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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대체 누가 테러범들에게 무기를 팔았나”
  • 끌로셰
  • 등록 2021-03-12 19: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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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 누가 테러범들에게 무기를 팔았나’를 자문해보았다. 누가 여기저기서, 학살을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를 팔고 있는가? 누가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순방에는 군사적인 위험이 매우 컸다. 올해 1월에는 IS 잔존세력들의 자살폭탄테러로 바그다드에서 32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게다가 주변국인 이란과 미국 사이에 계속되는 갈등으로 지난해 이란 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방에서 드론으로 암살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순방 불과 이틀 전인 3월 3일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주변으로 미사일 폭격이 발생하여 민간인 사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라크는 여전히 전쟁과 분쟁의 장소였고, 생명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크인들의 곁으로 다가가는 ‘종군 교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IS 수도였던 이라크 북부 ‘모술’ 방문, “형제애는 동족상잔보다 강하며, 희망은 죽음보다 강하고, 평화는 전쟁보다 강하다”


순방 마지막 날인 7일, 첫 번째 일정은 IS의 ‘수도’였던 이라크 북부의 모술방문이었다. 이곳에는 IS가 자신들의 전진기지로 사용하며 망가트린 성당과 성물들의 모습이 생생히 남아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야지디족과 마찬가지로 소수종교 공동체로서 극단주의 세력에 의해 약탈과 인신매매의 피해를 입고, 죽지 않기 위해서 자기 땅을 버리고 떠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오전 10시 IS에 의해 파괴된 4개의 교회(시리아 가톨릭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시리아 정교회, 칼데아 가톨릭교회)에 둘러 쌓인 호쉬 알-비에아 광장을 찾아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 (사진출처=Vatican Media)


이날 전쟁 피해자를 위한 기도회에는 에마누엘 라이드 칼로(Emmanuel Raid Adel Kallo) 신부가 IS의 끔찍한 테러에도 불구하고 모술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화합해왔는가를 강조했다.


라이드 신부는 “평화로운 공존과 모술에서의 공존은 슬로건이 아니라 내가 이 고통 받는 도시에서 무슬림 형제들에게서 경험한 뿌리 깊은 사랑과 평화의 태도”라고 말했다. 


라이드 신부는 2018년 IS 격퇴 이후 모술에 돌아왔을 때 “무슬림 형제들이 큰 존중과 사랑으로 환영해주었다. 모술의 이맘들이 가톨릭교회를 위한 염원을 전하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심지어 이러한 복원 과정에서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고, 동상을 조각하고, 복음 구절을 새겨넣은 화가는 모술 출신의 무슬림이었다”고 증언했다.


라이드 신부는 모술에서 처음으로 예언자 마호메트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를 받았고, 그 행사가 열렸던 ‘라샨’ 모스크는 “IS가 2014년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겠다는 문서를 공표했던 곳”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교를 존중해준 무슬림들의 호의에 감사를 전했다.


라이드 신부에 따르면 모술에는 2014년 500개의 그리스도교 가정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외국으로 이민을 갔고, 현재 돌아온 가구 수는 70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 (사진출처=Vatican Media)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응답하여 “문명의 요람인 이 나라가 고대의 종교 유적이 파괴되고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테러로 인해 무참히 무력화되고 강제로 이주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비인간적인 풍랑을 맞은 것이 너무도 잔혹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하지만 오늘 우리는 형제애가 동족상잔보다 강하며, 희망은 죽음보다 강하고, 평화는 전쟁보다 강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며 “이러한 신념의 목소리는 증오와 폭력의 목소리보다 더욱 장대히 울려퍼진다. 이 신념은 파괴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들로 인해 흘린 피에 절대 억눌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 (사진출처=Vatican Media)


교황은 기도가 끝나고 IS에 의해 파괴된 알 타헤라(Al-Tahera) 시리아 가톨릭교회의 참상을 직접 마주했다. 알 타헤라 성당은 UAE의 지원으로 유네스코(UNESCO)가 진행하고 있는 문화유산복원사업 ‘모술의 정신을 되살리다’(Revive the Spirit of Mosul)의 일환으로 복원 과정에 있다. 교황은 처참히 무너진 성당 앞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오래 머물면서 기도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니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를 죽일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평화의 하느님이시니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니 우리는 우리 형제를 증오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당신의 사랑, 평화, 화해의 계획을 지체 없이 실천해야만 이 도시와 나라가 재건되고 고통으로 찢겨진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음을 저희가 깨닫게 하소서. 저희가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사랑의 계획을 추구하는데 시간을 쏟게 하소서” (전쟁 희생자를 위한 기도 중)


2014년 IS 점령으로 황폐된 도시 카라코쉬 방문, “테러와 종교의 도구화에 ‘아니오’라고 함께 말하자”


▲ (사진출처=Vatican Media)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 일정으로 모술과 불과 30km 떨어진 도시인 카라코쉬로 향했다. 이곳 주민들은 대다수가 시리아 가톨릭교회 또는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로 2014년 IS 점령 이전까지는 5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이들이 일시에 피난을 떠났다. 현재는 그 절반 가량인 2만 5천여 명이 도시로 돌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시리아 가톨릭 대성당에서 카라코쉬 주민들을 만났다. 이 대성당에 있던 성상들은 목이 잘려 훼손되었고, 성전과 의자, 전례 용품 등의 물품들은 모두 불에 탔으며 제대와 십자가가 있는 내진(Choir) 부분은 사격연습에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성당은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 (사진출처=Vatican Media)


이처럼 절대 다수가 그리스도교 신자로 이루어진 카라코쉬의 주민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이 길거리로 몰려든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코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리아 가톨릭교회 총대주교 유세프 3세 유난(Youssef III Younan) 대주교와 더불어 카라코쉬에서 IS의 공습으로 자녀를 잃은 도하 사바 압달라(Doha Sabah Abdallah) 씨와 이곳에서 니네베 평원으로 피난행렬에 함께 했던 아마르 야코(Ammar Yako) 신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 도하 사바 압달라 씨를 위로하는 교황(사진출처=Vatican Media)


교황은 카라코쉬 주민들에게 비록 모든 것이 부서졌지만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이 테러와 죽음이 절대로 주님과 죄악과 죽음에서 승리하신 그분의 아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교회 전체가 기도와 구체적인 자애로 여러분 곁에 머물고 있다”고 격려했다.


