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제기되는 과학철학의 논쟁거리 중의 하나는 ‘과학의 객관주의’이다. 과학의 객관주의란 과학은 정치나 이념 또는 경제논리에 얽히지 않고 객관적 사실만을 증명해낸다는 주장이다. 연구자의 심리 상태나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가 실험을 하더라도 같은 실험 조건에서라면 동일한 결과를 산출해낸다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다.
과학의 객관주의에서 특별히 배제되는 것이 정치이념이다. 역사적으로 과학자는 정치이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호언해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학사를 기술한 책들을 살펴보면 정치적 배경을 간과하려는 눈물 나는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쯤에서 과연 과학자들이 정치적 변화에 편승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근대 들어서면서 영국은 과학 분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다. 17세기의 ‘뉴턴’, 18세기의 ‘린네’, 19세기의 ‘다윈’으로 이어지는 과학의 계보는 영국을 과학의 중심으로 만들어놓았다. 특히 물리학 분야에서 ‘뉴턴’이라고 하는 거장의 출현은 20세기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영국인으로 하여금 자부심을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독일 출생의 ‘아인슈타인’의 등장은 유럽과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쏟아내는 그의 논문들은 전 유럽의 과학자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국인의 과학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독일은 흩어진 독일 출신의 과학자를 불러 모으는데, 이 때 아인슈타인도 합류를 한다. 1차적인 목적이 전쟁이었던 독일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영국보다 월등한 무기를 생산하도록 독려하였다. 이러한 독일의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린 아인슈타인은 협력을 거부하고 오직 연구에만 매진한다.
한편 독일과 경쟁관계에 있던 영국은 독일의 모든 과학서적과 논문의 열람을 금지시킨다. 또한 독일에 우호적인 과학자들을 왕립학회로부터 제명하는 일까지 단행한다. 졸지에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은 금서가 되어 사장되는 위기에 처한다.
영국과 독일의 정치적 갈등이 반영된 과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에딩턴’만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가치를 간파하여 실험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뉴턴의 이론이 오류였음을 밝힘으로 영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적국인 독일을 돕는다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증명하려던 에딩턴이야말로 진정 과학적 객관주의자이다. 에딩턴과 아인슈타인의 객관주의적 삶의 기록이 영화 ≪아인슈타인과 에딩턴, Einstein and Eddington≫(2008)에 담겨있다.
요즘 극동아시아의 과학은 온통 전쟁 또는 무기개발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우리의 과학은 정치나 경제논리에 지나치게 종속되어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과학소식은 주로 IT 신기술을 통한 경제적 효과와 전쟁무기 개발을 통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의도와 너무도 유사하다는 생각을 좀체 떨쳐버릴 수 없다. 제발 기우(杞憂)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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