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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비추어 주어야 할 빛은 무엇이겠습니까? - [이신부의 세·빛] 세워지는 역사, 스러지는 역사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3-05 18:23:46
  • 수정 2021-03-05 18: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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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금요일(2021.3.5.) : 창세 37,3-28; 마태 21,33-46



▲ ⓒ 문미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담아서 포도밭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함으로써 그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며 바야흐로 새로운 무리가 하느님 백성이 되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야곱이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던 라헬이 낳아준 첫 아들이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고, 이 지독한 편애 때문에 형들의 질투와 시기를 불러 일으켜서 이집트로 팔려가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끝내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집트에서도 가장 비옥한 고센 땅에 가족 모두를 정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4백 년을 사는 동안 야곱 집안은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다 전체 2백 만이 넘는 큰 무리로 불어났습니다. 


그렇게 되자 요셉의 사적(史蹟)을 모르는 이집트 파라오가 야곱의 후손들을 노예로 삼고 혹독한 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불행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모세를 불러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탈출시키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히브리들로 불리다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리게 되면서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하지만 40년 간 시나이 광야에서 난민으로 살기도 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250년 간이나 판관들의 인도 아래 불안한 이주민으로 살기도 하다가,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이 임금이던 시절에 간신히 통일 왕국을 세우는가 싶더니,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쪼개져 우상숭배에 물들어 살다가 다시 바빌론으로 끌려가야 했고, 70년 유배생활이 끝나고 돌아와서도 그리스 세력과 로마 세력의 총칼 아래 자기 땅에서 종살이하는 기구한 세월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그러했듯이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도 새옹지마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민족사에서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절에 찾아오신 메시아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기운차게 선포하셨던 것인데,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오늘 포도밭의 비유가 나왔습니다. 일어서는가 싶으면 엎어지고, 세워지는가 싶으면 무너지는 슬픈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사도로 양성하시며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옛날 갈대 바다에서는 바닷물을 말리시어 이집트 군대를 막아주셨고, 신 광야에서는 만나를 내려주셨으며,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는 돌판에 새긴 십계명을 내려주시는 등 이스라엘을 위해 하느님께서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면서(시편 105,5),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사도로 양성하여 남겨두시고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후에 부활하시어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셨으며, 사도들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자비를 기억하며(요한 3,16)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새 하느님 백성으로 모인 교회도 지난 2천 년 동안 일어서고 스러지기를 되풀이하는 역사를 겪었으며, 이 땅에 들어온 교회 역시 백 년 동안이나 박해를 받으며 시작했지만 박해가 종식된 후에는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민족의 고난 속에서 겨레와 운명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어서, 이제 다시 겨레를 부추겨 함께 일어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삼일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3·1 독립운동 이후 우리의 100년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해 온. 100년입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정의와 인도주의를 향해 전진해 온 100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세계는 우리의 발걸음을 주목하고 있다.”고 지난 현대사 백 년을 회고했습니다. 


저는 이 기념사 중에서, “우리 민족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향해 전진해 왔고 개척하고 있으며 그 성취에 대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관점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한 민족 5천 년 역사상 가장 힘들고 어두운 백 년을 겪고 나서 회복과 도약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는 이즈음, 우리 겨레에게 우리. 교회가 비추어 주어야 할 빛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최고선 가치들이 우리 민족의 의식과 삶과 문화 속에 뿌리내리도록 솔선수범하며 확고하게 자리잡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리잡았던 팔레스티나 땅도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강대국들이 서로 부딪치는 길목이어서 그 고난이 더 심하고 길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 민족이 자리잡은 이 한반도 땅도 지정학적인 요충지여서 이 땅을 탐내는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휘둘려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우리나라에 힘이 없고 약했을 때 겪어야 했던 것일 뿐, 지금은 아닙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백 년 전과 다릅니다. 우리를 둘러싼 4대 강대국들의 속셈은 이미 다 드러나 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어느 한 나라도 우리 한 민족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고비인 분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 의사가 없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카드를 다 만족시켜서는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뜻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이 길에 이 땅의 하느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들이 앞장서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구경꾼처럼 수동적으로 끌려와야 했던 역사의 판을 바꾸는 겁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맞갖은 주도권을 지니고 상황을 끌고 나갈 수 있도록 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러졌던 우리 민족이 역사의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때, 민족의 미래와 운명을 다시 일으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면 이스라엘 민족이 보여 준 역사의 시행착오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 메시아를 알아보는 일과 최고선의 가치들을 살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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