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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 이기우
  • 등록 2023-01-27 13: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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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금요일(2023.1.27.) : 히브 10,32-39; 마르 4,26-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를 말씀하셨고, 독서에서는 신앙인들의 정체성으로서 믿음으로 얻을 생명에 대해 일깨워주었습니다. 믿음만 제대로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면 하느님께서 생명을 저절로 자라나게 섭리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피조물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세계에서도 나름대로의 매카니즘이 작동하게 되었고, 거대한 물질계 안에서 조성된 생태계를 통해서 출현한 생명세계에서도 독특한 진화의 자율성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두 가지 능력을 주시어 나머지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의식과 자유입니다. 불을 발견하고 농사혁명이 가능해지고 나서 넓어진 두뇌용적과 충분해진 영양 섭취로 인간의 의식은 다른 피조물들과 확연하게 구별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무기로까지 발달시킴으로써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 지배는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의식과 자유가 인간 존엄성의 기회이기도 하고 반대로 인간 타락의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인류가 부여받은 인간 의식의 최고봉은 자신을 지어내신 창조주를 알아보고 관계를 맺으며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일이었고, 원시 시대부터 종교가 이런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종교도 의식과 함께 부여된 인간의 자유를 선으로 지향시키지 못하고 악에 휘둘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자 하셨고 인간의 자유를 선에로 지향시키시어 당신에게로 향함으로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도록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이 자율 진화를 이끌어줄 계획 진화였습니다(떼이야르 드 샤르뎅).


그러므로 하느님의 빛을 비추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러 오신 예수님께서도 죄를 짓게 하는 악의 실체인 악령을 몰아내실지언정 없애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악령을 대적하는 일은 성령과 그리고 선으로 지향된 인간의 자유에 내맡겨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조 질서였습니다.  


그리고 또 악령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는 인간의 악행으로 인해 다른 이들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십자가를 없애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지혜를 가르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몸소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죄를 없애는 길이 이것이었습니다. 이를 대속(代贖)이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그리스도라는 빛을 받은 후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 싸움에서 실패했을 때에는 모욕과 더 큰 환난을 당하기도 했고, 승리했을 때에는 모욕과 환난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브 10,32). 


그런데 십자가를 짊어지는 데 필요한 인내를 발휘하지 않는 자들이 자유를 남용합니다. 자유가 남용되면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사실 인간의 의식은 피조세계를 담을 수 있어서 압축해서 반영할 만큼 위대합니다. 


의식의 산으로는 높은 산은 물론 우주의 신비까지도 담을 수 있고, 의식의 바다로는 깊은 바다는 물론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리비도의 세계를 탐구하기도 하며 이제는 섬세하게 인지 심리까지 살핍니다. 의식의 평원도 지구 평원들보다 더 넓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인간의 자유가 의식을 마음껏 펼쳐서 행하는 장이 연애와 사업과 정치와 전쟁입니다.


하지만 인간 의식을 이끄는 자유도 보이지 않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이 자유를 자기 소유라고 착각하는 데에서 자유 숭배, 물질 숭배, 자본 숭배의 오류와 죄악이 저질러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에서 자라나는 곡식들, 인류가 농사 혁명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에 빗대셨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자유가 선에로 향하기만 하면 그 선의 씨앗을 열매로 맺게 해 주시는 일은 하느님께서 맡아서 해 주신다는 이치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 시작이 아무리 작아도 끝에 가서는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크게 수확할 수 있음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인격 수양론의 정신 전통이 강한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유가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해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인격자에게 사람들을 다스릴 자격을 인정하는 정도이고, 도가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해서 자연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이니,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인간 노력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의 노력을 넘어서는 초월적 섭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하느님의 초월적 섭리를 정교하게 일러주는 성경의 지혜에 따르면, 선을 위한 고난, 고난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데에 자유를 선용해야 하고, 우리의 의식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우리의 의식과 자유는 아직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담기에 너무도 좁고 너무도 서툽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히브 10,39)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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