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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선을 행할 것인가
  • 이기우
  • 등록 2023-07-25 19: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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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2023.7.26.) : 탈출 16,1-15; 마태 13,1-9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 시나이 광야로 탈출한 히브리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먹을 음식이었습니다. 장정만도 60만 명이 넘었다고 했으니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들도 그 정도가 되었을 것이고,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합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백만 명이 훨씬 넘었을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책이 없이 파라오와 이집트 군대에 쫓겨서 그야말로 무작정 빠져나온 지경이었으니, 굶주리게 된 히브리인들이 불평을 털어 놓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당신의 배려에 의해서만 먹고 살 수 있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그분의 대책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탈출 16,4.11). 이것이 만나였고, 40년 동안 그들을 먹여 살린 음식이었습니다. 


이 고사(古事)를 기억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중이 굶주리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만나의 기적과 빵의 기적을 합하여 결정적인 말씀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는 사람은 하느님으로 인해 살 것이고, 먹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요한 6, 35.41.48.51.58). 이 말씀은 당신의 생애를 두고 하신 말씀이고, 성체성사로 인하여 당시 군중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나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나 그리고 오늘날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길바닥에 떨어졌다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이감이 되어 버린 씨앗처럼,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무신론자들이 제일 많고 또 어찌 어찌 해서 하느님의 존재와 구원 경륜에 대해 전해 듣고도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에 대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타종교인들도 많은가 하면, 하느님은 믿는 것은 물론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지만 그분이 생명의 빵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타 교파 그리스도인들도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머리로는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깨달음이 없어서 성체성사를 걸르는 가톨릭 신자들도 세례자의 80% 이상입니다. 게다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처럼, 성체성사가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고 양다리 걸치는 이들도 적지만 있습니다. 


결국 성체성사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작으나마 거룩한 변화를 자신의 삶에서 이룩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남습니다. ‘가톨릭 아나빔’이라 부를 수 있는 이 남은 자들이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킬 중핵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가톨릭 아나빔들의 예형입니다. 이 부부는 요셉 성인처럼 유다 지파의 다윗 가문 출신으로서, 메시아께서 오시리라는 예언자들의 전갈을 철썩같이 믿으며 열심한 신심으로 기도해 오던 처지였습니다.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자식이 없는 이 부부는 요아킴 성인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한 끝에 겨우 마리아를 낳았다는 교회 전승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부부는 마리아를 낳고 나서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그 덕분에 마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과의 통공으로 길러지고 수련된 아나빔으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분명하게 알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의 기운으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자라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영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모범을 공생활 동안 보여주셨습니다. 요아킴과 안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이 3대에 걸친 나자렛 성 가정이 보여준 신앙의 전수 과정 또한 우리 신앙인 가정들의 모범이자 기준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것은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전제였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영으로 사람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라는 선물은 하느님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쓰여질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선을 이룩할 것인지,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기회를 어떻게 선용할 것인지, 개인적인 선과 공동의 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또는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되 더 큰 공동체의 선으로 나아갈 소명을 받을 수는 있는지 등등의 문제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선용해서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따라서 질문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즉,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영을 받아서 어떻게 선을 행할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요아킴과 안나,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에 이은 3대의 나자렛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기회를 선용해서 어떻게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에는 선행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무한정 많고 우리 인생은 소중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인간에게 주어진 에너지를 잘못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를 선한 일에로 돌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어진 하느님의 섭리는 무한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자유를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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