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말씀’과 ‘성사’ 그리고 ‘사도직’의 초점은 모두 사랑에 있다 - [이신부의 세·빛] 그리스도 현존의 세 표지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9-29 16:46:49
  • 수정 2020-09-29 16:47:52
기사수정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0.09.30.) : 욥 9,1-12.14-16; 루카 13,47-52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4세기에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예로니모는 일찍부터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를 공부하여 사제가 된 후 다마소 교황의 지시에 따라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오랜 기간 동안 수행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한 후에는 성경을 풀이한 주해서를 비롯하여 성경을 신앙의 이치로 체계화시킨 신학 저술까지 남김으로써 암브로시오, 그레고리오, 아우구스티노와 더불어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예로니모 덕분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모르는 로마 제국 시대의 신자들이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 성경을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전통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늘날 우리 글로 번역된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또 한 세대마다 달라진 시대의 언어로 새로이 번역해 오고 있는 전통도 예로니모가 개척한 성경 번역 작업에 기원합니다. 그 덕분에 성령의 이끄심으로 다가오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우리는 막연한 신앙 감각에 기대서만이 아니라 정확하고 구체적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선에 복음이 오묘한 섭리로 전해진 것도 한역서학서들을 통한 말씀이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묵상해 본 내용도 하느님께서 조선 백성에게 선포하신 말씀과 이를 증거한 선각자들과 순교자들이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전해주었는지 은총의 역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순교자 성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기에,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말씀의 과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현존하시는 양식에는 세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성사 그리고 사도직이며, 이 모두가 사랑으로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방향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한 가지 양식에 치우치거나 또는 어느 한 가지 양식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반쪽짜리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셈입니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고 이들이 양성한 김대건과 최양업이 방인사제로 활약하기 전까지 조선 천주교회는 말씀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착화된 천주가사로 쓰인 천주공경가와 사향가, 그리고 대중적인 글로 쓰인 주교요지가 교우촌의 신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성경책이 없었어도, 그들은 그 말씀만으로도 신앙의 충만을 느낄 수 있었고 박해가 닥치자 기꺼이 치명할 수 있는 용기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선교사제들과 김대건, 최양업 두 방인사제의 활약으로 말씀만으로 살아가던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은 성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그것도 주변의 이목을 피해서 밤중이나 새벽에 몰래 드리는 미사요 고해성사였지만 교우촌 신자들은 한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신자들에게 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주기 위해서 사제들은 밤중 산길을 걸어서 순방하고 다녔습니다. 당시 교회법 공심재 규정이 하루 전까지 공복을 지키도록 되어 있었으니, 신부나 신자들 모두 미사 전 하루 동안 굶으면서 기다렸던 시절입니다. 그 배고픔과 고달픔은 참 컸을 텐데도 성체를 영하는 기쁨으로 참아 견디었습니다. 


남은 것은 사도직 활동인데, 박해시대인지라 정상적인 사도직은 꿈도 꿀 수가 없었으므로, 열성적인 신자들은 그저 말씀이 적힌 교회 서적만을 열심히 암송했으며, 글을 아는 신자들은 필사를 해서 외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글을 모르는 신자들은 천주가사를 암송해서 외교인들에게 들려주며 전교를 했습니다. 교우촌 내부와 주변에서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는 일은 기본적인 사도직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한 교우들 중에는 이 정도의 사도직에 만족하지 못하여 동정 생활을 통해 완덕을 지향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박해시대라서 수도원 설립이 불가능했던 그 당시 조선의 풍습으로는 혼기가 찬 남녀 젊은이들은 반드시 혼인을 해야 했던 사정 속에서, 동정 부부라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삶의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주문모 신부가 주선했던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부부말고도, 유방제 신부가 주선한 권천례 데레사와 조숙 베드로도 있는데 이들은 무려 15년 동안 동정부부로 살았습니다. 


동정부부로 사는 동안 이들은 남매처럼 지내면서 기도와 복음 전파, 고신 극기 행위를 일상적으로 실천하며 외교인들을 권면하고 고아들을 돌보아 주면서, 북경을 오가며 성직자 영입에 힘쓰던 정하상 바오로를 도와주었습니다. 필요한 뒷바라지는 모두 그들 부부의 몫이었고, 정 바오로는 교회 일을 위해 떠나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양에 있던 그들 부부의 집에 머무르면서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당시 고 바르바라라는 과부가 그 집에 살면서 그들 부부를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동정부부의 사도직 활동이었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지낼 때마다, 말씀을 받들고 성사를 모시며, 게다가 동정부부로 살면서 사도직 활동까지 해 낸 이러한 신앙 선조들을 대하면서, 이분들이 믿고 살아온 역사적 사실들이 마치 죽비로 우리 등짝을 내려치는 듯하고, 회초리처럼 우리 종아리를 후려치는 듯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747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