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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란의 ‘4.23 사태’ 잠자리에서 일어난 보스코의 이마엔 사방에 도깨비 뿔 같은 두드러기가 불쑥불쑥 솟아 있다. 저렇게 되면 우선 ‘어제 무엇을 먹었나?’하며 애꿎은 음식에 혐의가 간다(‘빠다 먹으면 안 돼! 튀긴 것 먹으면 안 돼! 달고 고소한 것 먹으면 안 돼!’ 아내의 잔소리가 끊임없다). 그 다음은 스턴트라는 심장시술 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 가운데서 오는 과민반응인가?(‘마누라가 챙기지 않으면 100% 잊어요?’ 하면서 아예 물잔에다 약봉지를 들고 따라다녀야 한다, ‘챙겨 줘서 잊나? 잊어서 챙겨주나?’). 마지막으로는 ‘긁어 부스럼!’ 밤새 일 없이 긁어 대니 멀쩡한 어디라도 성이 나리라는 생각인데 ‘가려워서 긁느냐?’ 아니면 ‘긁어서 가렵냐?’는 나로서도 결론을 못 내리겠다(‘당신 손엔 장갑을 끼워둬야 해, 임실댁 남편처럼!’). 2019-04-24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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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초씩 환자를 보다니… 환자도 죽이고 의사도 죽는 꼴 제주를 떠날 때마다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기 싫듯이, 이 섬을 떠나기 싫고 아쉽다. 새벽 6시가 좀 지나 알람이 울리고 주섬주섬 어제 싸다 만 가방에 남은 물건을 챙겨 넣고 혹시 빠뜨린 물건이라도 있나 닫힌 장롱이나 서랍장까지 다 열어본다. 처음부터 아예 열지도 않은 가구들인데 쓸데없는 일이라도 하고 떠나야지 거기 남겨진 것들에 대한 예의 같아서다. 비교적 철저한 내가 언젠가 중국여행에서 새로 산 외투를 호텔에 곱게 놔두고 떠나와 오랫동안 가슴이 쓰려 더 챙기나 보다. 2019-04-1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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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고기를 잡고, 고기는 주부를 잡는다 “여보! 수학여행 가던 애들이 탄 배가 진도 앞바다에 빠졌는데 전원 구조됐데.” “그래? 그야 당연하지,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그 당연 해야 할 일이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5년의 세월은 흘렸다. 물속에서도 아이들은 구조되지 않았고, 뭍에서도 구조하지 않은 이들의 행위에 대한 마땅한 조치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조악의 뿌리는 깊고 넓어 제거하는데 너무 힘들다. ‘그래도 잊지 않고 눈을 퍼렇게 뜨고 있는 우리가 있는 한 꼭 해결을 볼 것이다. 너희들 꼭 알아두어라!’ 2019-04-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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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들 추억 속에서 떠난 이들은 아직 가냘픈 더부살이를… 20년 전쯤, 아래아래 집 정선생님네가 마당 잔디에 풀 뽑기 싫다는 이유로 오래오래 살아온 정든 집을 미련 없이 팔고서 의정부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떠났다. 나는 그분에 대한 미련으로 장독 여러 개를 받아 오면서 그 집터에서 잘려나간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가지 한 토막을 가져와 빵고 방 앞에다 기둥으로 세워 두었다. 그렇게 한 2년. 떠난 주인을 기억하던 한 토막의 은행나무는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가지를 뻗고 잎이 났다. 2019-04-1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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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오늘 메시지는 하나: “나 아직은 저런 폐가가 아니다” 내일 임플란트를 해야 돼서 서울 갈 채비를 하는데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어젯밤에 넘어져 머리에 피범벅이 되어 있는 걸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발견해 안성병원에 모시고 가서 이마와 머리를 꿰맸단다. 자기는 차가 없어 못 가니 나더러 가보란다. 오후에 천천히 가려니 하던 출발계획이 바뀌어 마음이 바빠진다. 2019-04-12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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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반쪽과의 전쟁’ 한 달에 한번, 매달 첫 주에 단성에 사시는 임신부님이 누님 임봉재 선생님과 함께 문정공소에 미사를 드려주러 오신다. 셋째 주 저녁엔 함양본당 주임신부님이 오시기에 공소에서 한 달 두 번의 미사는 대단한 특전이다. 오늘도 임신부님은 일찍 오셨다. 누님만큼이나 부지런하고 철저한 삶을 사는 분이다. 그분이 ‘네오까떼꾸메나또’ 공동체를 지도하시는 것도 어쩌면 지나칠 만큼 철저하게 사는 그들 모습이 신부님의 생각이나 생활과도 통해서일 게다. 2019-04-08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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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한 사람은 헤매게 마련이다’ 아침기도를 최목사님과 함께 했다. 우리가 오가는 발소리에 늦잠을 못 잤겠지만 이곳에서는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다 잠들므로 아침은 11시나 먹는다는 한솜이도 8시 30분 되니까 일어나 식탁에 앉아 보스코와 무슨 얘긴가를 나눈다. 2019-04-0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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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은 그냥 씨를 뿌리고 거두시는 몫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내게로 오는 날은 나는 꽃으로 방을 꾸미고 마음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다. 밭에 나가 보니 만발한 노랑색 유채꽃이 천년의 지리산 앞에서 단 며칠의 화려함을 내보이기 부끄러운 표정인데 지리산은 빙그레 미소로 답한다. ‘너 참 아름답다.’ 나는 천기를 누설하는 이들이 주고받는 은밀한 대화에 매시간 가슴 설렌다. 2019-04-0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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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좁은 틈새로도 하느님의 구원은 들어온다 ‘철가면’을 쓰면 물론 잠이 쉽게 오지 않겠지. 온몸을 긁다 보면 오던 잠은 더 멀리, 쫓아 갈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 버리고… ‘효자손’이 어둔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오른손 왼손으로 등짝을 북북 긁어대는 소리에 나까지도 잠의 뒷꼬리를 붙잡고 강강수월래! 2019-03-2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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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도 한철이라, 아빠가 필요한 곳이 있어 부름 받으면…’ 함양본당에 계시던 신정목 신부님이 진주 장재동성당으로 가셨는데 보스코에게 오늘 사순절 특강을 부탁하셔서 신부님 새로 가신 곳도 찾아볼 겸 10시 반 미사에 맞추어 출발했다. 빵기-빵고 말이, “메뚜기도 한철이라, 아직 아빠가 필요한 곳이 있어 부르면 서리 내리기 전 부지런히 다니셔요”란다. 2019-03-25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