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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이기우
  • 등록 2023-03-07 16: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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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화요일(2023.3.7.) : 이사 1,10.16-20; 마태 23,1-12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에제 18,31, 복음 환호송). 이 죄악의 실상에 대해서 이사야 예언자는 동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소돔의 지도자’, ‘고모라의 백성’이라고 힐난하면서, 회개하여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춤으로써,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보살피되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줄 것 등을 주문했습니다(이사 1,10.16). 


예수님께서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엘리트들이었던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이 보여주던 위선적 행태를 들어 그 죄악의 실상을 고발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보는 데에서만 열심히 기도하는 척 한다든지, 잔칫집에서나 회당에서 높은 사람들이 앉는 윗자리를 좋아한다든지,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거나 사람들에게서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버릇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보이려 하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그들이, 모세의 권위로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위선자로 고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위선의 죄악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서로 섬기는 태도를 주문하셨는데, 이것이 위선의 죄악 대신 채워야 할 새 마음과 새 영이었습니다. 이는 당신의 제자가 되자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서, 이를 거부한다면 결코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단언하신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거나,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고 가르치심으로써, 섬김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제자들은 ‘세상의 빛’(마태 5,14)이 되어 죄악의 어둠을 비출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한 교회 쇄신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일이 자신이 부여받은 소명이라고 천명한 바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소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시한 문서 「공동합의성(Synodalytas)」의 제1항에서, 공동합의성의 여정은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것으로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본질적 차원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겸손하게 서로 섬길 줄 아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제자의 본분이라는 오늘 복음 말씀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함께 식별하고 함께 실천하기 위한 모든 논의에 있어서 공동합의성을 이루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공동합의성이야말로 교회 직무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교계제도를 비롯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생활이나 활동의 논의과정에 있어서 공동합의성의 구조를 통해 서로 섬길 줄 아는 십자가를 실현하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바리사이즘에는 그리스적 사유를 담은 헬레니즘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도 2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 실체가 플라톤 이래 인간을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로 보아온 이원론적 구도입니다. 


심지어 플라톤의 연역법을 방법론으로 사용한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을 극복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을 방법론으로 사용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서도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로 규정했으며 이는 네오 토미즘을 반영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서도 나타납니다(사목헌장, 14항). 


그러나 히브리적 사유를 반영하는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사야의 권고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섬김의 진리에 맞추어 이해하자면, 이원론을 당연시해 오는 바람에 개인주의적 사회를 초래해온 서구적 인간관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성서적이고 아시아적인 인간관으로 전환하여 공동체적인 사회를 이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인간은 단순히 육체와 영혼으로 결합된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혼으로 이루어진 삼원론적 존재라는 통찰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제사를 통해 우리의 혼이 새 영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야 영혼이 생기를 얻어서 섬김의 진리를 새 마음에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기있는 영혼에 이끌려 마음이 곧 지성과 감성으로 또는 직관과 체험으로 섬김을 진리로 알아볼 수 있어야 몸과 마음과 혼이 다 함께 어우러진 섬김의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 섬김의 공동체 안에 부활의 은총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섬김의 공동체에서라야 우리의 몸이 위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환경에서처럼 섬김을 억지스런 행위규범로서가 아니라 평등하고 공동체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런 질서로 생활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순 시기에 우리에게 요청되는 회개는 우리가 섬김의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섬김을 생활화하고, 우리의 섬김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의 고난 현실 속에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뛰어들어서 보여주고 증거해야 할 바가 이 섬김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교회도 또한 우리 민족도 섬김의 십자가로만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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