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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2017년 3월의 찬란한 봄빛 지요하 2017-03-14 16: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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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밤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꼬빡 새웠다. 이상한 긴장감으로, 또 간절한 기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10일을 맞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는데도 전혀 졸리지가 않았다. 오전 내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 거리행진 제20차 촛불집회 후 거리 행진을 하고 있는 촛불시민들 ⓒ 김철관


드디어 11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을 보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으로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그리고 판결문을 읽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마침내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을 발하는 순간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아내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촛불민심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촛불혁명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무수한 촛불들의 축제가 다시금 내 앞에서 박차게 재생되었다. 1,600만의 촛불이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지방에서 살며 장애인이라는 핑계로 나는 고작 한 번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되었지만, 그 1,600만의 촛불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희열을 불러 일으켰다.  


촛불은 기원과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런 만큼 100만 명이 모였어도 질서정연했다. 간절하면서도 평화로운 기운이 넘쳐흘렀다. 한 건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고, 집회가 끝났을 때는 100만 명이 모였던 자리가 아무 흔적 없이 깨끗했다.  

 

촛불집회에는 문화가 있었다. 노래와 공연과 열변이 공존했고, 박수와 웃음이 있었다. 거대한 자발적 집회의 질서정연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흔적 없이 깨끗한 자리는 세계인의 관심과 찬사를 집중시켰다. 


촛불집회와 친박집회의 대비


▲ 광화문의 전인권 가수 전인권이 19일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에서, 전국으로!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전국동시다발 4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석해 노래 ‘행진’을 시민들과 함께 열창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유성호)


그런 촛불집회가 이어지던 시기의 한 중간에 ‘태극기집회’라는 이름의 ‘친박집회’가 등장했다. 돈으로 인원을 동원한 관제데모였다. 친박집회의 모습은 촛불집회와 확연히 대비되었다. 


친박집회는 태극기들의 난무로 어지러울 정도였다. 성조기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국기도 나부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거기에 십자가까지 끼어든 부조화는 난무 그 자체였다.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술을 마시고 온 사람들도 많았고, 집회 도중에도 곳곳에서 술을 마셨다. 집회 장소인 서울시청 광장 주변의 수많은 가게들이 몸살을 앓았다. 폭력 행사도 빈번히 일어났다. 기자를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고,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을 보면 시비를 걸고 싸우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집회 때마다 확성기에서 온갖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악다구니가 범람했다. 그 자체로 전쟁이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시에는 내란 상태가 발생한다고도 했고,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거라는 말도 아스팔트 위에 마구 뒹굴었다. 야구방망이를 든 사람도 있었고, 죽창을 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무시로 주택가 안에서도 집회를 열곤 했다. 


그들이 집회를 마치고 났을 때는 그 자리가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들이 거쳐 간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쓰레기가 넘쳤다. 태극기로 애국심을 발동시킨 그들은 그 태극기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촛불집회와 친박집회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평화와 전쟁의 모습이었다. 1970년대의 풍경과 2010년대의 풍경이 공존하는 양상이었다.


촛불집회는 나이 든 이들도 많았지만 젊은 층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에 비해 친박집회는 늙은이들이 주축이었다. 세상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과 미래를 열어가며 살아야 하는 젊은 층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므로 이승의 길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발목을 잡는 형국이기도 했다.


지성이 없는 지식인들


▲ 친박단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서울 시청 일대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3월 10일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인용했다. ⓒ 최진


옛날 오랜 독재정권의 마수에 세뇌되어 폐습과 편견에 얽매어 있는 단순 고착의 늙은이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으로 민주성과 다양성을 체득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층을 능멸하고 무시하는 현상은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했다.  


친박집회를 이끄는 사람들 중에는 지식인도 많았다. 변호사들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고 예비역 장성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폭언과 거짓말을 일삼곤 했다. 지식인의 풍모가 아니었다. 온갖 폭언으로 헌재를 협박하면 헌재 재판관들이 기가 죽어서 박근혜 탄핵을 기각시킬 거라고 굳게 믿는 모양새였다. 그런 기대와 믿음 때문에 그렇게 발악적으로 요란스럽게 집회를 여는 것이었다. 


나는 늙은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길 수 없다는 단순 소박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온갖 폭언과 협박은 오히려 그들 논리의 궁색함을 반증하는 것이리라는 생각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또 친박집회의 위협에도 동요 없이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잃지 않은 촛불집회는 마침내 시민혁명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세계에 유례없는 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우람하고 빛나는 역사가 되었다. 총20차에 이르는 촛불집회는 노벨평화상을 대한민국에 안겨줄지도 모른다. 


80% 절대 다수 국민들의 여망을 안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1,600만의 숭고한 촛불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지만….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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