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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는 교회는 박물관 유물로 장식될 뿐 신성국 신부의 ‘요한, 생명이야기’ 38 신성국 2018-08-29 11: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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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1-12절은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쳐주는 사건’, 13–42절은 ‘지도자에 관한 일이 무엇인지’, 35-38절은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9장은 앞선 이야기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5장의 불구자와도 관련되어 있다. 또한 니코데모와의 대화 내용과도 연관이 된다. 요한 9장과 10장은 초대교회에서 세례성사 교리를 사용했다고 성서학자들은 말한다. 


8장 12절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는데, 9장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신다. ‘소경’ 또는 ‘맹인’은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진리를 보지 못 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이 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는 것,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는 ‘생명’이기 때문에 소경은 ‘생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제자들이 소경에 대해 예수에게 묻는다. “누구의 죄입니까?”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 시대의 유대인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유대인들은 ‘죄’와 연관 지으며 죄의 탓으로 돌린다.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도 죄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 사상으로 봤을 때, 소경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로 생각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시험해 보시는 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욥의 이야기를 연상하면 된다. 사람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예수는 “자기 죄 탓도 아니요, 부모의 죄 탓도 아닙니다”라고 답한다.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무슨 일이 있으면 죄 탓으로 돌리는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9장 3절을 좀 더 풀어보면,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맹인은 나기 전부터 억압을 당한 사람의 상징이다. 처음부터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고,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운명에 자신을 내맡긴 채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운명은 자기 탓도, 부모 탓도 아니며 제도로부터 오는 어두움이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앞을 못 보게 만드는 제도, 규정들. 그리고 소수의 특권층만이 정보를 독점하고 권력과 자본을 지배하는 갑질 제도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구조와 제도를 바꾸시는 예수의 메시지가 소경의 치유 사화다. 


맹인은 희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다. 예수는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를 말한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빛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일을 하신다.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 일하시고, 예수는 그것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해가 있는 동안’은 어둔 밤이 오기 전에 서둘러서, 부지런히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 땅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태어났음에도 어둠에 속한 자들,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존엄성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불의한 구조와 제도로 인해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세상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가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제도들을 바꾸는데 앞장서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친일파 청산 작업, 사법부와 군대 적폐 청산, 기무사 해체 운동, 정치제도 개혁, 민생악법 폐지, 교회 적폐 청산 등 참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교회는 문제의식이 없는 양 잠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교회의 활동 영역은 인간 내면 문제, 영적인 문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인간 삶 전체에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한다. 


▲ ⓒ 가톨릭프레스 DB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 천주교회가 세상에 희망을 준 것은 조선 후기에 인간 평등 정신을 구현하면서 양반제도에 항거한 순교의 시기에 머물러 있다. 근현대사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된 사실은 찾기가 힘들다. 심지어 근대사에서는 친일 행적이 너무 많아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현대사에서 일부 사제들의 사회참여는 있었지만, 일반 노동자와 학생들의 활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지금 신자 수의 심각한 감소와 선교의 혹한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사제가 되겠다는 청년 학생들도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학대학도 문을 닫게 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속수무책이다.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길은 있다. 복음으로 사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성직자들 입에서 나오는 화려한 입담이 아니다. 사람들은 제발 몸으로 살아달라고 외치고 있다. 신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거짓과 진실을 식별할 줄 안다. 겉과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교회 권위와 성직자 의복을 보고 존경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만이 권위와 존경의 가치다. 


지금은 농경시대의 교회가 아니다. 첨단 문명 시대에서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고, 생산하는 평등한 시대이며 과학시대를 살고 있다. 아직도 농경문화시대에서 누렸던 권위와 봉건 영주 제도를 고수하는 가톨릭 제도와 문화는 전면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봄이 왔는데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지 못하고, 형식에 얽매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태의연한 자세로는 박물관의 유물로 장식될 뿐이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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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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