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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김혜선 통신원] 교회가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기는 하는가? 4월 첫 날의 기도 김혜선 2017-04-03 10: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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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김혜선 통신원


정의와 자비가 꽃피우기를 기다리는 4월을 맞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무엇인가 새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교회도 이러한 싱그러운 바람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지 말고 실현해 볼 것을 촉구하며 진지하게 재계를 지킬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신앙인답다고 할 것이다.


“대구 희망원 사건을 천주교 차원에서 해결해주세요!” 교황즉위 4주년 기념미사에서 활동가들이 울먹이면서 외치던 절규가 귓가에 맴돌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추기경과 사제, 신자들의 무관심과 침묵은 소중한 300명 이상의 생명을 빼앗은 그들과 공범자나 마찬가지다.


불의에 타협하는 목자와 신자가 착한 목자이며 착한 신자가 되어있는 한국교회의 실상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 지난 달 30일, 대구시청 앞에서 열린 희망원에서 죽여간 309명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에서 사진이 없는 영정 309개가 놓여졌다. ⓒ 최진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식은 위선과 오만에서 벗어나 자기를 낮추는 자세다.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덕목은 겸손이다.


겸손한 마음은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그들과 진정한 친교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통로를 차단시키고 거룩한 미사 때 시위했다는 가당치 않은 틀에 갇혀 친교는커녕, 이방인 취급에 내쫓기까지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교회는 자행하고 있다. 


자신들만이 종교적 법규를 올바로 실천하고 하느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긍심은 종교적인 우월감을 가짐으로써 이미 그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가식적인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모든 체계가 가능한 것은 그 자체의 힘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 그리고 사회 조직에 대한 공동체의 신뢰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신뢰의 상실은 정당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거짓과 기만은 더 이상 가증스럽거나 충격적인 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선별과 실제 사건의 조작을 통하여 관료적 권력을 앞세워 숨기려고만 한다.


악마의 세력은 거짓과 위장과 자기를 두려워하게 하는 술책에서 나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허위를 볼 줄 알고, 소외된 이웃을 먼저 사랑하는 적극적인 투신에 나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진정보]
김혜선 : 안동교구 소속 런던 해외교포 사목 평신도이다. 런던한인성당 신앙의 길잡이 계간지 하상(구)편집인, 런던 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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