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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듣고 눈먼 이들도 보게 되리라
  • 이기우
  • 등록 2020-12-04 16: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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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금요일 (2020.12.04.) : 이사 29,17-24; 마태 9,27-31





대림시기에는 이사야 예언서를 집중적으로 읽습니다. 이사야는 여러 예언자들 가운데에서도 메시아가 오시면 펼쳐질 희망의 미래를 마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내다본 예언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이사야는 그 당시 유다 왕국의 실정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희망찬 미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던 레바논 산맥이 사람들이 과수를 재배할 수 있는 과수원으로 변할 것이라든가, 귀먹어서 듣지도 못하던 이들이 책에 적힌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든가, 눈먼 이들도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레바논의 변화는 벌목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귀먹었던 이들이 단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게 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책에 적힌 말 즉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말을 듣게 된다는 변화는 민도의 향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눈먼 이들이  눈을 떠서 벗어날 암흑과 어둠도 물리적인 뜻이 아니라 정신적인 뜻으로 알아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가 보게 되는 빛도 자연의 빛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이들도 주님 안에서 기쁨을 더하고, 가난한 이들은 그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된다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정의를 짓밟던 포악한 자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빈정대던 자도 사라질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마저도 모조리 잘려 나갈 것이라고 예언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포악하고 빈정대던 자들은 법정에서 소송으로 서로의 권리를 다툴 때 법률지식과 사회적 지위를 악용하여 무식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죄를 덮어씌우거나, 무죄한 이들을 까닭 없이 낙인찍어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내다보는 바, 메시아가 오시면 이룩된 변화는 사람들의 변화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당연히 겨냥하는 것입니다. 


법과 정의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해 주지 못하고, 강자와 부자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고 재산을 늘려주며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무기로 전락한 세상은 온갖 화려한 문물로 포장하여 그 사회가 문명사회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야만적인 세상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가치인 것이지, 인간 사회에서 사용되는 물질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 둘의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이사야의 예언을 실현한 이 행위 역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치유 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를 보지 못하던 눈먼 자들의 눈도 뜨여야 함을 촉구하신 행동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던 이를 눈뜨게 고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도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그분은 도무지 당신이 선포하시던 하느님의 진리를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눈뜬 소경’으로 암시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는 세상 전체에 나타납니다. 종교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표상들은, 오늘 이사야의 예언이 그러하듯이, 세상 사람들이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세상의 문제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통찰하게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보게 해 주는 성사적 기능이 있습니다. 


이제 이 대림시기부터 시작된 새로운 희년 역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경축하고, 그분의 삶과 신앙을 본받아 우리들의 신앙을 쇄신시키며, 덧붙여 함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지향이 우선적으로 현실화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쇄신된 신앙으로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의 빛이 비추어지지 못해서 어두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눈을 떠야 할 것은 시각장애인들만이 아니라 희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입니다. 


성경의 희년사상이 원래 생겨났던 삶의 자리는 토지의 공정한 분배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50년이 될 때마다 애초에 지파별로 토지를 분배했던 그 질서에로 회복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 희년 규정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토지 문제 역시 그 불평등한 소유구조 때문에 매우 심각합니다. 정책과 법률이 토지의 불평등한 소유구조를 개선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이 희년에 우리의 종교적 관심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토지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우선시한다면 우리는 희년을 더 성서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바라는 바 종교적 관심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곁들여 얻어질 것”(마태 6,33) 이라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는 현실을 우리도 보고, 하느님께서 듣고 계신 목소리를 우리도 듣고, 하느님께서 움직이고 계시는 자리로 우리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의 귀도 열어주시고, 우리의 눈도 뜨게 해 주시며, 우리의 다리와 발도 활기차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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