IS의 형용할 수 없이 무참한 테러와 코로나19 팬데믹처럼 “하느님께서 돌보시지도, 움직이시지도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신앙이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온다”며 “그 때는 예수께서 여러분 곁에 계시다는 것을 떠올리십시오. 꿈꾸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라고 권고했다.


교황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가 ‘테러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용서는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이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느님을 믿고, 모든 선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테러와 종교의 도구화에 ‘아니오’라고 함께 말하자”고 선언했다.


순방 마지막 야외미사에 1만여 명 모여… 교황, “이라크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


▲ (사진출처=Vatican Media)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르드 자치구 아르빌 주의 수도 에르빌 프랑소 하리리 경기장에서 야외 미사를 봉헌했다. 이 미사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해 거리두기가 적용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1만여 명의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미사에는 아시리아 동방교회 총대주교 마르 기와르기스 3세(Mar Gewargis III), 칼데아 가톨릭교회 에르빌 대교구장 바샤르 와르다(Bashar Warda) 대주교, 시리아 가톨릭교회 에르빌 대교구장 니자르 세만(Nizar Semaan)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미사는 칼데아식으로 봉헌되었으며, 1독서는 칼데아어로, 2독서는 쿠르드어로 봉독되었다.


▲ (사진출처=Vatican Media)


교황은 야외 미사 강론에서 “편을 가르고, 대립하고, 배제하는 이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신앙, 가정,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


교황은 성전정화 사건에서 예수가 직접 성전을 정화했듯이 “우리 마음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손에 먼지를 묻혀야 한다. 즉 형제자매가 고통받고 있는데 팔짱끼고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권능과 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예수께서는 우리가 신앙, 가정, 공동체 안에서 편을 가르고, 대립하고 배제하는 방식 방식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우리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가장 곤궁한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교회와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해주신다”며 “동시에 우리를 복수의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 유혹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결국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평화와 그분 자비의 도구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이룩하는 끈기 있고 용감한 일꾼으로 만드시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교황은 이라크 가톨릭교회가 바로 이러한 일치의 정신에 따라 온갖 테러로 집, 일자리는 물론 가족까지 잃어버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돕고 연대했다며 “지금 나는 이라크 교회가 살아있음을, 그리스도께서 이 성스럽고 충실한 민족 가운데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IS의 공습으로 손목이 잘린 성모 마리아상(사진출처=Vatican Media)


이날 미사가 봉헌된 제대 위에는 2014년 IS의 모술 공습으로 손목이 망가진 성모 마리아 상이 테러의 잔혹함을 기억하기 위해 망가진 상태 그대로 제대 옆에 놓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미사에 함께한 와르다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먼저 교황님의 용기에 감사 드린다”며 “이곳, 어지러운 우리의 땅, 폭력으로 점철된 땅, 민족간의 끝없는 분쟁, 이민, 고통의 장소에 와주신 것에, 그리고 이러한 팬데믹과 전 세계적 위기 가운데 찾아오시어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현시켜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미사 끝 연설에서 “이라크는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며 아랍어로 ‘살람, 살람, 살람! 슈크란! 알라 마아쿰!’(평화, 평화, 평화!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라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 압둘라 쿠르디 씨와 담소를 나누는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출처=RudawEnglish)


에르빌 야외 미사가 끝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피난 과정에서 배가 침몰하여 터키 해변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알란’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Abdullah Kurdi) 씨를 만났다. 알란은 피난 과정에서 함께 타고 있던 형 갈리프(당시 5세)와 어머니 레한 쿠르디(Rehan Kurdi) 씨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그러던 도중 알란의 시신이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것이 사진으로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코바니 출신의 시리아인들로 IS를 피해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교황은 그와 긴 시간을 보냈으며 가족을 잃은 그의 고통을 경청하고 교황과 주님이 그의 고통에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바그다드에서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 기자회견에서 답변 중인 교황(사진출처=Vatican Media)


교황은 이번 이라크 순방의 여세를 유지하며 또 다른 중동 순방을 기획할 것으로 보인다. 바그다드에서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 기자회견에서 교황은 ‘시리아 순방을 고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시리아는 아직까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며 “가정이기는 하지만 (간다고) 약속할 수 있는 곳은 레바논”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순방에서 돌아온 10일 일반알현 연설에서 1년만의 순방을 통해 대규모 인파를 만난 것에 대해 “몇 달을 감옥에서처럼 생활하다보니 진짜 수감자가 된 것 같았다”며 “그래서 이번 순방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교황은 이어서 순방을 되새기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에 벌어진 온갖 분쟁에 관해 그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을 질타하기도 했다. 


교황은 “나는 ‘대체 누가 테러범들에게 무기를 팔았나’를 자문해보았다. 누가 여기저기서, 학살을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를 팔고 있는가? 누가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전쟁에 대한) 응답은 전쟁이 아니라 형제애다. 이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수많은 분쟁 지역과 더불어 결국 전 세계의 과제다. 우리가 서로 형제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카인이 시작한 논리인 전쟁을 이어갈 것인가?”라고 물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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