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 교토행진은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온 듯하다. 비록 작은 신문 판이지만 행진 사진과 이모저모를 알뜰하게 담았다. 한국에서부터 걸어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보도였다.
교토를 떠나 시가현으로 행진할 무렵 태풍 7호가 닥쳤다. 이 태풍은 간사이 지방을 관통한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행진 중단을 공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체일정을 준수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태풍이 부는 날일지라도 어떻게든 이동해서 다음 날에는 출발을 공지한 장소로 가야 한다. 일본의 동지들이 동행하려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숙소도 예약취소가 불가한 상황이어서 손실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당일에 그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잠시 바람이 세차게 불 때 건물 뒤에서 쉬는 동안 눈에 들어온 마을 묘지. 일본은 서양처럼 묘지를 마을 안에 둔다. 이를 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삶은 잠깐이다.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아이들이고 다음 세대인데, 오염수는 우리 자신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이다. 핵발전소는 물론이다. 적어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아직도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이들을 보면 저절로 분노가 치민다. 독일의 탈원전 사례를 보고도 이를 외면하는 위정자나 식자들을 보고 가만히 참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필자의 행진도 그 분노가 떠받치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명장 오다 노부나가를 만났다. 그가 근거지로 삼은 아즈치성 가까운 전시관을 방문했다. 전시관 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노부나가는 이 지역을 활용하면서 전국시대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시대의 서막을 열어가는 일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탁수방지를 해야 하건만 일본 정부는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걷는 동안 일본 정부가 나쁜 짓을 획책해 왔던 것이 드러난 기사를 본다..
[민들레] 일본정부, 대형선박으로 핵오염수 전세계 확산 계획
자국에서의 비용 절감을 위해 편법으로 오염수를 실어 나른 것이다. 이런 파렴치한 범죄를 국가가 버젓이 저질르려 하다니.
원래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남용되기 마련이다. 일본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백성이 조용하니 제멋대로 갈 수밖에 없다. 백 년 전부터 그랬다. 하지만 일본도 이젠 민주국가다. '이 땅의 주인'이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한다.
히코네시에서 마이바라시를 거쳐 고개를 넘어 세키가하라로 가는 길을 나타낸 지도. 그중에서도 사메가이역을 지나 나카센도 마을을 걸어가는 구간이 일품이었다. 경치가 아름답지만, 난이도와 거리 모두 이번 일본행진 중 가장 어려운 코스다. 도로를 타고 넘어가다가 보도가 사라져서 걸어갈 수 없는 구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시가현의 동지들이 차를 대기하여 두었다가 그 구간만 안전하게 이동시켜 주셨다.
나카센도(中山道)를 넘고 있자니 시가현을 떠나는 필자의 행진을 보살펴주신 이나무라 상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구와노 야스오상을 통해 보내왔다.
"이원영 상의 위업은 시가현의 반원전 탈원전 운동가들에게 확실히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1,600km를 관철하는, 일본 혼슈 1,100km를 걸어 원전 오염수 방류를 멈추는, 이러한 반원전 운동의 태도는, "비와 호수를 지키자! 원자력 발전을 전폐하자!"라고 하는 우리 시가현에서의 운동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로부터 12년 5개월 지나, 걸핏하면 매너리즘화해 온, 경년열화해 온 운동에 무한한 생활과 부드러움을 가르쳐 주었다. 고마워요! 이원영 상! 같이 방류 중지를 해요!! 2023.8.18.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중지를 요구하는 한일 도보 행진 시가현 실행위원회"
나카센도를 지나면서 일본의 유명한 역사 현장인 세키가하라 들판을 만난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전투에서 처음으로 진을 쳤던 곳을 만난다. 그는 이 운명의 결전을 이김으로써 승승장구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300년이나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는 도자기 교역 등을 통해 국가의 부를 착실히 쌓았다. 그 상업자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급격한 변화를 꾀한 일본 힘의 원천이 되었다. 유신 이전에 체력을 미리 다져놓았던 그의 공헌과 장기적 안목은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이 승부처에서 이긴 그의 기운도 받아서 오염수를 중단시키고 탈원전으로 이끄는 분수령을 이루고 싶다.
미국에 머리를 조아리며, 국민의 평화 염원을 외면하고, 권력의 유지에만 급급한 일본 기득권층의 행태를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면 어떻게 이해할까? 수치스러운 지금의 일본 정부다.
이 장면이 주니치신문 지방판에 게재되었다. 기사내용은 익히 소개된 바와 같다.
당시 필자의 발언요지는,
"방사능오염수 방출은, 일본이 2차대전후 지구촌에 많은 기여를 통해 쌓아온 신뢰를 단번에 붕괴시키는 것이다. 일본 국민이 오랫동안 함께 쌓아올린 이 신뢰를 허무는 일개(하나의) 정권의 행위를, 주권자인 국민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토미래연구소장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