도는 공통년 26년부터, 아마 공통년 19년부터, 36년까지 유다를 통치하던 로마의 6대 총독hegemoneuo 였다. 로마는 공통년 6년부터 총독을 임명하여 유다 지방을 직접 통치하였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공통년 이전 4년부터 공통년 39년까지 갈릴래아와 페레아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였다.
그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리포스는 겐네사렛 호수 동쪽과 북동쪽 지역을 부친의 죽음 이후부터 공통년 34년까지 다스리던 영주였다. 리사니아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2절에서 요한은 예언자가 등장하는 공동성서의 장면에 따라 소개되었다.(예레미아 1,4; 호세아 1,1) 요한은 세례자 이전에 예언자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은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나스와 카야파 두 사람이 대사제로 있었다는 표현은, 우리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한나스는 공통년 6년에서 15년까지 대사제였다. 그의 사위 카아파는 18년에서 36/37년까지 대사제였다. 루가는 2절에서 대사제를 가리키는 단수명사를 쓰고 있는데, 많은 번역에서 이 사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나스는 대사제로(사도행전 4,6; 요한 18,12-24; 요한 11,49는 다르다) 나오지만, 가야파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명하는 여러 학자들의 시도가 있었지만, 설득력이 적다.
2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내렸다고 소개되었다. 공동성서(구약)에서 하느님이 예언자들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표현들과(사무엘하 7,4; 열왕기상 12,22) 조금 다르다.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들에게는 pros‘에게’ 주어졌는데, 요한에게는 epi‘위에’ 내렸다. 예언자들보다 요한이 좀 더 하느님에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일까. 예언자들보다 요한을 강조하는 설교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요한을 3절에서 루가는 요한이 한 군데에 머물지 않고 요르단강 양쪽 지역을 돌아다닌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 말씀을 받았지만, 말씀을 선포하러 요르단강 양쪽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3절 세례baptisma는 로마서 6,4, 마르코 1,4에서 볼 수 있지만, 신약성서 외 문헌에서 찾을 수 없다. 요한이 직접 세례를 실행한 것, 그리고 그 세례는 한번만 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6절은 마르코와 마태에는 없다. 예수의 복음선포가 온 세상을 향한다는 루가복음 특유의 전망이 담긴 구절이다. 6절에서 ‘보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참여한다는 뜻을 함께 포함하는 말이다. 미사를 본다라는 말이 미사에 참여한다는 뜻을 포함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한다.
사제의 미사 집전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한다. 사제가 집행하고 우리는 물끄러미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극장에 가서 관중석에 앉아 연주곡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연주자 자리에 앉아 같이 연주하는 것이다.
왜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등장 이전에 세례자 요한 이야기를 소개하였을까. 예수를 예비하는 인물로 요한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다. 예수와의 관계없이 요한 자체가 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요한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요한을 강조할수록 예수에게 피해가 될까. 그렇지 않다. 요한을 예수의 비서 정도로 여기는 그리스도교의 관행에 문제가 있다.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요, 스승이다. 스승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던가. 스승이 있어서 부담스러운 제자도 있는가.
오늘 시각으로 보면, 지명이나 연대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 단락이다. 루가는 왜 상세한 언급을 했을까. 세례자 요한과 예수를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인류 역사 안에 집어넣으려는 뜻이 루가에게 있었다.
루가의 생각을 우리가 찬성한다면, 우리도 예언자 요한과 예수를 그리스도교 역사 뿐 아니라 인류 역사라는 거대한 전망 안에서 보아야 하겠다. 그리스도교가 예수에 대한 독점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 예수는 그리스도교 밖에도 있고 그리스도교를 넘어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