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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기 위한 용기, 영합하지 않을 자유 - [이신부의 세빛]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1-15 15:07:27
  • 수정 2021-01-15 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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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금요일(2021.1.15.) : 히브 4,1-5.11; 마르 2,1-12 



▲ © Serge Ducasse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의 삶에 쏠려 있기 마련입니다. 약자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강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현세적인 삶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내세에 열려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양상으로 자신의 삶에 쏟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당신에게로 끌어당기시고자 메시아를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관심은 내세에 열려진 현세적 관심을 통하여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세상에 내려진 하느님의 말씀을 귀 여겨 들은 이들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생존이나 기득권을 위한 경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은 평안한 안식처로 인도하지만 경쟁은 생지옥의 담벼락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갑니다.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힘,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지던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나타나시자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그 말씀을 소개하시는 한편,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그 권능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실제 아픈 이들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도 해방시키시는 기적들도 일으키셨습니다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복음이 신적인 권위와 사회적 신뢰를 받게 되자 그 소문이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퍼져나가게 된 것이 또한 기적과도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던 랍비들은 있었지만 그분처럼 말씀의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파였던 이들은 속이 상했지만 별수 없이 그분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희한한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중풍 병자를 도와주려던 사람들이 지붕을 뜯고 그를 그분 앞까지 내려 보낸 일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를 보셨습니다. 우선은 그 중풍 병자를 고쳐주려던 이웃 사람들의 정성이고, 그 다음은 중풍으로 인해 그가 겪었을 고생스러움이었으며, 결정적으로는 그가 왜 이런 고약한 질병에 걸렸는지에 대한 사회적이고 영적인 진단이었습니다. 

 

중풍이란 사지가 마비되어 마음껏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중풍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못지않게 그가 중풍에 걸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예수님께서 새로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셔야 했을 만큼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의 통로가 꽉 막혀 있었습니다. 


신체적인 질병은 많은 경우 정신적이고 영적인 원인에서 생겨납니다. 종교적으로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면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면역력이 급격히 약화됩니다. 그러다 보면 가장 약해진 신체부위로 병균이 침투하게 되는 경로입니다. 면역력을 살리자면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나병 환자를 고쳐주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현대에도 나병을 치료하는 의약이 개발되고 치료법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나병균의 활동을 중지시킬 수 있을 뿐이지 나병 탓으로 일그러진 흉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흉터까지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야만 그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풍 병자도 근본적으로 도와주자면, 중풍 이전에 중풍을 앓게 된 근본 원인을 치료해 주어야 했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그가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를 소외시킨 탓으로 죄인으로 낙인찍혔고 그러자 실제로도 죄인으로 살아가게 되어 버려서 그랬을 개연성이 큽니다. 사람은 성인으로 대하면 성인처럼 살고, 죄인으로 대하면 죄인으로 삽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중풍을 고쳐주시기에 앞서서 죄를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비상한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바리사이들의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죄선언을 하시자, 당장 신성모독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으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판받을 각오를 하시고 그 중풍 병자를 돕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도록 도우시기 위해서 그리하셨습니다. 이로부터 그분과 바리사이파는 적대적인 대립관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 십자가형을 언도받게 된 빌미에도 신성모독 혐의가 들어가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칫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시면서 그 중풍 병자를 도와주신 셈입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이렇듯이, 때로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이들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거나, 그들의 편을 들어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죄인처럼 낙인찍힌 이들을 돕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선포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을 들 용기 그리고 여론으로부터 갈채를 받는 대신에 비난 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 그런 일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시려는 하느님의 관심을 반영하자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누려야 할 사도직의 자유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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